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지역을 예술지역으로 변화시키는 힘은 어디에서
농촌의 과소지역을 예술의 마을로 바꾼 일본 니가타 에치고츠마리(越後妻有)마을
어릴 적 늘 그리워하며 동경하던 장소가 하나 있었다. 서울에서 차로 3시간을 달려 도착했던 곳,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계시던 농촌, 아버지의 고향이자, 나에게는 시골이었다. 그곳에 가면 넓은 논밭이 있었고, 도랑에는 작은 메기와 미꾸라지가 살고 있었다. 논을 지나서 바라보면 폭 30m 정도의 개울이 있었는데, 여름에는 그 개울에서 송사리와 붕어를 잠자리채로 잡고 놀았고, 이른 봄의 논밭에서는 땅을 일구면, 겨울잠 자는 개구리들이 팔딱 놀라 뛰어오르곤 하였다. 가끔 부모님과 이렇게 시골을 방문하면, 자연 속에 사는 삶이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기만 했다. 그러면서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자연과 조화된 삶, 조금씩 시골 속의 삶과 농촌에 대한 동경심도 커져갔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농촌을 동경하던 마음은 사라져 갔다. 언제나 미디어에서 등장하던 그림자 짙은 이미지가 그 이유였다. 풍년이면 가격 폭락, 흉년이면 가격 급등, 우루과이 라운드 및 쌀 수입자유화 등, 농촌이 어려워진다 등 무거운 문제가 대두되었다. 한국의 농촌은 점점 내 마음속에 동경의 이미지에서 무거운 이미지로 바꿔버렸다. 젊은 층이 사라져 간다는 과소화는 더욱 이러한 이미지를 부채질했다.
일본도 고민하다 시작한 프로젝트. 아트를 통한 도시와 농촌의 소통
실은 이러한 고민은 한국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우리와 비슷한 기후와 식습관을 가진 일본 역시 농촌의 이미지 저하로 심각한 과소화에 시달렸다. 젊은 층이 계속해서 시골과 농촌생활을 버리고 도시로 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것을 줄이기 위해 쌀과 사케로 유명한 일본의 대표 농업지역인 니가타현(新潟県)은 도시와 농촌의 소통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것은 과소화된 산촌의 농업지역에 예술작품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예술작품은 단순한 작품이 아닌 농업을 주제로, 그리고 지역을 주제로 한 작품이었다. 바로 필자가 느꼈던 무거운 이미지를 최소화하고, 지역의 문화와 농업을 통한 삶의 모습을 예술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프로젝트이다.
지역의 새로운 이름 ‘대지의 예술제 마을(大地の芸術祭の里)'. 마을을 거대한 캔버스 삼어
‘새로운 니기타 마을 만들기’란 이름으로 1994년 시작된 이 사업에는 총 6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쳤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2000년에 에치고츠마리(越後妻有)란 지역에서 제1회 대지의 예술제란 이름으로 시작된다. 작품 수 148점, 방문자는 17만 명. 2012년에는 367점의 작품에 48만 명이 찾아왔다. 12년간 3배 가까이 규모가 커지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예술제로 발전한 것이다. 예술제 이름이 대지(大地)인 이유는, 작품이 놓인 지역이 일본의 도쿄보다 더 큰 지역이기에 때문. 우리로 따지면 서울보다 더 크다. 그 지역 구석구석에는 소통할 수 있는 지역에 밀착된 예술품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술제가 열리는 이 지역은 ‘대지의 예술제 마을(大地の芸術祭の里)’이란 별명이 붙기 시작했다. 마을 자체가 예술품의 캔버스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젊은 층이 이곳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곳의 슬로건. 인간은 자연에 내포(內包)된다.
‘대지의 예술제 마을’의 기본 개념은 인간은 자연에 내포된다는 것. 즉 인간과 자연이 별도로 있다는 것이 아닌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뜻이다. 수천 년 전부터 이 지역에서 벼농사를 해 온 주민들은 사람은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왔고, 그 안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이곳에는 자연과 농업, 그리고 인간이 관계 맺어가는 모습을 서울보다 넓은 이 마을을 캔버스 삼아 작품으로 그려냈다.
