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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크렁 May 20. 2022

누군가에게 반하는 순간

너의 매력은

"나 같은 사람이 모임에 오면 좋지 않아?"


등장한 순간부터 초지일관 유쾌한 캐릭터를 유지하던 그가 갑자기 물었다. 그는 그날의 분위기 메이커였고, 독특하면서도 무해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다. 질문 하나를 던지면 대답이 한 열 개쯤 돌아오는 사람. 그리고 의식의 흐름대로 대화를 진행해버리는 천진난만함까지, 확실히 매력이 있었다. 저 질문을 하기 전까지는. 


"퇴근하려는데 6시에 회의를 시작해버리는 거야"


약 10분쯤 늦겠다던 그녀는 30분이 훌쩍 지나서야 모임에 도착했다. 예전에도 모임에 참가 신청을 했다가 갑작스레 일이 늦어지는 바람에 취소를 한 번 했었던 터라, 정말 오고 싶었는데 아쉬웠다고 한다. 그녀는 자연스레 직장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면서 특유의 자조적인 농담과 싱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사소한 얘기일 뿐인데도 그 웃음이 너무 매력적이라 종일도 듣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모임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잘생기고 예쁘고의 문제도 아니고, 이성 간의 끌림과도 조금 다른데, 이게 설명하기 참 어렵다. 남녀불문, 그냥 갑자기 누군가에게 반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들의 매력은 무엇일까? 매력은 타고나는 것일까?

나도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 나는 사실 집돌이야. 모임보다 누워서 유튜브 보는 게 좋아.


그녀는 그날 가장 말이 많았고, 가장 웃음이 많았으며, 누구보다 많이 신나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만약 본인은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본인은 집돌이라며 고백했다. 다들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믿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꿋꿋하게 이런 모임은 처음이라고 말을 이었다. 이런 에너지를 가지고 혼자 집에서 즐겁게 지내는 모습이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다들 그녀가 집에서 뭘 하고 지내는지 궁금해했다. 별거 없는데 바쁘다고 한다. 유튜브도 봐야 하고, 종이접기도 하고, 아이패드로 그림도 그리는데, 요즘은 민화를 그리는 것에 빠져서 많은 시간을 그림을 그리면서 보낸다고. 또 파충류를 좋아해서 도마뱀과 거북이에 대해 찾아본다고 한다. 너무 귀여운 도마뱀이 있다면서 사진을 찾아서 열심히 보여주는 그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그 순간 나는 반해버렸다.


술을 좋아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처음에 자신을 소개한 그녀는 알아갈수록 너무나 다채롭고 일상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일반적인 질문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이 돌아왔고, 얘기할수록 더 궁금해지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확실히, 의외성에는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 '반전 매력'이라고 불리는 그런 거. 꼭 엄청나게 특별하거나 독특한 것이 아니어도 그렇다. 예전에 모임에 나왔던 그는 정말 자유롭고 개방적인 삶을 살고 있었는데, 결혼관에 있어서는 엄청나게 보수적인 스탠스를 가지고 있었다. 이혼은 없다던가, 와이프는 일을 그만두고 육아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던가 그런 것들이었다. 마냥 떠돌면서 욜로라이프를 즐기는 줄만 알았는데,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이런 의외의 면모들은 그 사람을 더 궁금하게 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반전이 있는 느낌이랄까. 도대체 앞으로의 전개를 알 수 없는 막장 드라마에서 더 눈길을 뗄 수 없듯, 사람도 그러한 것 같다. 




| 만나고 있는 이성이 이런 행동을 하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그녀는 호스트인 나보다 사람들에게 질문을 백 개쯤은 더 던지고 있었다. 지역부터 직업, 나이, 관심사 등 쉴 새 없이 질문들을 쏟아냈다. 그날은 유난히 과묵한 사람들만 모인 날이었는데, 계속해서 대화를 이끌어내는 그녀가 내심 너무 고마웠다. 덕분에 말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한 시간쯤 지나니 분위기도 말랑해졌고 조용하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녀는 쾌활한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10시가 되자 그녀는 버스를 타야 한다면서 서둘러 짐을 챙겨서 귀가했다. 남은 사람들은 한 잔 정도 더 하다 갈 생각인 듯 보여서 아쉽지만 먼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가 간 자리는 한층 조용해졌고, 나는 무슨 얘기를 꺼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갑자기 옆자리에 앉아있던 그가 그녀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초면인데 무례한 질문들이 많았고, 대답을 강요하는 태도가 불편했다는 것이다. 호스트가 뭐라고 했어야지, 하는데 깜짝 놀랐다. 내 기억으로는 크게 사적이거나 무례한 질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불편한지 몰랐다고, 혹시 어떤 특정 질문이 불편했던 건지 물어보았다. "만약 여자친구가 이런 모임에 나오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라는 물음에 대답을 회피했는데, 끝까지 대답해달라고 한 것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거기다 대고 냅다 내 의견을 말해버렸다. 대답을 강요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다 같이 재미있게 대화하다 보면 이런저런 주제가 나올 수 있으며, 불편했으면 내색했으면 알았을 텐데 정말 몰랐다고. 그는 내 대답에 조금 더 기분이 상한 듯 보였다. 얘기를 조금 더 들어보니, 그는 자신의 의견에 직설적으로 반박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반대 의견이라도 조금 돌려서 말해주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는 그녀에 대한 평가가 나와는 달랐던 것이다. 


