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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Nov 23. 2018

사랑과 여행은 함께하면 좋습니다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자급자족 셀프웨딩

사랑과 여행의 공통점


혼자보다 함께 할 때 행복하다

다양하게 많이 할수록 좋다

하면 할수록 노련해진다

길면 길 수록 힘에 부치기도..

감정의 깊이와 기간은 비례하지 않는다

돈보다 시간을 들일 때 비로소 많은 것을 얻는다

끝이 있다




사랑과 여행은 닮은 점이 많다.

나는 이렇게나 닮은 두 가지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함께하는 편이다. 이 사람을 만나고부터.


작년엔 아이슬란드였고, 재작년엔 동유럽과 북유럽이었고, 올해는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해가 거듭날수록 우리가 함께 가는 여행이 조금 힘들어지기도, 많이 편안해지기도 한다. 올해는 우리가 만난 지 세 번째 해이고, 벌써 세 번째 함께 가는 유럽이자, 아마 연애의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유럽이 될 것 같다.
작년 나의 은반지 프로포즈로 우린 올해 정식으로 결혼을 약속했고, 내년엔 예식을 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분명 이번 유럽여행은 특별해야 한다.

작년은 재작년보다, 올해는 작년보다 조금씩 더 확신에 찬 마음으로 여행길에 오른다.


Lisbon의 잘 고른 에어비앤비, 2018



사진과 여행을 놓고 살 수 없는 나는 늘 가지고 있던 목표가 있다. 연애를 하고 여행을 다니면서 차곡차곡 찍어 만드는 결혼사진. 여럿을 돌고 돌아 만난 우리의 결혼을 특별히 더 기념할 사진. 이것을 그저 흔한 '웨딩사진'이라고 부르기엔 왠지 아쉽다.  


그렇다고 미래가 공유되지 않은 누구와, 아무 약속도 하지않고, 함께 가는 여행마다 옷을 갖춰 사진을 찍을 순 없잖아. 예식을 일 년 정도 앞둔 이번 여행은 분명 기회였다. 돈을 아끼기 위한 셀프웨딩은 아니다. 찍어본 적만 있지 찍혀본 적 없는 어색한 스튜디오에 지불하는 비용보다 여행에 드는 비용이 내겐 더 가심비 높았다. 그렇다고 대강 찍은 셀카느낌은 안된다.

직업이 아트인데 내 성에 차려면 어느 정도 퀄리티는 나와주어야 한다.

또 나는 지수손사진관이니까. 나에겐 보정 스킬이 있지.


하지만 완벽히 셋팅하고 작가가 찍어줘도 힘든 웨촬과 유럽이라니,

이 여행은 여느 때 보다 더 사랑과 여행이 크로스오버될 것이 분명했다. 한마디로 두배로 힘들 거란 예감.




우리 다움을 자연스럽게 . 이왕이면 멋진 여행길에서 . 아름답게 남기기로




1/ 가장 나와, 너, 우리스러운 장면일 것
2/ 그 표정과 몸짓에 감정이 담겨있을 것
3/ 몇 년 뒤에 보아도 그때 그 장소, 우리 모습이 생각날 것
4/ 이 행위가 우리 어느 하나에게라도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닐 것
5/ 직접 찍을 것


나의 기준이었다. 아무쪼록 이렇게 즐겁게 우리 연애가 끝날 때까지, 좋은 날들을 계속 남겨보기로 한다.


이제부터 보라색은 나름대로의 꿀팁.


2017, 동해




일단 촬영을 계획한 것보단 여행을 결정한 것이 훨씬 먼저였기 때문에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대략 정해져 있었다. 


포스터로 정리해 본 우리의 루트


바르셀로나(몬세라트,시체스) - 안달루시아(말라가,푸엔히롤라,미하스,론다,자하라,세빌) - 리스본 - 포르투




이 루트 안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촬영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했다. 어딜 가나 관광객으로 바글바글, 소매치기로 우글우글한 바르셀로나에서 셀프촬영은 미친 짓이다. 애초에 나에게 이 여행의 목적은 바르셀로나보다 남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기에 자동차를 가지고 여행하는 안달루시아 일정을 본격 촬영날로 잡았다.

하지만 이왕 멀리 가는건데, 요 며칠만 하기엔 남아있는 포르투갈이 아쉬우니까, 어쩌지? 그래서 생각해낸 건 유럽의 집. 

