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술을 마시지 않는가?

똘똘한 한 병이 중요한 시대

by 명욱


똘똘한 한 병이 중요한 시대 - 우리는 왜 술을 덜 마시나


얼마 전 KBS 온라인 뉴스 '크랩'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주제는 "왜 요즘 젊은 세대들은 술을 덜 마시게 되었는가?"였죠.


술 소비 5060은 늘고 2030은 줄어든 이유|크랩


글쎄요, 왜 덜 마시게 되었을까요? 경기가 안 좋아서? 주머니 사정이 가벼워져서? 건강을 생각해서? 모두 맞는 말입니다만, 저는 여기에 몇 가지 사회적 변화에 대한 의견을 덧붙여보고자 합니다.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의 약화


예전에는 술을 마시는 목적 중에 '함께 가자'는 의식이 매우 강했습니다. 내가 취하면 너도 취하고, 서로의 흐트러진 모습까지 공유하며 유대감을 쌓았죠. 그 안에서 서로를 끌어주고 지켜주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영화 <백드래프트(Backdraft)>의 명대사처럼 "You go, we go(네가 가면 우리도 간다)"라는 끈끈한 관계였습니다. 실력이 조금 부족해도 공동체 안에 있으면 '함께' 살아남을 수 있다라고 생각하던 시대였죠.


하지만 지금은 공동체가 나를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정보가 투명해지면서 더 뛰어난 인재가 나타나면 언제든 대체될 수 있고, 관계보다는 오직 '실력'으로만 평가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결국 내가 나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술로 이어지는 깊고 밀착된 유대관계는 더 이상 필수적이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죠.


레토르트 식품의 역습과 자영업의 위기


팬데믹 이전에는 주류 매출의 약 60%가 요식업에서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평범한 식당들은 정말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저는 그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레토르트(Retort) 식품의 역습'이라고 봅니다.


과거에는 순대국이나 설렁탕을 먹으려면 무조건 식당에 가야 했지만, 지금은 상온 보관이 가능한 고품질 레토르트 제품이 너무나 잘 나옵니다. 가격은 30~50%가량 저렴하고, 식품공학의 발달로 맛과 보존성도 뛰어납니다. 냉동식품 역시 떡볶이, 피자, 치킨까지 식당 퀄리티를 구현해냈죠. 여기에 밤 11시에 주문해도 다음 날 새벽에 도착하는 물류 시스템까지 갖춰졌습니다.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굳이 번거롭게 사람을 만나 식당에 갈 이유가 줄어든 것입니다. 식당 방문이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술 소비도 감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863cc7663f3880cccdba487140bc45ca2f4e1ae6ebf5339c1fdf3f99107c.png 레토르트 식품의 역습. 굳이 식당을 가지 않더라도 유사한 퀄리티의 식단을 즐길 수 있다.


사람과의 연락조차 줄어드는 'AI 시대'


이제 AI를 활용하지 않는 직장인은 거의 없습니다. 기술의 진화 속도는 놀라울 정도죠. 그런데 이 AI로 인해 역설적으로 사람에게 연락하는 일이 줄었습니다. 법률, 부동산, 세금, 건강은 물론 인생 상담까지 AI와 나누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술 한잔하며 위로를 받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성을 덜 느끼게 되었습니다. 고민을 나눌 연락 자체가 줄어드니 술 마실 기회도 자연스레 줄어드는 것이죠.


술 마실 돈으로 '투자'를 하는 시대


요즘 모임의 주된 화두는 단연 주식과 AI, 그리고 자산입니다. 화폐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투자를 하지 않으면 '벼락거지'가 된다는 불안감이 팽배합니다.


이런 불안한 심리는 소비 패턴을 바꿨습니다. 당장의 즐거움을 위해 돈을 쓰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투자에 우선순위를 둡니다. "이 돈이면 차라리 주식을 한 주 더 사겠다"는 무의식이 술 소비를 억제하고 있는 듯합니다.

'똘똘한 한 병'. '똘똘한 한 잔' 이 중요한 시대


저 역시 AI와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느끼는 점은, AI가 정말 편리하고 방대한 정보를 전달하지만 인간만큼 넓은 시야와 철학이 담긴 통찰을 제공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AI가 내가 듣고 싶어 하는 정해진 대답만 내놓으며, 오히려 제 사고를 가두기도 하죠.


지금은 기술적 과도기인 만큼 대면 만남을 줄이고 술을 자제하는 분위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다시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AI에게 지나치게 의지하는 것은 우리가 기술에 종속됨을 의미하며, 영화 <터미네이터>의 '심판의 날'과 같은 상황이 현실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즉, AI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우리의 '사유의 주권'을 기계에게 넘기는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주류 시장이 모두 어렵다고들 하지만, '의미 있는 술 소비'는 늘고 있다고 봅니다. 최근 화제가 된 <흑백요리사> 출연 셰프들의 식당이 예약조차 하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소중한 사람과의 특별한 만남, 독보적인 맛, 희소성 있는 한정판, 그리고 그 자리를 빛낼 수 있는 '남다른 추억'을 선사하는 술은 앞으로도 계속 선택받을 것입니다.


'똘똘한 한 병'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단순히 '비싼 가격'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흑백요리사>에서 최강록 셰프가 마지막에 내놓았던 '빨간 뚜껑 소주'처럼, 맥락과 서사, 그리고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의미 있는 술'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려 할수록,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다운 서사'를 담은 한 병이 세상을 움직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진정한 '똘똘한 한 병'이 될 것이라는 가정을 세워봤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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