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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라이 Jan 28. 2024

눈이 배트에 맞을 때마다 웃음이 팡팡 터졌다

소소한 일상, 작은 행복의 기록 19 - 조망 효과

활기차게 눈이 내리는 풍경과 달리 집 밖의 세상은 고요했다. 하얀 스펀지 같은 눈이 작정하고 쏟아지며 세상의 모든 소리를 흡수한 듯 먹먹하기까지 했다. 우주에 가면 제일 먼저 엄청난 적막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니 눈 내리는 날은 가보지 못한 꿈의 우주를 상상하게 했다. 어쩌면 아이들은 은하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막막하고 아름다운 눈의 정경을 보며, 어렴풋이 무한한 우주를 꿈꾸지 않을까? 실제로 우주를 경험한 거의 모든 우주 비행사들은 광활한 우주에서 작고 연약한 지구를 보며 감응받아 겸허해진다고 한다. 시사평론가 프랭크 화이트는 이 현상을 가리켜 조망 효과(overview effect)라 했다. 아이들도 위대한 자연 안에서 공손한 마음을 배우고,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싹트길.



셋째가 투명한 유리창 너머의 하얀 세상을 보고 탄성을 지른 것은 찰나적 순간이었다. 기모가 들어간 청바지, 짝짝이 양말, 두툼한 잠바 그리고 폭신한 스키 장갑 두 켤레. 셋째의 작은 두 손에는 너무 크고, 딱 맞는 스키 장갑 두 켤레가 들려 있었다. 아이의 것과 어른의 것. 꼭 맞는 제 것과 '제 것'이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커다랗고 시커먼 그것.

"엄마, 눈 와. 나가자."

쭈뼛쭈뼛, 쪼물쪼물. 뭔가를 하자고 제안하는 아이답지 않게 자신감을 잃은 목소리였다. 나는 책에서 셋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탁'하고 소리 나게 책상 위에 책을 내려놓았다. 어서 나가자며 벌떡 일어섰다. 네가 소중하게 붙들고 있는 가느다란 '기대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내가 셋째의 손에 들려 있는 장갑을 건네받자 아이는 유들유들한 미소를 보이며 안도했다. 거의 확실한 느낌으로 엄습해 오는 불안감이 깨질 때 오는 기쁨과 사그라들던 불씨가 죽지 않고 되살아 나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를 보는 즐거움. 그때 그 순간, 셋째와 나에게 온 행복의 모습이었다.


 

2년 전 겨울까지만 해도 나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던 사람이었다. 여름이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아이들과 수시로 풀밭을 누비며 풀보다 높이 뛰어오르는 방아깨비와 메뚜기를 낚아챘다. 동네 아이들은 자주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가끔은 잠옷바람으로 나타났다. 우리 아이들과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여름 한낮에 족대를 들고 시원한 물이 흐르는 얕은 천에 가서 물고기를 잡았다. 한여름 밤에는 손전등과 채집통을 들고 낮은 산에 가서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를 잡았다. 비 오는 날에는 개구리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찾았고, 눈이 오는 날에는 눈덩이를 굴려 크고 작은 눈사람들을 만들었다. 거의 모든 것을 꽁꽁 얼려 버리는 겨울에는 대부분의 야외 활동도 얼어붙었다. 그랬기에 눈이 오는 날의 바깥놀이는 더욱 소중했다. 소복소복, 온 세상이 흰 눈으로 뒤덮이면 아이들은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썰매를 가지고 나와 비탈지고 한적한 천변에서 함성을 지르며 오르내렸다.



이제 우리 아이들과 동네 아이들은 자랐고, 그 사이 내게도 꿈이 생겼다. 아니 내게 꿈이 생기며 아이들은 쑥 자랐다. 책을 들여다보고, 모니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내 뒷모습을 보며 세 아이들은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을 보냈다. 내가 해주던 일들을 아이들이 손수 챙기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성장했다. 아침에 스스로 일어났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부터 했다. 수업시간표를 보고 준비물이나 필요한 것들을 체크했다. 가끔은 내가 읽는 책을 빌려가 읽었고, 방학 중에는 내게 퀴즈를 내달라며 재촉했다. 내가 애호하는 분야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선호하는 분야의 퀴즈를 내기 위해 나는 날마다 세계사와 한국사, 미술사를 읽고 정리했다. 며칠 전, 문학동네에서 마련한 앤드루 포터의 북토크. 셋째는 자연스럽게 내 무릎 위에 앉아 줌으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의 작가를 만났다. 그날은 <사라진 것들>의 작가로 수염이 덥수룩하게 나 있었다. 셋째는 화면 속 작가를 보며 잘생겼다고 말했고, 나는 수염이 없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서의 작가는 더 근사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적응이 빨랐다. 변모하고 변태 하려는 나를 응원했고, 변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 내게 특별히 바라는 것도 없었다. 고작해야 눈 오는 날 밖에 나가자, 화창한 날 야구하러 공원에 가자, 다 같이 보드 게임 하자, 일상의 이야기를 들어달라 정도였다. 그러니까 눈 내리던 2년 전 겨울처럼, 밖에 나가 눈싸움하자고 당당하게 말해도 되는 것이었다. 그건 무리한 것이 아닌 당연한 것. 사랑하는 아이와 눈밭을 뒹굴 준비는 언제나 마음에 기초했다. 꿈이 생겨도 아이가 원하는 놀이를 같이 하는 것은 언제나 오케이였다.  



