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크렁 Jun 23. 2022

그댈 마주하는건 즐거워

대화하기 즐거운 사람들의 특징

"아니 들어봐, 글쎄 회식을 하는데 건배사를 시키는거야."


그는 마치 친한 친구에게 푸념을 하듯 갑자기 말을 시작했다.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회식이 없어져서 좋았는데, 요즘 다시 회식이 부활해서 짜증이 난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각자가 겪은 회식문화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회식 극혐을 외치며 건배했다. 


"나는 맥주. 너는 아까 와인이라고 했고. 너는 소주고, 그럼 너는?"


나는 각자 평생 한 종류의 술만 마실 수 있게 된다면, 다들 무엇을 고를거냐고 물었다. 이런 고르기 게임의 경우 말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들도 대화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기 때문에 애용하는 질문법이다. 그는 자신의 대답과 함께 다른 사람들의 대답을 다시 되감으면서 자연스럽게 옆 자리로 질문을 토스했다. 


모임을 시작하면서 나는 술이 적당히 오르면 자연스레 대화는 즐거워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건은 술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대화가 즐거운 사람들은 술이 있어도, 없어도 즐겁고 대화하기 불편한 사람들은 술이 들어가도 여전히 힘들다. 다만 술이 오르면서 불편함을 내가 덜 느낄 뿐.


함께 대화하기 즐거운 사람들은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을까? 

대화에도 기술이 필요할까? 






| 나 사실 저번주에 남자친구랑 헤어졌거든. 


그녀는 갑자기 이별 이야기를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연애에 관한 이야기에는 흥미가 별로 없는 편이다. 내가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사실 연애의 패턴이란 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라서 그렇다. 누군가와 만났다가, 어떤 이유로 갈등이 생기고, 헤쳐나가거나 떨어져나가거나. 하지만 연애 이야기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만큼 전국민 공통적인 서사라는 것. 그 자리에 모인 우리들 모두 이별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나는 심드렁하게 듣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적당히'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사건이 있었고, 자신은 이렇게 행동했으며, 상대방은 다르게 생각해서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고. 짧고 굵은 요약이었다. 그리고는 모두에게 질문했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지, 각자 이별의 과정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여기저기로 흘러갔고, 우리는 가벼운 밀도로 담백하게 서로의 추억과 경험, 그리고 감정을 공유했다.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직업도, 나이도, 관심사도 다른 사람들간의 공통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녀는 그것을 파악하고 연애 이야기를 꺼냈고, 이어서 MBTI 이야기로, 그리고는 여행 이야기로 대화 주제를 술술 이끌어갔다.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그녀는 다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주제들만 건드리는 중이었다. 그러면서도 편향되거나 자신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법도 없었다. 뭐든지 적당히가 제일 어려운 법인데, 그녀는 적당한 대화를 할 줄 알았다. 




| 아 너무 재밌다 


호스트 노릇을 하면서 가장 기분좋은 순간은 모든 멤버들이 다 불편하거나 어색함 없이 대화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이다. 뭔가 하루 짧은 시간이라도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것 같아 내심 뿌듯하다. 이런 순간들은 대략 모임 시작 후 1시간 정도 지나고 슬슬 취기가 올라올 때쯤 찾아오는데, 이 시간까지 어색해하거나 머뭇거리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날 모임은 끝날때까지 호스트가 계속해서 분위기를 올려주어야 하기 때문에 정신이 조금 피곤하다. 


만난 지 한 시간만에 다짜고짜 "아 다들 너무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가끔, 뜬금없이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 너무 재밌고, 다들 너무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이런 멘트가 나오면 내 진실의 광대는 한껏 올라가버리고, 사무실 구석구석 숨겨놨던 과자와 술을 막 퍼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보통 이런 멘트가 나오는 술자리는 늦은 새벽까지 이어진다. 


상대방을 향한 호감의 표현은 아낌없이 하는 편이 좋다. 물론 이성적 호감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단순히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고, 나는 너와의 대화가 즐겁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만으로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여러 번의 모임을 진행하면서 하나의 기술이 생겼는데,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하던 칭찬으로 치환하는 능력이다. 너무 영혼 없는 칭찬을 남발하는 것은 아니고, 장점이나 좋은 점을 콕 집어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일단 상대방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는 법 부터 터득해야 한다. 서울체크인에서 이옥섭 감독이 말한 것 처럼, 상대방을 다짜고짜 사랑해버리는 것. 상대방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바라보자. 애정이 가면, 대부분의 경우 애정이 돌아온다. 




| 음, 이름은 안 밝힐래. 


자기소개를 하면서 개인정보는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우리 모임의 원칙이다. 보통의 경우 다들 이름과 나이, 직업등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지만 정말 간혹가다가 일말의 개인정보도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비밀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취미 정도. 


그에 반해 TMI를 남발하는 자기소개도 있다. 단순 개인정보는 물론, 고향, 학력, 조부모님 근황까지 나오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다시 만날 것도 아닌데 뭐 어때, 라는 쿨한 분들이다. 


둘 중 한가지 타입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후자를 고르겠다. 일단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는 분들이다. 굳이 싶은 정보도 있지만 상대방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아는 편이 대화를 이어나가기는 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임에 오시는 분들 모두다 어차피 서로의 정보를 다 기억하지 못한다. 이름이라도 기억하면 다행인 정도. 나이대가 비슷하고 직장 이름을 말하면 겹지인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여기 오는 사람 모두가 비슷한 걱정을 하기 때문에 어 너 혹시 얘 알아? 라는 말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나도 바운더리가 조금 좁은 사람이라서 어느 부분의 나까지만 공유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가감없이 자유롭게 나에 대해 얘기하는 편이다. 내가 먼저 오픈해야 상대방도 경계를 내려놓고 한발짝 더 다가올 수 있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바운더리를 조금만 넓혀도, 세계는 엄청난 크기로 확장된다. 


아직까지 개인정보를 오픈하지 않아도 된다는 룰은 남겨놓았다. 하지만 한가지 룰을 더 추가했다. 꼭 신상이 아니라도 본인에 대한 최소 5가지는 공유해야 하는 것. 개를 키운다던가,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던가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모두의 바운더리가 내가 다가갈 수 있는 한발짝씩만 넓어지길 바라면서. 






어제 부모님과 밥을 먹다가, 아빠가 말했다. 

"근데, 어차피 좋은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좋게 보이고 싫은 사람은 그냥 다 아니꼬와 보이는 법이야"

맞지, 진리의 사바사. 


친구랑 술을 먹다가, 그가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민의 원인은 사랑이 부족한 탓이야. 서로 가지고 있는 사랑을 조금씩만 나누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거야."


우리는 더욱 서로를 좋아하는 것 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 같다. 

세상에 모든 사람에게는 그들 각자만의 이유와 사정이 있다. 단지 내가 이해하기에 그 사람을 충분히 알지 못할 뿐. 애정 필터를 끼고 대하되, 그래도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거리를 두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빈말 잘하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