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으로 이어지는 세계사 스토리
최근 중동의 정세가 더 복잡해졌다. 지난 1일 이스라엘은 시리아 소재의 이란 영사관에 대한 폭격을 진행했다. 이러한 보복으로 13일에는 이란이 이스라엘을 향해 무인기와 미사일 300대를 발사했다. 그리고 18일에는 이스라엘의 미사일이 이란을 강타했다고 전했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이렇게 서로 직접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 하지만 이란과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대리전쟁을 진행해 왔다. 특히 이란은 팔레스타인을 실효지배하고 있는 하마스를 지원해 왔으며, 시리아와 레바논의 무장단체이자 시아파 이슬람주의 정당인 헤즈볼라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조직은 이스라엘 및 미국에 대한 테러 및 게릴라 공작으로 성과를 낸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원래 사이가 나빴나?
그렇다면 이 둘은 원래 사이가 나빴을까? 실은 그렇지 않다. 팔라비 왕조(1925년 ~ 1979년) 때만 하여도 관계는 좋은 편이었지만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킨 것도 알고 보면 페르시아 제국이었다.
특히 아키메네스(Archaemenes) 페르시아 제국은 메소포타미아문명 최후의 나라로 중동 문명의 기본틀을 제시했다고 본다. 여러 나라로 분리된 고대 오리엔트 세계를 통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을 해방시킨 페르시아 제국
특히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호령하던 신바빌로니아의 정복은 역사적으로도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원전 587년 신바빌로니아에게 멸망 후, 수많은 유대인이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바빌론 유수다. 약 50년 간 갇혀있던 그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2세에 의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받는다. 페르시아의 황제가 유대인의 해방자가 된 것이다.
바로 성경 이사야서에 등장하는 고레스왕이 바로 이 키루스 2세다. 그는 관용을 중시한 만큼 유대인들에게 귀향을 허락한 것이다.. 여기에 그들의 성지인 예루살렘 성전까지 복원하는 비용까지 지원한다.
서양인의 시각에서 만든 <영화 300>에서는 페르시아 왕인 크세르크세스가 ‘나는 관대하다(I am kind)고 말을 한다. 크세르크세스는 키루스 2세의 외손자다. 즉 관대하다고 말한 부분에는 그의 집안에 이러한 유대인 해방이라는 배경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당시 페르시아의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가 지금의 유대교 및 기독교 사상에 영향을 끼쳤다고 이야기도 한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유일신을 설정할 수 있었고, 그 신이 인간을 심판한다는 개념으로 인간사에 윤리성을 도입한 것이다.
와인에 진심인 페르시아
이러한 페르시아 제국은 와인에도 진심이었다. 그래서 와인을 못 마시게 하기 위해 독이라고 속이기도 했다. 신화에 따르면 전설 속의 피슈다드 왕조 (Pīshdād Dynasty)의 네 번째 왕 잠시드의 여인이 등장을 한다. 그녀는 한때 잠시드 왕과 특별한 관계였지만 이윽고 잠시드 왕의 총애를 잃고 낙담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그리고 왕의 창고에 가서 독이라고 쓰인 항아리 속의 액체를 마시게 된다. 하지만 마시고 나니 오히려 생기가 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와인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부패된 포도를 방치한 것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와인으로 발효가 된 것이었다. 이러한 경험을 잠시드 왕에게 전하자 왕은 그녀를 다시 받아줬고, 페르세폴리스에서 키워진 모든 포도를 와인으로 만들라는 명령을 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원조 최초의 와인 발상지 이란의 자그로스 산맥
이러한 배경이 있어서일까, 최초의 와인 유적지 조지아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최초의 와인 흔적은 이란의 자그로스 산맥 자락이었다. 기원전 5400년~500년 전의 것으로 신석기시대 가정 내에서 와인을 만든 흔적으로 과학적 분석 결과, 토기의 내용물은 산발효한 포도 과즙, 즉 와인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와인의 산지 시라즈
그렇다면 자그로스 산맥에서 이어지는 유명 와인 산지가 있을까? 있다. 자그로스 산맥에 위치하며 해발 1486m, 표고 1500m 전후에 위치한 파르즈 (Fars) 지방의 주도이자 고원 도시인 시라즈(Shiraz)다. 현재 이란의 5번째 큰 도시이며 아키메데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당시의 수도인 페르세폴리스(Persepolis)에서 불과 60km 떨어져 있다. 파르스주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 지역에서 페르시아 제국이 탄생했다. 그리고 시라즈가 이곳의 주도(州都)다. 이 시라즈라는 도시가 가장 유명한 것이 시와 장미 그리고 와인이다.
괴테가 사랑한 와인의 시인 하페즈
가장 유명한 시인이 바로 하페즈 (Hafez)다. 13세기 이 지역에서 활동한 그는 독일의 시인 괴테에도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괴테는 하페즈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서정시 ‘서동시집’을 집필했고, 이것이 유럽과 아시아권에 소개되면서 하페즈도 함께 서정시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그는 하페즈에 대해서는 시에 관해서는 대적할 자가 없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와인과 관련된 시를 많이 남겨놨다는 것이다.
장미는 내 가슴에, 와인은 내 손에, 연인도 내 곁에 있으니
그런 날엔 세상의 군주도 나에게는 한낱 노예일 뿐.
신은 세상을 만든 이래 와인 이외의 선물은 주지 않았다.
와인은 신의 이슬, 어둠을 밝히는 빛, 이성의 집.
유명 와인용 포도 '시라즈'의 이름이 유래한 곳
시라즈가 더욱 유명한 이유는 유명 포도 품종이 이 지역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의견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시라(Syrah)와 쉬라즈(Shiraz)다. 쉬라(Syrah)와 쉬라즈(Shiraz) 둘의 명칭이 다른 이유는 쉬라는 프랑스 남부 론에서 주로 사용되는 명칭이며, 쉬라즈는 주로 호주 중심으로 사용한다. 다만 최근에 조사해 보니 유전자적으로는 맞지 않다고 보는 것이 맞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어찌 보면 이란의 천년 고도 시라즈가 너무 유명해서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멋진 와인 역사를 가진 이란은 1979년 이란 혁명 전까지만 해도 중동 최대의 와인 생산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산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주류 생산 및 제조, 유통, 음주가 금지품목이며, 이를 어기면 80대의 태형과 벌금형에 처한다.
또 다른 전쟁으로 확장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분쟁. 2500년 전의 유대인 해방이라는 테마로 지금의 사태는 풀 수 없을까? 그리고 와인이 그 매개체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알고보면 술은 인류 모두가 소통할 수 있는 만국 공통어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