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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크렁 Jul 01. 2022

무리한 음주는 흑역사를 만듭니다.

따끔한 주사

와인과 위스키가 각 1잔씩 제공됩니다. 술이 모자라거나 더 드실 분들은 BYOB


술모임이지만, 과한 음주는 장려하고 있지 않다. 취한 사람은 감당하기 싫을 뿐더러, 누가 어떤 주사를 가지고 있는 지 모르기 때문에 더 드실 분들은 나가서 2차를 가시라고 권장한다. 그래도 1잔씩 제공한다고 써있긴 하지만 와인 1병을 사면 2잔씩은 돌아가기에, 대략 와인 2잔과 위스키 1잔 정도를 제공한다. 


보통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오시기 때문에 준비한 술이 모자랄때가 종종 있다. 

어떤 분은 술을 냉장고에 채워놨다가 사람들에게 돈받고 판매하라는 분도 있고, 진짜로 술이 더 없는지 재차 물어보고 원망하는 분도 있고, 갑자기 벌떡 나가서 사오시는 분도 있다. 


원성을 매주 들어야함에도 술을 부족하게 제공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가끔 모두가 술을 잔뜩 사들고 오는 날이 있는데, 그런 날에는 꼭 한명은 취해서 흑역사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나도 포함된다. 





"내가 자가 아파트가 있는데, 내년에 결혼하고 싶어"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다들 얼큰하게 취한 와중에, 그는 갑자기 나는 솔로에 출연한 것 처럼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싶으며, 연봉은 얼만큼이고, 재산은 얼마나 있으며, 부모님은 어떤 분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이라기 보다는 뭐 자신은 이만큼 결혼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자기어필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워낙 진지한 스타일이라, 다들 장난을 치지도 못하고 그의 자기소개를 끝까지 들어야했다. 


"너는 자녀 계획이 어떻게 돼?"


그는 여자들에게 한명씩 자녀계획을 물었다. 아무도 자원하지 않은 그만의 신붓감 쇼핑이 시작되었다. 여기는 결혼 계획도 아직 없는 사람이 태반인데, 우리는 당황하면서도 취해서 그걸 또 대답하고 있었다. 자녀 계획이 없는 그녀와 남자친구가 있는 나는 신붓감에서 탈락했다. 마지막 결승에 오른 그녀에게 그의 마지막 제안이 들어왔다. 


"결혼하면 와이프가 직장을 그만두고 집안 살림을 했으면 좋겠어."


그녀는 자신이 결승 진출자라는 사실을 모른채 그렇구나, 라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는 집요했다. "아니, 너라면 어떨 것 같아?" 그녀는 일이 재밌어서, 결혼 후에도 직장을 계속 다니고싶다고 했다. 대답이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재차 물었다. "아니, 너는 결혼하고 직장 관둘 생각이 아예 없어?" 


이제서야 사태파악이 된 그녀는 나와 눈빛을 교환했다. 이 새끼 뭐라는거야? 라는 말이 눈빛으로 전해졌다. 나는 그에게 그런걸 왜 그녀에게 묻냐, 만난지 두 시간만에 청혼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는 "혹시 모르잖아"라는 대답으로 내 말문을 막아버렸고,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그가 많이 취한 것 같으니 먼저 보내야할 것 같다는 결론을 냈고, 그는 모두가 가라고 하니 빈정이 상해보였지만 별 군말없이 나갔다. 


다음날, 그에게서 장문의 사과 문자가 도착했다. 취해서 기억이 잘 안나지만 본인이 불쾌한 질문을 한 것 같아 죄송하다고. 답장은 따로 하지 않았다. 


