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Freeze⟫ Vol.1을 위한 글
* 이 글은 2023년 8월에 쓰였다.
* 메인 이미지는 일러스트레이터 하호하호의 작품이다.
* <Anti-Freeze>는 경기북부박물관에서 열리는 동명의 전시 ⟪Anti-Freeze⟫를 위해 기획된 매거진이다. 이 글은 총 4개의 시리즈로 이어진다.
vol.1은 [나]라는 생태계에서 시작한다. 본 매거진의 기획자는 모든 생태계의 시작이 '나'라고 말한다.
vol.2는 300만 여종의 생물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리얼 자연) 생태계]를 다룬다.
vol.3은 [디지털 생태계]를 조명한다. 디지털화된 세상에도 누군가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vol.4는 나를 너머 '우리'로 회귀하는, [사회 생태계]를 다룬다.
이 글은 vol.1을 위한 원고이며, 글쓴이의 세상을 담으려 애썼다.
존 버거, <A가 X에게> 2009, p.66
인간들의 세상에서는 모두 자기 발이 딛어진 곳이 중심이라고 한다. [인간 > 자연] [인간 > 그 외] 이런 공식이 성립한다. 신기하다. 그럼 80억 인구 각자의 중심이 엉켜진 곳에서 무엇이 우선순위가 되는가. 인간중심의 생태계 속에서 인간 개인의 삶은 어떻게 형성되고 재편되는가. 일단 인간이 중심은 맞나. 물리적인 생태계 너머에는 무엇이 있나. 이런 구조에 관심이 많다. 본 글을 포함한 총 네 편의 글에서는 그 구조를 ‘지층'으로 부르기로 했다. 내가 만들어 내는 것들, 글, 책, 전시, 프로덕트… 모든 것들은 이 지층에서 시작된다. 내가 세상에 내미는 미약한 것들은 우선 내 땅에서 출발해 어딘가를 떠도는 중이다. 중심이라기엔 빈약하고 다른 구조들과 서로를 굴절시키면서.
[1]
나는 1990년, 백마의 해에 태어났다. 삼남이녀 집안의 셋째 아들 내외의 일남일녀 중 막내.
집안의 수장인 할아버지는 그 시대에 동경 유학까지 갔다 와 평생 강단에만 선 사람이었다. 전공이 토목이었나 그랬다. 참 땅이랑 어울리는 사람이다. 누구와도 깊은 얘기를 하지 않는 사람. 항상 서재에서 책만 읽고 글만 쓰는 사람. 나의 할머니는 남녀 선호 사상이 강한 여성이었다. 이 집안의 각 아들 내외에게는 ‘일남일녀’가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때 내가 태어났다. 백말띠의 해에 여자아이를 갖게 된 엄마는 집안의 어른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걱정을 빙자한 핀잔들. 엄마는 주저 없이 나를 낳았다. 116.5명. 1990년 출생아들의 성비다.
[2]
집안은 엄격했다. 맞벌이하는 나의 부모는 주말마다 조부모의 댁에 방문했다. 차로 왕복 7시간 거리인데도 말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나는 안부 인사로, 조부모의 집에 도착했을 때와 우리 집으로 돌아갈 때 모두 큰절을 올렸다. 손주로서 할아버지에게 응석을 부려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갔을 때, 조부모의 댁을 방문했던 친구들의 후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던 적도 있다. ‘어떻게 할아버지 무릎에 누워서 수박을 먹어?’
유년 시절의 나는 ‘왜’라는 질문을 쉴 새 없이 했다.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많아서. 부모님의 집에서는 평등했던 오빠와 나의 관계가 왜 조부모의 댁에 간 순간 기울어지게 되는지 궁금했다. 시대의 한계가 있겠지만, 나의 부모는 최대한 우리가 동등한 기회를 나누기를 원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에서는. 그런데 조부모의 댁에만 가면 부모님이 공들여 만든 이 설정값이 사라졌다.
