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잘 몰랐던 소주 이야기
우리는 소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얼마 전 국제와인 및 주류 전시회인 비넥스포에서 세계에서 가장 증류주를 많이 소비하는 국가를 발표했다. 2016년도 기준으로 3위는 불가리아, 2위는 러시다, 그리고 1위가 바로 한국이다. 러시아가 연평균 19.27리터 정도를 소비하는 것이 비해, 한국은 31.54리터를 소비한다. 양으로만 친다면 50% 이상 더 높은 수치다. 이렇게 한국이 증류주 소비 국가 1위가 된 것은 압도적인 소주의 소비량 때문. 덕분에 주량에 대한 화두가 나오면 소주 몇 병을 마신다는 것이 기준이 될 정도다. 덕분에 한국 사람은 소주에 대해서 참 잘 안다고 생각한다. 워낙 많이 마셔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소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의외로 알 듯 말듯 한 소주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소주 병이 초록색인 진짜 이유는?
지금 현재 출시되고 있는 소주(희석식 소주)는 초록색 병이 가장 많다. 이유는 1994년대 출시된 그린 소주가 대히트를 쳤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두산은 강원도 강릉의 경월소주를 인수하게 되는데, 그때 생긴 회사 이름이 두산 경월이었고, 첫 번째 나온 소주가 그린(Green) 소주였다. 이 소주가 1999년 단일 소주로는 30%가 넘는 최고의 시장점유율을 기록, 이후 소주 병이 초록색으로 바꿨다는 이야기이다(두산의 그린 소주는 이후 롯데주류로 넘어가 '처음처럼'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야기는 또 있다. 공장에서 막 출시된 소주병 자체가 초록색이기 때문이다. 즉 가공이 필요 없고 추가적인 염료 비용이 들지 않는다. 한마디로 가장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상태다. 소주업계는 2010년 병 디자인까지 하나로 통일, 공병 공용화 협약을 진행한다. 이후부터 제조업체와 관계없이 소주 병을 재활용하여 판매하게 된다.
결국, 소주가 초록색인 이유는 그린 소주가 히트친 것과 그리고 태생적으로 저렴하게 매입할 수 있는 색이 초록색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막걸리는 유리병을 많이 쓰지 않는다. 이유는 영세한 막걸리 양조장이 많다 보니 소량으로 병을 구입해야 하는데, 양이 적으면 대기업 중심으로 거래를 하는 유리병 업체가 상대를 안 해주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 구입한다 하더라도 소량인 만큼 대기업에 비해 매입단가가 굉장히 높아진다. 막걸리 시장이 와인처럼 고부가가치 시장이 크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일부 프리미엄 제품을 제외하고는 100, 200원 자체가 매출을 좌우하는 등, 가격 인상에 무척 인색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유리병으로 판매한다 하더라도, 소주나 맥주처럼 공병 회수가 안되는 만큼, 유리병을 구입하는 것은 순수한 비용으로 밖에 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유리병을 쓰는 막걸리의 경우 그만큼 제품에 대해 자신감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유리병에 병입된 막걸리에 충분히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와인과 평행이론? 소주 병의 목을 치는 이유는
소주 애호가들이 하는 행동 중 하나가 바로 병의 목을 치는 것이다. 최근에 소주 소믈리에가 등장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그렇다면 왜 소주 목을 치는 것일까? 막걸리처럼 흔들면 맛이라도 달라지는 것일까? 현재 소주는 모두 스크류캡을 사용하고 있다. 돌려서 따는 아주 간편한 구조다. 그전에는 크라운이라고 하는 병 마개가 있었는데, 초기에는 와인과 같은 코르크를 사용했다. 코르크는 나무 재질로 마르면 부서지고, 또 뚜껑을 열다가 부스러기가 술 속에 떨어질 때가 있다. 이 때문에 술을 따를 때 코르크 부스러기가 같이 나오면 무척 불쾌해지거나 불량품같이 보였다. 이에 소주 목을 쳐서 코르크 찌꺼기를 처음부터 없애버렸던 것이다. 소주 바닥을 팔꿈치로 치는 것 역시 코르크가 잘 나오라는 뜻에서 했다.
