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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쑥 Sep 17. 2022

나의 결정사 연대기 ep.3. 행복이란

그는 나에게 '성급하다' 했다

나의 결정사 연대기를 처음 시작한 날, '매일 올려봐야지. 그간의 에피소드가 많으니까'라고 결심했지만, 왠지 매일 글을 쓰게 되지는 않았다. 아마 글을 쓸 만큼 강렬했거나, 무언가를 통찰하여 깨달음을 얻은 횟수가 적었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여태껏 충분히 데이터를 모아 주제를 분류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꼭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결혼 적령기를 어느새 훌쩍 넘긴, 서른넷의 여자인 나는 이제는 정말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했다. 그리고 4개월간 소위 '미팅'이라 일컬어지는 비즈니스 미팅인지 소개팅인지 선인지 모를 그 만남들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한 남자를 만났다. 


매니저가 잡아주는 천편일률적인 미팅 장소들, 이를테면 스타벅스, 커피빈, 파스꾸찌 이런 장소들에 지쳐서 내가 사는 지역에서 만나기로 한 이번 상대와는 조금 특별한 곳에서 만나고 싶어 미리 장소를 찾아보았다. 하필 추석 연휴 전날인지라 가게 문을 닫았을 줄은 모르고. 우여곡절 끝에 원점인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 마죽 한 그의 첫인상은 '웃상'이었다. 서글서글하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환해서, mbti로 따지면 E성향인 것은 확실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적중!


필자의 사정으로 인해 출근을 하지 않고 있기는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들끼리의 대화. 그다지 특별한 것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종교가 같다는 이유로 묘한 동질감을 느꼈고, 늦은 시각에 만나 저녁도 못 먹은 터라 맥주 한잔 하러 가자는 그의 말에 선뜻 오케이를 외쳤다. 필자의 기준에서는 연휴 전날 퇴근길, 직장인들의 맥주 한 잔쯤이야 흔한 일이고, 취하지만 않는다면 소개팅에서도 그쯤은 괜찮을 것이라 여겼다. 


생각보다 그는 적극적이었다. 면접 보듯이 1번부터 20번까지 연애와 결혼에 대한 질문을 쭉 쏟아내었던 그동안의 상대들과는 달리, 대학교 때 했던 소개팅 자리를 연상케 하는 "난 네가 맘에 들어." 이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음과 동시에, 결혼정보회사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여 묘하게 흥미가 생겼다. 물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에 관해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가볍게 맥주 한잔을 생각했던 나와 달리, 그는 연거푸 소주잔을 들더니 두 병을 금세 비웠다. 이성과의 만남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이성과 술 한잔 하며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하고 싶은 심정이야 스스로도 겪어봤으니 알겠지만 '저렇게까지?'라는 심정으로 필자는 맥주 한 잔을 홀짝이고 있었는데, 취했는지 약간의 객기와 함께 "너는 내가 어떻냐. 나는 내숭 떠는 여자는 싫더라. 나에게 적극적인 여자가 좋더라."라는 말에 '왜 저래...'라고 속으로 혼잣말을 하며 "오늘 처음 만났는데 모르죠. 저는 몇 번을 봐야 느낌이든 판단이든 가능하더라고요."이런 식으로 FM 돌직구를 날렸더니, '참 특이한 애네.'라는 시선을 받았다.  처음 보는 이에게 그리 쉽게 경계를 풀지 않는 것은 필자가 살아온 방식이다. 12시가 넘었는데도 남은 술을 마시고 가자는 그의 말에 선을 그으며 단호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20대의 필자라면 거기에서 끝이었다. 그런데, 결혼정보회사에서 만난 사람 같지는 않은 특이한 캐릭터의 그는 필자가 택시를 타기 전에 번호를 물어보았고, 일주일 간 카톡으로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대화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이 남자 나쁘지 않은데?' '말을 예쁘게 하네.' 등등의 생각이 들어 일상을 공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30대 중반에 이르러 생각해보니, 내 구미에 완벽히 맞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picky eater라도 된 마냥 내 취향에 맞는 사람을 고르겠다는 의도도 참으로 나쁜 것이라는 것을 이 결정사에서 겪은 수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알게 되었기에 그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두 번째 만남, 