여행을 다니다 보면 우리나라와 다르게 다양하고 개성 있는 숙소들이 많으니 잘 활용하면 괜찮겠지 싶었다.

편하게 머물면서 사진도 잘 나올만한 곳으로, 좁은 호텔방보단 넓고 개성 있는 에어비엔비 위주로 (촬영용) 숙소를 골랐다.




Fuengirola, Andalusia Spain 2018



말라가에서 차를 빌려 안달루시아 여행을 시작했을 땐 사진 찍지 말고 그냥 여행이나 할까, 싶을 정도로 멋진 바다를 만났다. 시리게 파란 스페인의 남쪽 바다.



불타는 모래에 호기롭게 들어갔다가 한 컷 찍고 바로 포기. 하뜨거와 어금니꽉.



하지만 역시 만만치 않다.

익어있는 모래에 발 한번 데이고 바로 돌아 나왔다. 눈으로 보아야 더 예쁜 정오의 바다.

시작이 나쁘지 않았지만 9월 말인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너무 뜨거운 날씨에 바리바리 싸온 양복 재킷은 개뿔, 셔츠만으로 땀이 줄줄, 드레스는 이미 축축 들러붙었다. 이대로 괜찮을까, 걱정부터 앞섰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다시 에어컨이 빵빵한 차로 대피한다.



두 번째 스팟은 안달루시아의 대표적인 하얀마을 미하스(Mijas).

미하스에 도착하니 예쁜 나무 한그루가 주차장 앞에 있었다. 안달루시아가 좋았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름모를 나무들이였는데, 이 나무는 모양도 크기도 색깔도 전부 너무 아름다웠다. (취향존중)

이런 나무 아래서 결혼하면 얼마나 좋을까.

나무 아래에 신랑감을 세운다.



날 안아드는 연습을 해. 어서.
카메라 리모콘을 잽싸게 숨기다 찍힌 베스트 샷



카메라 리모컨보다 카메라 기종별 인터벌 릴리즈를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놀면서 찍기에 좋다. 

수신기와 리모컨의 방향이 일치해야 하기에 적당한 위치에 잘 숨기는 게 포인트.





이곳 촬영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정수리에 꽂히는 태양은 왜 이리 뜨겁고 또 카메라 초점은 왜 이리도 안 잡히는지. 9센티 구두를 신고 드레스를 끌고 삼각대와 스팟을 돌아가며 앵글을 맞추고 조리개를 맞추고 포즈를 맞추고, 열두 번도 더 왔다갔다 해야 했다.


오빠는 사진을 잘 모른다. 카메라를 다룰 줄은 더더욱 모른다. 그래서 혼자 개고생 하는 나의 어시스트를 자처했는데, 양복보다 더 불편한 드레스를 배려한다며 모든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이동해주었다.

다정하기도 하지. 사실 나 이때 좀 감동했어.




블랙의 마법


그리고 왠지 어색한 사진을 흑백으로 만들면 한결 살아날 때가 있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블랙의 마법.




남들보다 명확한 목적이 있는 여행이었기에 미하스를 구석구석 걷는 욕심은 내려놨다.

드레스와 양복을 입고 차를 몰고 다음 도시로 떠난다. 로드트립의 묘미는 원래 둘러둘러 가는 것이니 보이는 멋진 곳마다 차를 세웠다.



자 거기서, 이쪽을 보고, 아니, 그쪽 말고 이쪽. 자 이제 그 각도로, 그렇게 찍어봐. 오 좋아 그렇지. 포즈는 작가네.


라고 내가 말한다.

이러면서 찍는다. 찍힌다.


그래도 배우면 곧잘 찍는 공대생. 역시 인풋 아웃풋이 확실하다.


 





트렁크를 열어놓고 사진을 찍을 때 길목을 지나는 모든 차들이 경적으로 멜로디를 만들었다. 수많은 축하, 환호, 박수, 글로벌하게 참 많이도 받았던 곳, 다정한 안달루시아.







우리끼리니까, 포즈와 동작은 과감하게.

 

영화 속 스틸컷 같은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인스타그램에 차고 넘치는 귀여운 커플사진들 말고, 오래 보아도 좀 더 멋있는 사진. 어정쩡하게 굳은 몸과 불안한 시선처리 말고, 애매한 것 보단 과감한 것. 유연하게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만드는 게 중요했다.

팔 동작, 손동작, 다리 등을 크게 움직여야 멋있게 나온다.

