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으로 연대하는 슈퍼맨의 시대: 주민등록과 규모가 아닌 역할과 팬덤
안녕하세요, 저는 도시를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다보니 인구감소, 지방소멸이라는 단어를 일본에서 공론화한 2000년대부터 듣기 시작했습니다.
학생 시절에는 그저 전공서에 써있어 외워야 하는 단어처럼 받아들였는데,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인구감소란 단편적인 평균, 통계 수치로 받아들여 이야기 하면 안되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복잡계 현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인구감소에 대해 이야기하면 “원래 사람이 없는 걸 알고도 잘 살고 있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지역에서 살아갈건데 내가 왜 그걸 고민해야 하느냐” 묻는 주민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처음 그 질문을 듣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제가 인구감소라는 단어와 숫자에 빠져, 현상을 뭉뚱그려 불특정 다수에게 이야기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 것을 계기로 저는 인구감소를 다양한 방향에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잘 이야기해드릴 수 있을까? 아니 저부터도 이 현상들을 잘 이해하고 싶었답니다.
인구감소는 공부하다 보면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A. 의료·공공서비스·유통망 등과 같은 생활 기반의 붕괴, B. 외부인의 진출입 증가에 기준을 두고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제가 공부하면서 던지고 싶었던 “그 때와 지금은 다르다” 라는 관점을 몇가지 공유하겠습니다.
우리가 인구감소를 '소멸'이라는 비관적 시나리오로만 받아들이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과거의 '북적이는 인구가 기준으로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은 의연한데 연구자와 행정가들만 숫자를 보며 시스템의 시차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 '착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던져야 하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지방은 사람들로 항상 북적이는 공간이었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지방에서도 손꼽히는 역사도시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지역은 소규모의 인구가 낮은 밀도로 어우러져 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생활권으로 존재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정책으로 되돌리고 싶어하는 풍경—학교마다 아이들이 가득하고 시장이 활기찬 모습—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전후 베이비붐, 도시화, 그리고 수명의 연장이 만들어낸 전례 없는 팽창의 반동입니다. 우리가 마주한 위기는 어쩌면 “인구감소” 그 자체가 아니라, 이례적으로 인구가 급증한 사회가 적정수준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반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아주 짧고 예외적이었던 팽창의 시기를 인구 정책의 절대적인 기준점으로 삼아,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중년이 되어서도 찬란했던 20대의 그 시절을 그리워하듯이 말입니다. 대한민국의 총인구는 감소가 2020년대에 이르러서 실질적인 사회 문제로 부상하였지만 지방의 농산어촌은 이미 1970년대에 급격한 인구 감소를 겪었습니다. 지방 중소도시 역시 2000년대 들어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대규모 이동을 시작하면서 인구 감소의 길을 걸었습니다.
즉 대부분의 지방은 이미 오래전부터 '감소된 사회'로 존재해 왔던 셈입니다. 문제는 이미 줄어들 대로 줄어든 곳에서 다시 인구감소가 시작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몇몇의 지자체는 현재를 보지 않고, 인구가 가장 많았던 리즈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이제는 리즈 시절의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금의 변화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시점을 현재로 이동시킨다면 이런 고민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청년들이 떠나고 있어서 지역의 시스템이 무너지는 것일까요? 지역의 시스템이 무너졌기 때문에 청년들이 떠나는 것일까요?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기 때문에 인구가 감소한다는 진단은 정설처럼 통용됩니다. 도시화 시대에는 명쾌한 진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이 인과관계를 다시 따져보아야 합니다. 현재의 청년 유출은 이제 인구감소를 만드는 수많은 요인 중 하나일 뿐입니다. 농산어촌으로 갈수록 청년인구는 애초에 적습니다. 제2의 인구감소는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도 떠나지 않았거나 다시 돌아와 지역을 지켜 오던 주민들의 고령화, 은퇴, 자연감소에서 발생하는 공백에서 시작됩니다.
지역을 유지하던 주민들이 은퇴하면, 인구의 감소 추세보다 지역을 작동시키던 시스템의 증발 속도가 점점 빨라집니다. 1차 인구감소에는 청년과 아이들이 줄어드니 학교가 문을 닫고, 수익이 나지 않으니 병원이 멀어지며, 소매업조차 자취를 감췄다면, 2차 인구감소에는 남아있던 기능을 유지할 사람조차 줄어들어 지역 생태계에 치명적인 공백이 생깁니다. 그 결과 남아있던 사람들조차 생활의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해 지역 밖으로 떠밀려 나갑니다. 결국 인구 감소와 기능 저하가 서로를 가속시키는 악순환이 완성됩니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타지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가 기능을 상실하며 발생하는 ‘구조적 방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앞의 이야기만 하면 “그래서 우리는 소멸을 기다리는 수순밖에 없는거야?” 라며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되물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 여성에게 떠나지 말라고 보조금을 주며 읍소하는 것이 근본적인 악순환을 끊을 수 있나요? 우리 지역의 미래를 정직하게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비어버린 지역의 기능과 역할을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단 1만 명이 살아도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된다면 우리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지역을 지탱하는 역할 생태계의 복원력입니다. 적정인구와 생태계를 설계하세요.