다소 늦은 금요일 저녁 시간, 집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서울의 어느 한식집에서 식사를 했다. 그런데 조금 의아한 것은, 적극적이었던 것은 그였는데 전날 밤 장소를 미리 리스트업 한 것도 필자이고, 거리와 시간 상으로 필자가 더 부담스러운 곳에서 만났다. 대화 자체는 즐거웠다. 계산하며 사람 대하지 않고, 유년 시절로 돌아가 사이좋은 친구랑 놀고 있는 그런 느낌. 그런데, 그는 또 술자리를 제안했다. 필자의 경험 상, 남성이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표하는 호감 중 가장 크다면 큰 것이 늦은 시각이라면 집에 데려다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남에서도, 술 권하는 남자라. 그와는 아직까지는 그 어떤 사이도 아니기에, 바라고 요구할 것도 없었다. 마침 금요일 저녁이기도 해서 근처 라운지 바에 들렀다. 칵테일을 한 잔씩 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나눴다. 이야기는 즐거웠다. 남녀가 만났을 때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즐거움이다. 


대중교통이 끊기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식장 예약이니, 등등 결혼 관련한 이야기까지 꺼내는 것으로 보아 그는 필자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남에서도 술, 그리고 이 늦은 시각에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필자를 제삼자의 시각으로 보며 '이 사람과 만났을 때 앞으로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했다. 상상력이 너무 풍부한 탓일까, 이제까지의 경험치에 기반한 정확한 예상이었을까. 뻔히 그려지는 시나리오. 사실 필자는 자칭 애주가이지만, 분위기 좋게 딱 한잔이면 족하고 예쁜 카페를 더 좋아한다. 그만큼 커피도 좋아한다. 술은 뇌기능 저하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한 달에 한두 번 안쪽으로.  


대화 중 그는 '행복'이라는 운을 띄웠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랑 함께하고, 무엇인가 하나하나 함께 이뤄가는 재미라고 생각해."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리고 잠이 들기 전까지도 계속 그 이야기가 맴돌았다. '나는 이 사람과 행복할 수 있을까?'


필자는 가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 얼마나 아시나요?" 타인과의 관계는 결국 스스로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되기에, 스스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연애도 잘하고 나와 맞는 사람도 잘 찾는다. 취향과 결이 전혀 다른 이가 나에게 적극적인 호감을 보인다면? 그런데 막상, 나의 기호에는 전혀 맞지 않는 함께 보내는 시간 속의 디테일.  사실 미안할 일도 아쉬울 일도 아니지만, 그에게 선을 그으면서 드는 생각은, 아쉬움이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다는 것만 해도 참 좋은 일이지만, 그 밖에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 많구나. 


그는 나에게 "성급하다"했다. 하지만 그의 입장일 뿐, 필자는 두 번째 만남까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하나의 오버랩되는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는 완벽한 필자의 이상형이었다. 생김새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 자체가 지닌 밝고 따뜻하고 안정적인 분위기. 그리고 대화를 해보니 반듯하고, 비전도 있고 눈을 반짝이면 사는 사람이라는 확신까지 들었다. 꿈에 그리던 이상형을 만났는데, 그는 두 번 만나보고 본인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선을 그었다. 마무리까지 반듯했던 그였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였을 뿐 상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내재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나의 여러 가지 모습을 모르는 그가 성급하게 판단한 것 같아 아쉽기도 했는데 아니다. '이 사람과 맞지 않겠구나.'라는 결정적인 이유는 분명 있었을 것이다. 


고로, 상대의 입장이나 판단에 대해 함부로 '성급하다' 말하지 말 것. 돌이켜보면, 상대에 대한 배려보다는 나의 취향, 즐거움이 먼저인 연애를 지속해왔던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맞춰주며 그 시간이 '재밌다'라고 착각을 하다 지칠 생각을 하니 지레 진이 빠졌다. 언제나 겪는 일이지만, 유형이 조금 달랐을 뿐 큰 차이는 없었다. 엄청난 적극성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은 자신만의 색이 뚜렷하고 그 페이스를 유지하며 만남을 시작하고,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과는 좀처럼 맞지 않다는 것을. 연애도 결혼도 참 요원한 일이지만, 자신과 취향과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필자와 비슷한 나이의 싱글 여성들은 이제 연애와 결혼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가장 친한 친구가 둘째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축하할 일이고, 든든한 서포터가 되어주고 싶지만, 필자에게는 거의 차 안과 피안의 경계급의 세상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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