축제의 중심이 되는 상설 갤러리. 마츠다이 노부타이(まづだい農舞台)
현재 예술제는 3년에 한 번 열리지만 40여 점의 작품을 상시 전시하는 공간이 있다. 바로 마츠다이 노부타이란 갤러리. 마츠다이는 지역명이며, 노부타이(農舞台)는 한자 그대로 농무대, 농업의 무대란 뜻이다. 그래서 1층의 공간은 외부와 언제든지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졌으며, 2층에는 발상의 전환을 주는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농기구를 그대로 작품으로. 이유는 농기구의 종자(種子)를 남기기 위해
갤러리 2층에 올라가면 먼저 농기구를 통한 작품이 우리를 맞이해 준다. 늘 무겁고 어두운 색의 농기구를 끈으로 연결해 올려놓음으로써 가벼움을 연출해 보였다고 한다. 동시에 농기구는 농업에 있어서 씨를 뿌리는 역할도 담당하는데, 문제는 이런 농기구가 기계화로 점점 사라져 간다는 것이었다. 이런 배경을 통해 해당 농기구의 종자(種子)를 남김으로써, 농업과 자연의 구조를 설명하고자 했다. 가정집의 저녁 식사 메뉴를 문밖에 그림으로 그려내어 소통하는 모습 및 쌀을 이미지화한 제품 등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과소지역의 문화를 담은 칠판의 교실과 연필
이곳의 특별한 것은 과소지역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바로 칠판의 교실. 과소화된 교실을 복원한 것으로 모두 초록색 칠판으로 되어 있다. 벽, 바닥, 의자, 책장, 심지어 전시된 지구본까지도. 과소화된 모습을 밝은 모습으로도 꾸며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이 이것과 연결된 거대한 연필의 예술작품도 있다는 것. 각각의 연필 크기와 색깔도 다르며, 나라 이름이 쓰여 있다. 뭔가 어릴 적 연필에 대한 추억도 생각나는 공간이다.
주민과 작가가 협업으로 만든 사진, 지역 주민들의 문패를 작품으로
갤러리 노부타이의 2층 카페로 가면, 파스텔 색조의 테이블에 거대한 사진이 보인다. 천장에 있는 사진이 테이블의 사진 속으로 비치는 것이다. 이 사진은 모두 지역 주민이 촬영한 것. 하나하나 자신의 카메라로, 또는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이렇게 작품화한 것이다. 물론 모두 이 지역의 사진만 들어있다. 한 장의 사진 속에 지역의 다양한 곳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했다는 것에 주민들과 소통한다는 느낌이 든다. 건물 뒤로 가면, 형형색색의 문패를 볼 수 있다. 바로 이 지역에 거주하는 1500가정의 문패이다. 각각의 색을 달리하여, 지역 주민이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가를 이름으로 느낄 수 있고, 동시에 이것을 통해 사람이 있다는 따스함을 전한다.
색감 있는 조형물로 벼농사를 형상화, 그리고 비 내리는 듯한 글씨체
파스텔 색조의 카페 2층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계단식 논에 파란색과 노란색의 사람 모양의 조형물이 보인다.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에 지역 주민이 어떤 농사일을 하는지, 각각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며 형상화시켜 놓은 것이다. 더욱 매력 있는 것은 비가 오는 듯한 글씨로 계절별로 어떤 일을 하는지 ‘시’로 그려 낸 것. 그리고 그 ‘글씨체’는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는 빗물과 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시간과 공간을 통해 먹거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떤 행위를 했는지를 보여주며, 계단식 논을 통한 산촌이라는 지역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지역 주민이 만드는 음식과 그리고 로컬 푸드
작품 관람에 허기가 졌다면 이곳 카페에서 충분한 식사를 할 수 있다. 모두 지역의 농산물로 만든 이른바 로컬 푸드이다. 산촌인 만큼 바다요리보다는 다양한 나물류와 감자, 그리고 신선한 계절 채소와 지역에서 길러낸 닭요리도 있다. 무엇보다 트렌디한 이 공간에서 요리를 만드는 사람은 외부에서 온 셰프 등이 아닌 오래된 지역 주민분이 맡아 준다. 트렌디한 공간은 획일화된 구조가 되어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사람까지 지역성을 확실히 지켜준다.
우리 동네 퇴비는 내가 만든다. 개구리 모양의 퇴비 머신 ‘개롱빠 대합창’
농업에서 퇴비를 만드는 역할도 특별한 작품이 만들어 준다. 개구리 모양을 힌 ‘개롱빠 대합창’이라는 머신이다. 개구리입안에 풀, 잡초 등을 넣으면 퇴비가 되어가는 작업을 해 준다. 유머러스한 모습에 농사 체험이 지루하지 않다. 아이들에게 즐거운 기억을 줄 수 있는 모습이다.
사람이 더욱 중심이 되는 사회, 지역과 농업은 우리에게 오래된 미래일수도
이러한 문화론적인 입장에 반대되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작품 몇 개 더 있다고 해서 근본적인 것은 뭐가 바뀌겠냐는 것이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역과의 소통을 통해서, 적어도 이러한 지역적인 문화가 도시의 나와 소통이 되고, 그리고 내 먹거리와 연관이 되는 모습 속에 그동안 잊고 살았던 농업과 지역, 나아가 고향의 가치는 느껴볼 수는 없을까?
신(神)이 중심이 되었던 중세시대를 깨고, 사람이 중심이 되기 시작한 르네상스, 하지만 다시 사람에서 산업이 중시되는 이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는 다시 산업에서 사람으로 가야 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있다.
격변하는 시대에 농업과 지역이란 아날로그적 소통을 지향한 ‘대지의 예술제 마을’, 기로에 서 있는 지금의 시대에 지역과 농업, 그리고 고향이 우리들에게 ‘오래된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가치를 보여준 의미 있는 방문이었다.
written by 명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