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오픈런, 캡틴큐와 삼각무역

by 명욱


한국 주류 시장에서 양주의 ‘대중적 시작’을 알린 술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떠올릴 첫 손 꼽는 술, ‘캡틴큐’다. 출시 첫해인 1980년 무려 1000만 병이 팔리며, 마치 요즘의 오픈런과 같은 반응을 일으켰다. 당시 가격은 3000원. 소주 한 병에 200원이란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고가의 술이었다. 알코올 도수는 40도로 위스키와 동일한 수준의 독주였고, 대학생 들의 MT등에 들고 가면 지금의 ‘발렌타인 30년’을 사 온 듯한 대접을 받았다. 초기 표기는 캡틴큐가 아닌 캪틴였다. 일본식 캡틴 발음인 캬프텐(キャプテン)을 한국식으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위스키가 아닌 캡틴큐

많은 이들이 캡틴큐를 위스키로 알고 있지만, 사실 위스키는 아니다. 캡틴큐가 추구한 방향은 럼이었다. 럼은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추출하고 남은 당밀을 희석해 효모로 발효한 뒤 증류하여 만든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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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큐 로고에 등장하는 애꾸눈 인물은 누구일까? 럼은 카리브해 지역이 연상시킨다. 대항해시대 이후 사탕수수가 대규모로 재배되고, 유럽·아메리카·아프리카 사이의 삼각무역이 활발했다. 해적이 활약했다. 캡틴큐 애꾸눈 인물은 해적 선장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복장이 다르다. 삼각모, 금빛 견장, 제복 형태 등을 보면 ‘영국 해군 장교’의 모습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럼주의 역사

지금은 미국 항공모함이 태평양·대서양을 누비지만, 200년 전 해군 강국은 영국이었다. 카리브해의 자메이카, 바하마 제도, 트리니다드·토바고 등은 모두 영국 식민지였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해적과 영국 해군이 싸우는 이야기 전개도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반영하는 설정이다. 럼주는 1970년대까지 영국 해군의 술이었다. 럼주는 삼각무역을 통해 탄생했다. 유럽에서 무기를 아프리카로 보내고, 아프리카에서 잡은 노예들을 아메리카에 이송했다.


KakaoTalk_20250928_211752875.png 캡틴큐의 신문광고. 캡쳐본


그 대가로 돌아온 것이 바로 설탕·면화·럼주였다. 원료는 카리브해에서 조달했고, 제조는 미국이 담당했다. 그래서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 해군의 술도 럼이었다. 1808년 노예무역이 공식 폐지되면서 삼각무역 체계가 무너졌다. 더 이상은 럼으로 노예를 사고 팔 수 없게 된 상황. 이는 통해 럼의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또 럼을 만들기 위해서는 원료를 수입해야 했는데, 이 수입처가 영국의 식민지가 많았다. 다른 증류주로 눈을 돌렸다. 바로 옥수수가 주원료인 버번 위스키였다. 럼의 자리를 버번 위스키가 차지하게 된다.


영국은 럼 배급 전통을 유지했지만, 1970년대 폐지했다. 과거에는 알코올로 힘을 얻은 선원들에 의존해 배를 움직였지만, 점차 정교히 운항하는 기술 기반으로 전환되면서 럼이 점점 불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캡틴큐는 럼을 기반으로 만들었지만 실제 럼 원액 비율은 매우 낮았다. 양주 원액 비율이 20%를 넘어가면 주세가 최대 318%까지 부과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시 초기에도 럼 원액이 소량 포함됐을 뿐이나, 그마저도 아예 제외됐다. 그래서 ‘럼 스타일 소주’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고, 주종으로는 위스키·럼·증류주가 아닌 기타재제주로 분류됐다.


단종된 캡틴큐

영국 해군의 상징성과 카리브 해적의 낭만을 모티브로 삼고 한국적 가성비를 기반으로 생산된 캡틴규는2015년 36년 역사를 마치고 단종됐다. ‘가짜 양주’ ‘리필 악용’ 등 부정적 이미지가 누적된 데다, 12·15년 숙성 위스키 같은 프리미엄 제품들이 등장하면서 존재감이 점차 희미해진 결과였다.이제 향이나 색소로만 양주인 척 하는 술은 더 이상 소비자들의 눈높이에 안맞게 된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오직 곡물로 만든 한국산 오크 숙성주들이 인기다. 김창수 위스키, 기원 위스키, 다농바이오의 수록, 예산사과와인의 추사, 라이스 위스키라고 불리는 마한오크, 군고구마로 만든 화심소주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한정판 등은 오픈런이나 대기를 할 정도로 관심도가 높다.


KakaoTalk_20250928_211851499.png 최고의 선물세트 중 하나였다.


숙취가 없다는 전설은 어디서 왔나?

하지만 캡틴큐는 여전히 중장년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빈 병만 5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숙취가 없다는 전설이 생기기도 했다.


술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캡틴큐를 마시면 (숙취가 너무 심해서) 다음 날 일어나지 못하고 다다음 날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나를 미래로 보내주는 특별한 술, 그래서 추억이 가득한지도 모르겠다.


PS: 다음편은 캡틴큐의 영원한 라이벌, 나폴레옹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하이볼 마케팅의 선구자, 해태 나폴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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