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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욱 Dec 09. 2018

[전설의 술 고향]막걸리가 나오는 샘 이야기

술에서 시작한 지명 이야기


[지명을 통해 알아본 한국의 술 이야기]

한국의 지역 술을 알아볼 때 가장 먼저 찾아보는 것이 있다. 바로 해당 지명의 어원이다. 이유는 지역의 의미를 가장 함축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철옹성, '쇠로 된 울타리' 같다는 쇠울에서 나온 서울, 왕건이 견훤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동쪽의 편안한 곳'이란 이름이 된 안동, '의로운 사람이 많이 나왔다'라는 의성, 백제가 불교를 최초로 받아들였다는 법성포 등, 한국의 지역이 품은 어원은 그 시작과 의미를 잘 품고 있다. 그렇다면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술은 우리 지명에 얼마나 있을까? 또 있다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사람가려가며 술을 준 영월의 주천

술이 유래가 된 지명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강원도 영월에 있다. 영월은 단종이 유배를 간 청령포가 있는 곳으로 태백산맥이 지나가는 험준한 지역으로 유명하다. 이 영월에 고려 시대부터 불린 지명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술의 샘, 주천(酒川)이다. 말 그대로 술이 나오는 샘인데 특징은 사람을 가리며 술을 줬다는 것이다. 바로 상민이 오면 막걸리를 주고, 양반이 오면 청주를 준 것이다. 아무리 상민이 양반의 복장을 하고 와도 결국 나오는 것은 막걸리였다. 이때 이 고을에서 어느 한 젊은 농부가 과거 급제를 하게 되는데, 과연 샘물에서 어떤 술이 나올 찌 무척 궁금하여 찾아간다. 이것이 또 소문이 퍼져 마을 사람 모두가 모이게 되었는데, 결국 나온 술은 청주가 아닌 계속해서 막걸리. 마을 사람들은 정말로 과거 급제 한 것인지 수군거리자 요즘 말로 멘붕이 된 농부는 민심을 현혹시킨다는 이유로 큰 돌을 집어서 샘물 속으로 던져버렸다. 안타깝게도 결국 술은 그 이후로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어찌나 이 이야기의 영향이 컸던지 이 지역에 가면 모두가 다 이 샘물의 이름, 주천이다. 다리 이름도 주천교, 강의 이름은 주천강, 주천 초등학교, 주천 중학교까지 있다. 최근에는 이 지역에 술 박물관까지도 생겼다. 참고로 남원에도 주천면이라는 지역이 있는데 그곳은 한자가 다르다. 영월은 술주, 남원은 주홍색의 주이다.

병든 아버지를 살린 평양의 주암산 바위 술
남한에도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 어복쟁반과 같은 북한 음식이 꽤 많듯이 의외로 술도 북한에서 건너온 것이 상당히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개성 술인 감홍로. 개성 최고의 기생이었던 황진이가 사랑하는 남자 서화담의 기개를 감홍로의 붉은색과 같다고 한 것은 상당히 유명한 구절이다. 또 하나가 바로 이번 남북정상회담 건배주였던 문배주로 수수와 좁쌀로 빚은 증류식 소주다. 원래 평양의 술이었던 문배주는 대동강의 상류인 모란봉 주암산(酒巖山)  물줄기로 술을 빚었는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로 술이 나오던 전설이 깃든 바위였다. 이야기의 시작은 삼국시대, 어느 가난한 농가의 아들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병으로 드러눕게 된다. 마을에서 유명한 의원에게 물어보니, 약주를 마셔야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너무 가난하여 술을 살 돈은 없어 땔감이라도 벌어보자고 험한 산을 올라가게 되었는데 그만 실족을 하여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게 된다. 한참이 지난 후에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에서 약주의 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냄새를 따라가니 바위틈에서 술이 철철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아들은 아버지에게 술을 갖다 주었고, 병을 고쳤다는 기록이다. 학자들은 이 바위에서 술이 나온 이유를, 당시 그곳이 고구려군의 주둔지였고, 당시의 군량미가 발효되어 흘러나온 것이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한다. 나름 일리가 있는(?) 이 이야기는 조선 성종 때의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평양 편에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각 도의 지리, 풍속, 인물 등을 자세하게 기록한 우리나라의 지리서이다. 출처 한민족대백과사전


두 잔 이상 나오지 않는 울진의 주천대

왕이 피신 갈 정도로 오지라는 왕피천(王避川)이 흐르는 경북 울진에도 술이 유래가 된 곳이 있다. 바로 근남면 주천대(酒泉臺)라는 바위다. 거울처럼 맑은 왕피천이 유유히 흐르고 울진의 유명 명소인 성류굴 옆에 있어 울진의 주요 명소이기도 하다. 이곳에 작은 샘이 있었고, 늘 술이 나오던 곳이었다. 문제는 이 샘물 역시 사람을 가렸다는 것. 즉 상민에게는 주지 않고 양반에게만 술을 준 고약한 샘이었다. 고려 충선왕 때, 마농로라는 사람이 돈을 써서 마을의 원이 되었는데, 이 정도면 이제는 주천대의 술을 마실 수 있겠구나 해서 떨리는 마음을 안고 찾아갔다. 하지만 그 떨리는 마음과는 달리 술이 나오지를 않아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때마침 뒤따라오던 남루한 차림새의 청년이 표주박을 대자 술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마농로는 샘을 다 파헤쳐 버리고, 결국 몸을 날려 스스로 목숨까지 끊는다. 이후 술은 나오지 않고, 흔적만 남아있다. 
참고로 이 주천대에서 나온 술은 늘 인원에 맞게만 나왔다고 한다. 두 명이 가면 두 잔, 세명이 가면 세잔만 나왔다. 즉 사람 수에 맞춰서만 나온 것이다. 늘 과음을 경계하는 모습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주천대는 인조 6년 당시 최고의 문장가로 손꼽히던 임유후(任有後)가 집안에서 반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이곳에 와 있었는데, 당시 이곳의 경치를 사랑하여 이곳에서 자주 술을 마셔 주천대라고 명명했다는 기록도 있다. 

주천대. 출처 한민족대백과사전


땅의 깊이를 알 수 있는 한국의 어원

한국은 참 작은 나라다. 약 100, 363㎢로 미국의 1%, 러시아의 0.6% 밖에 안되는 작은 영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작은 나라의 땅이 가진 깊이는 다르다. 그 어떤 이름도 그냥 지어진 것이 아닌 역사적 사건 또는 시대가 반영하는 모습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평양 주암산에서 약주가 나온 것은 그만큼 효를 강조한 모습이며, 울진 주천대의 모습에서 인원별만 술이 나왔다는 것은 과음을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상민이 양반행세를 해가며 탁주밖에 안나온 것은, 겉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하다. 결국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술이지만 해학이 있었고, 시대상을 반영하며,  무엇보다 우리 땅이 가진 역사와 깊이를 알려준다는 것, 전통주가 알려준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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