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코냑을 추구한 서민용 양주
1부 원조 오픈런, 캡틴큐와 삼각무역에 이어 2부 나폴레옹 스토리입니다.
오늘날 술자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칵테일은 단연 하이볼이다. 굉장히 최근에 등장한 듯한 이 하이볼은 이미 50년 전에도 등장했다. 그리고 그 하이볼로 마시라고 제안한 술이 있는데 바로 해태주조의 ‘나폴레옹’이다.
1976년 출시 당시 언론 광고는 이렇게 권했다. “진저에일과 나폴레옹을 1대3으로 섞고, 얼음을 넣어 즐기라.” 지금 들으면 익숙한 레시피지만,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제안이었다. 소비자들은 처음부터 이 술을 ‘온더록스’나 ‘하이볼’로 즐기도록 유도되었던 것이다. 알고 보면 나폴레옹은 시대를 앞서간 술이자, 한국 술 문화에서 하이볼 마케팅의 선구자였다.
이름에서 드러난 정체성
‘나폴레옹’은 단순히 프랑스 황제의 이름을 빌려온 것이 아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프랑스의 대표 증류주인 코냑을 지향했다. 청포도로 만든 와인을 증류해 오크통에 숙성한 프랑스 코냑 지역의 포도 증류주. 당시 해태주조는 이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무엇보다 나폴레옹이란 명칭은 코냑에서 가장 높은 등급이었다.
2년 이상 숙성은 VS(Very Special), 4년 이상 숙성은 VSOP(Very Superior Old Pale), 6년 이상은 XO(Extra Old)라고 불렸는데, 나폴레옹이 이 XO와 같은 등급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코냑 메이커들은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적극 활용했다. 즉 프랑스 코냑은 나폴레옹이 고급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것이다.
나폴레온에서 나폴레옹으로
흥미로운 점은, 초기 제품명은 ‘나폴레온’이었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어 원어 Napoléon이 ‘N’으로 끝나기도 했고, 일본식 발음 역시 ‘나폴레온’에 가까웠다. 실제로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신문과 시장에서는 ‘나폴레온’이라는 표기가 흔히 쓰였다.
그러나 1986년 제정된 외래어표기법 개정안에서 프랑스어 비음 모음 ‘on’ [ɔ̃]을 ‘옹’으로 적도록 규정하면서, Napoléon의 표준 표기가 ‘나폴레옹’으로 정리되었다. 이때부터 공식적인 표기는 ‘나폴레옹’으로 굳어졌고, 제품 이름 역시 점차 ‘나폴레옹’으로 바뀌어 갔다. 결국 오늘날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름은 ‘나폴레옹’이 된 것이다.
나폴레옹 1세와 코냑 — 실제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는 나폴레옹(나폴레옹 1세)과 코냑 사이에는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그는 결국 영국에 의해 대서양의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되었다. 일부 코냑 메이커들은 나폴레옹이 유배길에 코냑을 가져갔다고 홍보했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마케팅적 장치에 가까웠다.
나폴레옹 3세와 코냑의 제도화
그렇다면 어떻게 코냑과 나폴레옹이 연결된 것일까? 바로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 덕분이었다. 그는 1860년 영국과 체결한 코브던–셰발리에 조약을 통해 프랑스 와인과 코냑의 수출길을 넓혔고, 1869년에는 코냑 메이커인 쿠르부아제를 제국 궁정의 공식 공급자로 지정했다. 이러한 조치 덕분에 코냑은 황제의 술이라는 이미지로 세계 시장에서 인지도를 넓혔다.
해태산업의 국산 스토리
해태산업은 이러한 코냑의 이미지를 가진 나폴레옹을 적극 도입해 제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원액의 일부는 국산 원료와 농가 협력을 통해 조달했다. 실제로 나주와 전남 일대에서 재배한 포도를 대량 매입해 연간 3,500톤을 소화했다고 홍보했다. 이는 농가 소득 증대와 외화 절약이라는 명분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스토리였다.
“양주의 명문 해태산업은 자랑스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라는 당시 신문 광고 문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언론의 포장 효과
비록 원액 비율은 20%에 불과했지만, 수입 럼이나 이후 소주 원료인 주정으로 대체되는 캡틴큐에 비하면 나폴레옹은 프리미엄 이미지를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무엇보다 언론은 이러한 나폴레옹을 ‘나폴레옹 코냑’으로 지칭하며 고급 이미지를 덧씌웠다. 당시 기사 제목부터가 ‘나폴레옹 코냑 시판’일 정도로, 소주가 80%인 유사 양주임에도 프랑스 코냑의 이미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것이다.
‘코냑’ 사용의 한계
하지만 이러한 기사는 국제 기준에는 맞지 않았다. 프랑스는 이미 1909년에 코냑의 생산 구역을 법으로 규정했고, 1936년에는 AOC 제도를 통해 법적 보호를 확립했다. 즉 프랑스 코냑에서 만든 제품이 아니면 코냑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한국 역시 1995년 WTO에 가입하며 TRIPS 협정을 이행한 뒤부터는 ‘코냑’이라는 단어를 프랑스 코냑 지역산 브랜디에만 쓸 수 있게 되었다.
또 최고 등급을 상징하던 나폴레옹이라는 명칭도 변화를 겪었다. 2018년 프랑스의 코냑 관련 표기법이 개정되면서 최고 등급인 XO 기준이 기존 6년에서 10년으로 강화되었고, 여기에 XO 이상의 XXO(14년 숙성)라는 등급이 신설되었다. 더 이상 나폴레옹이 코냑의 ‘최고 등급’을 의미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나폴레옹의 쇠락
대중양주 나폴레옹의 길은 말년에 유배를 간 그의 인생처럼 순탄하지 않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해태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이후 나폴레옹은 국순당에 인수되었고, 2009년에는 ‘나폴레옹 로얄’이라는 리뉴얼 제품이 출시되었다. 그러나 해외여행 자유화로 고급 코냑을 직접 접한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기는 어려웠다. 2010년대 중반 이후 판매가 급감했고, 2015년 전후로 시장에서 사라지며 사실상 단종이 되었다.
기억 속의 한 잔
지금은 사라진 브랜드지만, 중장년의 추억 속에는 여전히 나폴레옹의 광고 문구가 남아 있다. 언젠가 다시 부활되기를 기대하며 외쳐본다. “고급 원액 20%, 해태 나폴레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