과도한 음주는 프로포즈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내사랑 내곁에 노래 몰라? 김현식"


무엇때문에 그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은 술을 사온 사람이 많아서, 와인 3병을 이미 끝낸 후 위스키와 맥주를 섞어서 다들 홀짝대고 있던 날이었다. 양맥, 일명 폭탄주는 매우 청량하고 맛있지만 진짜 조심해야 한다. 어느 순간 갑자기 취해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모임날이면 항상 카페에서 나올듯한 가벼운 데일리 팝 모음을 틀어 놓는다. 그런데 그날 가장 어린 친구가 내사랑 내곁에 노래를 모른다는 말에, 나는 들으면 알거라며 노래를 틀었다. 

노래를 틀자마자 늙은이들의 너 이거 알아? 배틀이 시작되었다. 젝스키스, 핑클, 베이비복스, 유승준등 옛시절의 노래가 계속해서 신청곡으로 올라왔고 결국 모두가 흥이 나버리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외로울 땐 나를 불러 뭐가 니맘에 걸려"


시키지도 않았는데 다같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분위기 노래방.

나는 숟가락을 잡고 본격적으로 혼자 솔로를 부르며 호응을 유도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연달아 세 곡 정도는 부른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도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중이다. 그래도 일어나서 춤을 추지 않은 걸 보면 일말의 자아는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그날 왔었던 그는 그 다음주에도 또 참석했는데, 지난 주 내가 신나서 노래를 몇 곡이나 불러댔다며 다른 사람들 앞에서 주사 아웃팅을 해버렸다. 아 정말, 그분은 다시는 안왔으면. 


과도한 음주 시 갑자기 콘서트가 열릴 수 있습니다. 





"너 임마, 뭐라 그랬어 이 쉐끼야"


사람들이 술을 잔뜩 사온 날이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취기가 오른 상태였고, 마침 외향적인 사람들만 모였던 날이라 텐션이 매우 높았다. 그는 갑자기 옆자리의 그녀에게 장난을 걸었다. "너 임마, 너 귀여운 이쉐키" 하면서. 


그녀는 정색하며 선 넘지 말라고 대응했다. 여기는 반말하는 곳이지, 막말하는 곳이 아니라고. 나도 옆에서 술이 좀 취한 것 같은데 정신 차리라고 말했고, 그는 "안 취했어 이쉐키야"라며 이죽거렸다. 


"이건 욕이 아니야. 애정을 담은 애칭이야, 이 쉐키야"


여기서 누가 그의 동생인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의 언행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어갔다. 그는 우리가 뭐라고 할수록 더욱 신이나서 이새키 저새키를 외쳐댔고, 나는 자리를 정리해야할 때임을 직감했다. 이제 정리를 시작해야 하니 다들 택시를 잡으라고 했는데, 이미 술이 너무 취한 그는 집에 가기 싫다며 억지를 부렸다. "너무 재밌는데 왜, 나 아쉬워, 안갈래" 


그의 말을 무시한 채 한 명씩 택시를 잡아 집에 돌아갔고, 그는 대리기사가 안잡힌다는 핑계로 돌아갈 생각조차 없어보였다. 나는 서둘러 뒷정리를 시작했다. 취한 상태라 설거지를 다 하기는 무리였고, 일단 다른 여성분도 남아있었기 때문에 얼른 귀가를 서두르기로 했다. 다행히 그녀와 나는 집의 방향이 같아서 같이 걸어가겠다며 그를 간신히 떼어냈다. 


그는 주차장으로 가야했기 때문에 우리와는 엘레베이터에서 헤어졌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잠이 들었고, 새벽에 잠깐 눈을 떴는데 그에게서 문자가 와있었다. 차키를 잃어버렸다고, 지하에 갇혀있으니 데리러 와달라는 문자였다. 


무례한 언행만 아니었어도 전화라도 해봤을텐데, 그냥 무시했다. 다 큰 성인인데 뭐 어련히 알아서 가겠지 싶었다. 더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장문의 사과 문자가 와있었다. 술이 많이 취해서 실수를 한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잘 들어갔냐고 답문을 치려다가, 그냥 액정을 껐다. 답장이 오지 않는 하루 온종일 부끄러워하길 바랬다. 


과도한 음주는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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