우리끼리는 오글거릴 수밖에 없다. 결과는 멋지니까 과정은 아무도 몰라. 손 발 없어진거 우리만 알지.






그리고 찍어놓고 보니 가장 중요한 건 표정. 가장 자연스럽고 행복한 웃음. 몸매와 색감은 보정을 할 수 있지만 표정은 스킬로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사실 웃는 연습하면서 입모양만 움직이면 그 어색함이 티가 난다.(오빠 니 얘기야) 내가 직접 촬영을 결심한 것도 내 남자친구가 다른 사람 앞에서 웃어 보이는 것과 내 앞에서 웃는 게 너무 달라서니까.

서로의 앞에서만 가장 자기답게 웃을 수 있으니 마음 놓고 웃도록 한다.



론다의 누에보다리



우리는 종일 충분히 고생했다.


그날 자정, 집에서 소분해온 울샴푸와 드레스를 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흙물이 든 웨딩드레스 밑단을 손빨래하는 론다의 밤이란. 정말이지 수고스런 하루였다. 이게 진짜 고행이지 여행인가, 내가 이 짓을 왜 한다고 했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찾아오는 현자 타임.



그리고 그는 나를 사고녀라 부르기 시작했다.

사서 고생하는 여자.

희한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부 다 즐겁게, 나보다 더 열심히 해주는 사람. 신랑감도 잘골랐지.



다음 날 아침산책 후 전날 했던 후회는 잊은채 또다시 드레스와 셔츠를 입고 차에 올랐다.

'손빨래와 후회는 한 시간, 그리고 우리가 얻은 사진과 추억은 평생' 뭐 이런 긍정적인 마인드로.





그리고 론다를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났을까, 또다시 로드트립의 묘미를 톡톡히 봤다. 

상상에도 없던 곳.


 




사진에 재능이 없는 사람도 연사를 설정한 카메라를 쥐어주면 꽤 그럴싸하다.

그리고 그 앞에서 최대한 자연스럽고 예쁘게 놀면 된다. 난 오늘 제일 예쁘다고 주문을 걸면 된다. 스무 장 중에 한장은 건진다.


신부사진은 이렇게 찍었다. 그리고 정말 풍경이 다했다.



자하라(Zahara) 옆의 저수지라는데 저수지라고 하기엔 그 단어가 너무 아쉬운, 내 마음속 호수.




못생겨도 괜찮아...


인터벌 릴리즈를 사용하면 원하는 만큼 '몇 초 간격으로 몇 회 촬영' 셋팅이 가능한데,

이때다 싶을 때 상대를 간지럽히거나 괴롭히거나(꽁냥꽁냥) 하면 자연스러운 즐거움이 잘 잡힌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급습이다.





우리끼리 찍다 보면 계속 왔다갔다 하며 결과물을 확인할 수 없다보니 포커스가 나간 사진이 제법 있다.  

생각보다 이 느낌 이대로 나쁘지 않아서 만족.

 

촬영 둘쨋 날은 첫날보다 고생을 줄였다.

무엇보다 촬영이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 되면 안 되기 때문에 많이 쉬고 조금 찍는다.

힘들지만 좀 참고서 하자, 해봤더니 누군가는 분명 기분이 상했다.





그리고 다음날 여유 있게 도착한 포르투갈.




이제 여기서부터는 내가 선택한 회심의 에어비엔비가 큰 일을 한다.


과감히 돈을 쓰고 손꼽아 기다린 리스본의 숙소는 테라스 뷰가 모든 것을 다하는 집이었다. 이 집에 들어와서 소리를 질렀다. 힘들게 돌아다니지 않고 그냥 집에 눌러앉고 싶은 뷰, 그리고 우리의 촬영 포인트.



Airbnb, Lisbon Portugal
삼각대 테스트 중 실수로 나온 한 장, 역광 느낌 좋은데?


메인 피사체 앞에 또다른 정물을 걸고 찍으면 공간의 깊이감이 생긴다.(여기서는 촛대, 혹은 의자)


해가 떨어지는 각도마다 만드는 빛도 전부 예쁘고.



심지어 화장실도 예쁘고.






스튜디오 촬영이 안 아쉬운 우리만의 단독 스튜디오. 에어비앤비는 정말 신의 한 수다. 



어쩌다 보니 귀여운 웨이터랑




게다가 우리가 고른 집 바로 앞은 리스본의 대표 전망대다.