또 하나 소주 병의 목을 치는 이유는 지금처럼 기술이 발달되지 않았을 때는 소주에 흰색의 지방산이 소주 위에 둥둥 떠 있기도 했다. 미관상 안 좋았던 이 모습에 지방산을 제거하고자 소주 병의 목을 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첫 번째 따르는 소주는 버리라고 한 풍습이 여기에도 있었다.
참고로 비슷한 행위가 와인에도 있다. 우리나라는 술을 따를 때 가장 손윗 사람부터 따르지만 와인은 호스트가 먼저 맛을 본다. 이것은 와인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있었지만 코르크의 조각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서, 먼저 상태를 체크하고 그 다음에 손님에게 따르는 것이었다.
소주는 공업용 알코올로 만든다?
한때 소주에 대한 괴담이 퍼진 적이 있다. 대표적으로 공업용 알코올로 소주를 만든다는 것이다. 만약 공업용 알코올이 메탄올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100% 틀린 말이다. 메탄올은 모두가 인식하듯이 눈이 멀거나 또는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치명적인 물질이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을 보면, 미군이 독성물질인 포름알데히드를 무단으로 한강으로 방류, 거기서 괴물이 탄생하게 되는데, 이 포름알데히드가 메탄올이 산화(분해)되면 변하는 물질이다.
다만, 메탄올이 아닌 에탄올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최근에는 에탄올을 주재료로 다양한 공업용 알코올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용 에탄올 부동액이다. 메탄올을 중심으로 썼던 부동액이 최근에 에탄올로 다 바뀐 것이다. 다만 아무리 에탄올 부동액이라도 절대로 마셔서는 안 된다. 이유는 단순한 에탄올뿐만이 아닌 다양한 물질도 같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진행된 미국의 금주령 시대에는 이렇게 공업용 에탄올을 사람들이 몰래 마시다 보니, 그 폐해를 줄이고자 메탄올을 섞어서 만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음주 자체가 줄어들지 않아 결국 금주령은 실패한 정책이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소주의 주원료인 주정은 공업용으로 쓰일 수는 있으나, 극 독성물질인 메탄올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공업용 에탄올로 활용될 수는 있어도, 에탄올 자체는 우리가 섭취하는 맥주, 소주, 위스키 등 모든 술에 들어가는 성분인 만큼 오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거듭 이야기하지만 에탄올이라도 공업용은 절대로 섭취해서는 안 된다.
소주는 화학주?
소주가 화학주라는 말하는 부분도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화학이라는 것은 물질에 변화를 다루는 학문으로 그 시초는 이슬람의 연금술로 많이 보고 있다. 연금술은 세상의 모든 물질을 물, 불, 공기, 흙 등 4원소로 되어있다는 논리를 기본으로 하는데, 이 4원소에 열을 가하는 등의 충격을 주면 물질 자체가 변하고, 이러한 연구가 화학의 시작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연금술에 의해 당시로는 세상에 없던 술이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증류주다. 와인 및 청주, 맥주 등의 발효주에 열을 가하면, 알코올이 먼저 기화가 되고(끓는점 78도)가 되고, 냉각을 시키면 다시 액체가 되는데 이 원리를 이용, 알코올만 따로 분리해 내는 증류주가 정식 등장하게 된다.
서양에서는 이러한 증류주를 가지고 발효주의 알코올만 뽑았다고 해서 술의 영혼인 스피릿(sprits)이라고 표현을 했으며, 또 불을 써서 구워낸 술이라고 하여 브랜디 와인(Brendy Wine)이라 불렀고, 곧 이 이름은 브랜디로 바뀐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에서는 위스키, 동유럽에서는 보드카, 아메리카 대륙의 럼이나 테킬라로 증류주,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소주라는 이름으로 발달하게 된다. 결국 소주가 화학주라면, 위스키, 브랜디, 럼, 진까지 모두 화학주가 된다.