같은 사람을 만나도 매력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는 것은 곧 매력은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느낌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내가 매력적이고 아니고는 내가 뭘 어떻게 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렇게 봐주어야 성립한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개인의 가치관과 취향의 수만큼 매력의 개수도 존재하겠다. 그리고 매력이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력 없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누군가에겐 매력적인 사람이다. 




| 나는 뉴욕이 제일 좋았어. 


그날 우리는 해외여행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예전에 다녀왔던 가장 좋았던 여행지부터 올해 비행깃값이 얼마라더라, 여기 가면 PCR을 안해도 된다더라 하는 사소한 얘기들. 누군가 독일 이야기를 꺼냈고, 마침 독일에 가본 사람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얘기가 흐르고 있었다. 맞은편의 그녀는 베를린이 가장 좋다고 했고, 옆자리에 앉아있던 그는 뮌헨이 더 좋다며 둘의 의견이 부딪히기 시작했다. 독일에 가본 적이 없던 나는 베를린에 관해 물어봤다가, 뮌헨 얘기도 물어봤다가, 중간에서 쩔쩔매며 밸런스 게임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녀는 나를 제외하고 독일에 가보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베를린대 뮌헨전에 참전하여 입을 열더니 생뚱맞게도 뉴욕 이야기를 술술 하기 시작했다. 무게중심이 자연스럽게 그녀에게로 이동했고, 그녀는 이어서 뉴욕에서 먹었던 인생 최고의 피자와 센트럴 파크를 걸으면서 들었던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래를 틀었다. 그녀는 평화적으로 독일 전쟁을 끝냈다. 


이후에도 그녀는 적절한 농담과 특유의 부드러운 화법으로 적재적소에 대화에 참여했고 나는 그녀의 여유롭고 침착한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한다거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말을 안 해서 처음에는 재미없는 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전체 대화의 약 5% 지분을 겨우 차지하는 정도. 하지만 컨트롤 타워에 앉아 시선을 분산시키고 있던 나에게는 그녀의 매력이 또렷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그 어느 것에도 부정적인 코멘트를 하지 않았고, 상대의 의견에 그건 아니라며 반박하지 않았으며, 물어보지 않은 이야기에는 그 어떤 아는체도 하지 않았다. 


아마 이 모임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말이 없는 사람을 어색해하는 나와는 잘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다. 그저 조용한 사람이구나, 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나는 오디오가 비는 것에 알러지가 있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쓸데없이 말을 얹는 성격이라 말이 없는 사람 앞에서는 괜스레 긴장스럽다. 또 내가 모임장이 아닌 자리에서 만났더라면, 나는 나와 죽이 잘 맞는 사람들과 수다 떨고 노느라 그녀와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이처럼,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상황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매력의 여부는 결정된다. 직장에서 이래저래 별로 사이가 좋지 않던 사람도 밖에서 만나면 의외로 괜찮은 사람인 경우도 종종 있다. 나의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고등학교 동창인데, 그 친구와 나는 고등학교 때는 별로 안 친하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만에 만난 이후 친해졌다. 이래서 인연은 타이밍이라고 하는가 보다. 





내 매력은 도대체 뭘까, 나는 왜 이렇게 색깔이 또렷하지 못하고 회색 같을까, 라는 고민을 한참 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페르소나를 만들고, 완벽한 그 틀에 나를 끼워 넣어 보려고 노력하던 순간들이다. 


그러던 중 예전 다니던 회사에서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내가 주도하여 업무 회의를 3시간 정도 진행했던 날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는 팀원 두 명에게 각자 면담 신청을 받게 되었다.  


한 명은 나의 추진력이 인상 깊었고, 나에게 배우고 싶은 것이 많으며 앞으로 함께 일하는 것이 너무 기대된다는 말을 건넸다. 그런데 다른 한 명은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내가 너무 혼자 앞서가는 것 같으며, 본인의 의견을 무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 불편했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 다른 두 가지의 코멘트를 들고 한동안은 고민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 둘은 내가 회사를 그만두던 순간까지도, 나에 대한 평가가 정반대로 나뉘었다. 

내가 고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던 그 순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내가 어떠한 사람이든, 누군가는 좋아하고 누군가는 싫어하는구나. 내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이 다를 뿐인 것이었다.


이 경험으로 나는 완벽한 페르소나에 나를 껴맞추려는 노력을 그만두었다. 

매력적으로 봐준다면 감사할 일이고, 아니라면 그냥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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