도착한 첫 날 저녁부터 마지막 날 아침까지 힘들이지 않고 많이도 찍었다. 숙소 잘 고른 나 정말정말 칭찬해.



한 손에 리모콘 필수
잘 숨김
콧구멍 부자


자연스러워서 좋은 나,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사진.


이미 조숙하거나 순수하거나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신부의 모습은 버린지 오래다. (포기) 내 스타일 아니니까.

억지로 만드는 이미지는 잘 안나온다. 어쩌면 신부들의 웨딩사진이 괜히 어색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신부는 왠지 모르게 눈을 아래로 내리고 부끄러운 미소가 어려있는 수줍은 얼굴을 해야할 것 만 같으니까.

난 평소에 수줍은 사람이 아닌데. 아무한테나 말도 잘 걸 고 시도때도 없이 잘만 웃고, 남들이 잘 안웃어 줄 뿐 개그욕심도 많고, 또 여기저기 쿵쾅거리고.

그렇게 '신부이미지'를 신경써서 사진을 찍다보니 어색하기만 하고 나스럽지 않아지는게 아닐까. 이런 나는 역시 나다울 때 가장 예쁘다.



한국 단체관광 아주머니들께서 뷰포인트에 구경 오셨다가 '어머 you are so beautiful!'이라고, 연이어 '어머어머, 저거 한국인 아니야?' 소리치고 가셨다.

네 이거 한국인 맞아요.




확실히 숙소에서 찍는 사진이 덜 수고롭다. 몸은 두배로 편하고 만족감은 두배로 높다.

더 맘껏 쉬면서, 더 맘껏 까불면서 찍을 수 있다.


그렇게 잘 고른 리스본의 비엔비는 돈값을 톡톡히 하고 예쁜 기억을 남겼다.





우리의 마지막 촬영지. 리스본이랑은 좀 다른 포르투의 애어비엔비다.





19세기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숙소로 엘리베이터가 없고 삼각 지붕 모양의 높은 천장을 한 꼭대기 층이었다. 이런 숙소 형태를 서양에선 스튜디오(studio), 또는 플랫(flat)이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하면 원룸이다. 높은 천정을 활용해 복층 공간으로 만들어 놨다.

 

리스본 같은 뷰가 있진 않지만, 주인 부부가 건축과 패션을 공부한 전문가라 집이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기다려봐, 안경에 비친 초록색 빛은 내가 어떻게든 없애줄게.


또다시 나온 스튜디오 대체 컷.

이 정도면 충분하다.





다시 한 번, 블랙의 마법




까먹고 있던 베일을 마지막 날 드디어 꺼내 썼다. 너 한번 나 한번. 내가 시킨 거 아니다.

뷰 없이도 아름다운 포르투의 테라스. 포르투갈의 아줄레쥬가 건물을 덮고 있다.



포르투 에어비앤비의 발코니


아 아쉽다.



포르투 숙소를 끝으로 우리의 웨딩촬영여행은 끝이 났다.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이걸 꺼내 입고 하얀겨울을 담을지, 노란 봄을 또 담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벼르고 벼르던 우리의 큰 놀이 하나가 끝났다.

보기만 해도 힘들었겠다는 친구들도, 내 덕분에 새로운 로망이 생겼다는 친구들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기꺼이 개고생을 감수할 마음이 있다면 적극 추천한다. 



우리만의 색깔로, 우리만의 분위기로 만든 사진이 주는 추억은 어마어마하다.

글을 쓰는 지금도 이렇게 아련한데 과연 10년 쯤 뒤엔 어떨까.

 

우리는 이 사진들을 보면서 그 때 그 뜨거웠던 정수리와 부워서 아픈 발가락보단 반짝이는 파도와 올리브색 나무가 더 생각날 거라 믿는다.

 


역시나 우리가 더없이 사랑할 땐, 길이 남을 여행을.

이왕이면 길이 맘을 기록까지.








여행과 촬영 전 준비한 것

1/ 회사에서 하던 일이 어느덧 취미가 되어버린 이미지 수집 (레퍼런스)
2/ 화려한 스튜디오 대신 색깔 있는 숙소 예약
3/ 한번 빌려 입는 드레스 말고, 내 스타일 맞춤 제작 드레스(남자는 기성 양복, 다이소 나비넥타이)
4/ 카메라와 인터벌 릴리즈
5/ 베이지색 구두, 짧은 베일, 귀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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