안동소주와 일반 소주는 뭐가 다르지?
그렇다면 안동소주 등 전통 소주와 일반 소주와는 무슨 차이일까? 안동소주 등과 같은 증류식 소주는 기본적으로 원료가 정해져 있다. 동시에 증류도 단식증류기를 통해 1~2회만 진행한다. 이렇게 되면 쌀, 보리, 다양한 과실 등 술의 원료가 가진 풍미가 소주에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쌀소주, 보리소주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에 비해, 희석식 소주는 연속식 증류기란 기계를 통해 70번 이상(240번 까지도 함)을 증류하게 되는데, 이렇게 진행하게 되면 순도 85% 이상(보통 95% 전후)의 순수한 알코올이 나온다. 여기서 순수한 알코올이란 향과 맛이 없는 상태로 알코올 그 자체다. 이렇게 진행하는 경우, 꼭 원료를 하나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 쌀, 보리, 타피오카, 고구마를 써도 결국 무색, 무취다. 그 뜻은 하나의 농산물이 아닌, 다양한 잉여 농산물로 술을 빚어도 되며, 굳이 좋은 원료에 고집을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원료의 풍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결국 증류식 소주는 원료의 풍미가 있는 것, 일반 소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느 때는 달고, 어느 때는 쓰다?
소주를 마실 때 보면 어느 때는 참 달고, 반대로 어떤 날은 쓰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일반적으로 기분 탓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실은 기분상의 문제도 있겠지만, 다른 주장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감미료가 잘 용해되었느냐다. 일반적인 소주에는 다양한 감미료가 들어가는데, 이것이 뭉쳐진 부분은 달게 느껴지고, 반대로 적은 경우에는 쓰게 느껴진다는 주장이다. 특히 60, 70년대 희석식 소주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을 때, 이런 주장은 더욱 신빙성 있게 다가왔다. 소주를 흔드는 이유 역시 조미료를 잘 섞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과도 연결된다. 단, 대선주조 연구실장으로 근무했던 농업실용화재단의 김용택 박사는 2000년대 이후의 소주 관리 기술을 보면, 똑같은 제품에 조미료로 인한 맛의 차이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소주의 진짜 가치를 고민해 볼때
한때 한국은 <빨리빨리>라는 문화가 대세인 적이 있었다. 고도성장기에 높은 빌딩이 쑥쑥 올라가고 풍요롭던 논과 밭이 길이 되고 지하철역이 들어가는 모습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는 술에도 적용되었고, 싸게 빨리 마시는 문화가 대세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소주를 이렇게만 마시기에는 너무 아까운 부분이 있다. 무색, 무취의 일반적인 소주 외에 다양한 농산물의 풍미가 있는 증류식 소주가 계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동소주만 해도 6개 회사에서 나오고 있으며, 이강주, 문배주, 죽력고와 같은 무형문화재가 만드는 소주부터, 좁쌀이 베이스가 된 고소리 술, 고구마 소주, 보리 소주, 오미자 브랜디, 사과 브랜디 등 지역의 문화와 농산물을 나타내는 술도 많다.
앞서 소주와 같은 술을 술의 영혼이라고 해서 스피릿(sprits)이라고 한다고 설명했지만, 알고 보면 그 영혼이라는 것은 결국 응축된 맛, 즉 에센스를 뜻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에센스는 단순한 알코올이 아닌, <원재료의 풍미>라는 생각이 든다. 그 뜻은 원료의 맛과 풍미가 없는 술은 완벽한 술이 아니라는 결론도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일반 소주는 농산물의 풍미가 전혀없기에 화학주라고 주장하는 입장도 있는 것이다.
단순히 취하기만 하는 문화가 아닌 보다 원료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소주 문화가 커졌으면 좋겠다. 쌀로 빚은 소주는 쌀의 향을 느껴보고, 고구마로 만든 것은 고구마 특유의 맛을 느끼는 문화로 말이다. 모처럼 자연이 남겨놓은 맛과 향을 즐기지 않기에는 증류주가 의미와 가치, 그리고 역사가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