한 살 터울의 오빠가 왜 유난하게 할머니의 사랑을 받는지 (우리 오빠는 할머니의 최애였다), 왜 항상 나는 남성의 사촌들이 다 고른 뒤에 남는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하는 건지, 왜 막내며느리인 엄마는 항상 대가족의 설거지를 하는 건지, 왜 식사 자리의 모든 여성은 다른 식탁에서 먹어야 하는 건지. 우리 집에서는 익숙한 오빠를 대하는 나의 동등한 태도가 할머니의 레이더망에 걸릴 때가 왕왕 있었다. 백말띠의 드센 여자아이가 집안의 보물인 오빠의 기를 죽인다며 나의 엄마는 많이 혼났다.
[3]
유치원-초등학교에 진학하며 세상에 대한 내 궁금증이 폭발했다. 운동회 날에는 왜 모두 같은 체육복을 입어야 하는지, 왜 학교에 남자애들은 이렇게 많은 건지, 쟤가 나를 괴롭히는데 왜 참아야 하는건지, 왜 반 전체의 눈을 감게 하고 이혼가정의 아이들은 손을 들어야 하는 건지,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내가 왜 부반장을 해야 하는 건지, 난 반장이 더 잘 어울리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 어렸던 내 세상의 전부였던 조부모의 집과 우리 집 그리고 학교에서 모든 관계들의 모순에 숨이 막혔던 것 같다. 그래서 운동회날 입고 싶은 옷을 입고 갔다. 백팀이었던 우리 반은 흰색 운동복을 입고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냥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엄마에게 말했고, 그는 내 의견을 존중했다. 그날 난 흰 드레스를 입고 운동장을 누비는 아이가 되었다. 그 날의 사진은 가장 좋아하는 유년 시절의 사진이다. 내 나름대로 상징적인 날로서.
[4]
이 모든 이야기는 10살이 되기 전의 이야기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부모님께 조부모 댁에 가고 싶지 않다고 털어놨다. 어떻게 설명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수많은 ‘왜’들에 답할 수 없는 나의 상황이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조부모 댁에만 다녀오면 다퉜던 엄마, 아빠는 어린 딸의 고백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날 이후 20살이 될 때까지 엄마와 나는 조부모 댁에 가지 않았다. 설이나 추석 때 부자만 왕복 7시간의 운전을 하고 조부모님 댁에 방문했다. 모녀는 매번 편한 주말과 연휴를 보냈다. 엄마는 그림을 그렸고, 나는 책을 읽거나 공부하며, 각자 하고 싶은 일에 매진했다. 성인이 된 후, 다시 만난 친척들은 많은 것들을 물어봤지만, 이미 머리가 커버린 나는 질문자가 원하는 모범답안을 내놓을 수 있었다. 각각의 당사자들의 상황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비롯한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시대에 대항할 수 없는 여성(그리고 용기를 낼 수 없는 대부분의 남성)이 선택할 수 있는 생존전략이었을 테니.
쉽지 않았을 텐데 어린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준 나의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5]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나도 여전히 ‘왜’가 많다. 지금은 ‘턱괴는여자들’이라는 인문학도로 구성된 콘텐츠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다. 미술사에서 고대 그리스 로마 시절부터 사용되던 턱 괴는 제스쳐, 즉 생각하는 포즈를 차용해 현실에 대입해 보겠다고 주장하는 팀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등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턱괴는여자들’은 턱을 괴며 문제를 발견하고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기조로 책이나 전시 콘텐츠를 생산하거나 IT 회사등과 손잡고 브랜딩과 콘텐츠 전반을 기획∙실행한다. 턱 괴는 자세를 기조로 우리는 문제를 에두르지 않고 관통하겠다고 다짐한다. 어렵지만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하게 만들어준 첫 번째 바리케이트는 나의 작은 생태계, 가족이다. 정상 가족이라기엔 뒤죽박죽이고, 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다소 모났지만, 나를 지켜준 곳, 나의 말과 글이 태어난 곳.
[0]
작은 세상은 이제 넓은 세상으로 나왔다. 내가 만드는 것들이 어쨌거나 세상의 평가를 받게 되었으니까. 크고 작게 또다른 누군가의 삶을 굴절시킬테니까. 나의 퇴적층에서 피어난 것들이, 이제 다른 생태계를 만난다. 무한하게 작은 것과 무한하게 큰 것이 엉킬 차례다.
<Anti-Freeze>매거진 전문은 [여기]서 다운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