인구가 줄고, 고령화되었는데 생태계를 어떻게 복원하느냐고요? 저는 묻고 싶습니다. “그 때의 한명과 지금의 한명은 같은가요?” 과거와 달리, 지금은 한 명이 수행할 수 있는 일이 비약적으로 많아졌습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예전에는 서너 명이 매달려야 했던 일들이 이제는 숙련된 개인 한 명이 기술을 활용해 충분히 감당해냅니다. 아니 감당하는 것을 넘어 한 명이 여러 명의 역할을 수행하는 ‘다기능적 주체’가 되었습니다.
특히 교통, 인터넷 등의 발달은 물리적 거주라는 제약을 허물어뜨렸습니다. 1970년대에 서울-부산의 이동거리는 최소 5시간이었지만, 지금은 비행기나 KTX를 타면 1시간 20분이면 다녀올 수 있습니다. 1970년대의 사람과 비교하면 지금의 우리는 슈퍼맨입니다. 서울에 살면서도 전국 어디든 다녀올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로 타지에서 출퇴근하거나 주기적으로 고향을 찾아 부모님을 돌보는 이들, 매달 놀러와 지역 사람들과 연을 맺는 사람들이 증가합니다. 그들은 비록 '주민'은 아닐지라도 지역 생태계를 실질적으로 지탱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셔도 그런 이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들을 조금만 더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외지인이 아니라 우리의 관계인구로 인정한다면 우리 지역을 함께 지탱하는 사람들은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와 2010년대를 거치며 기술의 급변을 맞이했습니다. 노트북과 KTX, 스마트폰과 SNS의 대중화는 우리가 공간을 소비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 알고리즘에 의한 선택은 특정 세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SNS와 유튜브를 보며 자신만의 알고리즘을 쌓아가고, 여행지도 SNS 검색 결과에 따라 결정해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통해 목적지로 이동합니다. 우리는 이제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내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곳'을 목적지로 삼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알고리즘 세대’의 등장은 공간의 권력을 이동시켰습니다. 우리가 친구들과 동시에 유튜브 메인 화면을 켜도 절대 같은 영상이 나오지 않듯, 우리가 마주하는 지역의 지도 또한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모두 다르게 그려집니다. 지역에서는 이 알고리즘이 자신들과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앞으로는 '선명한 알고리즘'을 선점한 지역만이 사람을 선택하고 끌어들일 것입니다. SNS와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는 무조건 큰 도시나 대규모 랜드마크를 방문했지만, 슈퍼맨이 된 지금의 대중은 기술과 결합해 전국의 숨겨진 작은 가게와 공간을 스스로 찾아내 목적지로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금의 대중은 알고리즘을 통해 발견한 공간에서 자신과 취향이 같은 이들을 만납니다. 지연이나 혈연이 없어도 '취향'이라는 공통분모만 있다면 기꺼이 달려가 친구가 되고, 물리적 거리를 초월해 느슨하게 연대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제 지역은 누군가에게 단순히 '방문하는 장소'를 넘어, 자신의 취향을 공유하는 동료들과 연결되는 '연대의 거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정책 수립자들은 여전히 사람의 변화는 고려하지 않은 채, 수요 없는 시설을 크게 짓는 데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규모가 커서 유명해지는 것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스케일이 아닌 이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제는 거대한 워케이션 센터 같은 하드웨어를 지을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의 알고리즘에 선명하게 걸릴 수 있는 로컬리티를 구축하고, 그들이 찾아와 취향을 나누며 느슨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명확한 '역할'을 제안해야 합니다. 지금 거주하시는 지역을 검색하게 만드는 명확한 키워드나 팬덤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은 과연 누가 만들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는 국가 인구의 감소라는 단순 집계의 함정에서 단호하게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정책이 주민등록번호의 개수를 늘리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면, 지역을 가동하게 하는 역할을 단위로 지역 생태계를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구 감소와 변화한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 지역의 현실에 발을 딛고 적정인구에 맞는 새로운 생태계를 고민해 필요한 역할들을 채워나가는 것이며, 인구가 증가할 거라는 가설 하에 과잉 공급된 시설, 프로그램을 비워내는 것입니다.
생태계를 계획할 때는 지역에서 필요한 역할을 주민만이 수행하게 할 것이 아니라 슈퍼맨들이 서울이나 인근 지역에서 오가며 생태계의 빈틈을 채울 수 있도록 유입과 연결의 방법도 고민해야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지역에 1만 명이 살아도 역할을 수행하는 생태계가 지역 내외로 연결되어 건강하다면 우리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대응한다면 인구감소는 지방소멸이라는 비극적 결말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새로운 생태계를 설계할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도시 연구자인 제가 공부하고자 정리한 스터디서입니다. “인구감소라는 수치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들의 생태계가 역할과 팬덤으로 연결되어 다시 채워지는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에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부족한 기록이지만 저와 같이 인구감소나 지역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하는 사람, 혹은 지자체 공무원에게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지역에서의 삶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자신의 역할을 찾아볼 수 있는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제1부: 진단 - 감소된 사회
제2부: 변화 - 인간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제3부: 대안 - 숫자에서 역할로
제4부: 실행 - 역할 생태계 설계: 탐색에서 기여까지
제5부: 비전 - 역할의 오션: 지역은 기회의 영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