활기차게 눈이 내리는 풍경과 달리 집 밖의 세상은 고요했다. 하얀 스펀지 같은 눈이 작정하고 쏟아지며 세상의 모든 소리를 흡수한 듯 먹먹하기까지 했다. 우주에 가면 제일 먼저 엄청난 적막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니 눈 내리는 날은 가보지 못한 꿈의 우주를 상상하게 했다. 어쩌면 아이들은 은하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막막하고 아름다운 눈의 정경을 보며, 어렴풋이 무한한 우주를 꿈꾸지 않을까? 거대한 우주에서 인간은 먼지같이 보잘것없는 존재인 동시에 특별한 존재이니까, 장엄한 대자연의 품에서 뛰어놀며 겸손해지고 독자적인 존재로 자라나지 않을까? 실제로 우주를 경험한 거의 모든 우주 비행사들은 광활한 우주에서 작고 연약한 지구를 보며 감응받아 겸허해진다고 한다. 시사평론가 프랭크 화이트는 이 현상을 가리켜 조망 효과(overview effect)라 했다. 아이들도 위대한 자연 안에서 공손한 마음을 배우고,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싹트길.



"와~!"

이제 멀리 있는 고요한 우주가 아닌 가까이에서 환호성을 지르는 '소우주'를 챙겨야 했다. 펑펑, 펑펑. 본격적인 '눈놀이 타임'. 도톰하게 쌓인 눈을 내보이며, 우리를 환대하고 있는 듯한 공터로 달려갔다. 신기하게도 오늘의 눈은 인도나 차도에 쌓이지 않았다. 오히려 닿자마자 물로 변했다. 화합물이 아닌 자연 위로만 내리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푹신한 흙과 폭신한 눈으로 펼쳐진 공터 위로만 쌓여 갔다. 셋째와 놀기에 안성맞춤. 빠르게 눈을 그러모아 작은 눈덩이를 만들었다. 눈은 수분이 부족해 덜 뭉쳐진 밀가루 반죽처럼 반은 덩이 졌고, 반은 풀풀 날렸다. 셋째는 개의치 않았다. 재료를 탓하지 않고, 놀 궁리에 집중했다. 노는 것 자체를 긍정했다. 아이가 상관없으니 나도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스피드. 견고함 따위는 바람에 날려 보내고, 대충 뭉쳐 눈을 날렸다. 셋째의 작은 몸에 명중. 어른의 손으로 잽싸게 뭉쳐 긴 다리로 달려가 내리꽂듯이 던지는 건 아주 쉬웠다. 셋째는 공격당했음에도 까르르 웃었다. 눈이 부서져 눈가루가 옷 속으로 들어갔다며 까르르까르르 소리 내어 웃었다. 아주 차갑다며 목젖이 보이도록 웃었다. 작은 손으로 꾹꾹 눌러 만든 '미니 눈덩이'를 내게 던졌다. 날아오는 둥근 물체를 무서워하는 덩치 큰 어른을 공격하는 건 누워서 떡 먹기였다. 게다가 셋째는 집에서도 공 없이 공 날리기 연습을 매일 하는 꼬마 투수. 적중률 100%였다. 야무지게 만든 눈은 내 것과 달리 구심이 단단했다. 맞으면 꽤 아팠다. 나는 악악거리며 눈밭 위 새처럼 뛰어다녔다. 꼬맹이는 내 뒤를 쫓으며 깔깔 거리며 웃었다.



아이와 놀 때, 어른인 사실을 종종 잊는 나는 '눈 야구'를 하고자 제안했다.

"눈으로 야구공을 대신하는 거야."

내가 영원한 투수가 될 테니 네가 홈런을 날리는 타자가 되라고 하자 셋째는 투명하게 웃었다. 셋째는 배트를 가지고 나오겠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기다란 배트를 들고 와 엉덩이를 뒤로 뺐다. 자세를 낮추고 4번 타자가 되어 침을 꼴깍 삼켰다. 멋지게 홈런을 하고야 말겠다는 얼굴이 비장했다. 나도 잘 던지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사력을 다해 던졌다. 허접한 투수와 꼬마 타자가 한 팀. 야구공이 된 작은 눈덩이는 중력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삼분의 이쯤에서 낙하했다. 나는 두어 발 내디딘 후 다시 던졌다. 이얍! 셋째는 날아오는 공에 눈길을 부착하고 배트를 휘둘렀다. 작고 둥근 눈덩이는 배트에 탁 맞았다. 홈~런~!, 이어야만 하는데, 눈은 '팡'하고 터졌다. 일순 침묵. 곧이어 하하! 유쾌, 통쾌한 아이의 웃음소리가 터졌다. 나는 눈을 여러 개 뭉쳐 셋째를 향해 연속으로 날렸다. 배트에 맞을 때마다 비눗방울이 톡톡 터지듯 눈이 팡팡 터졌다. 셋째는 눈이 배트에 맞아 탁 터질 때 나는 소리가 좋다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 웃음이 좋아 뭉치고 날리고 또 뭉치고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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