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의 나는 어떤 1년을 보냈나
4년간 둘이 하던 기년회를 혼자 하려니 조금 어색했지만, 올해는 조금 더 나만의 방법을 녹여서 해보았다. 월별로 나에게 임팩트가 있었던 이슈들을 정리하고, 공통되는 것들을 그룹핑했다.
크게 7가지 키워드로 정리가 되었다.
나, 건강, 관계, 첫 경험, 일, 성장, (just) joy
성장은 따로 찾아서 노력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야생 학습을 했기에 일 카테고리로 대체한다.
joy는 새 타투 받음! ← 요런류의 정말 just joy라 생략하려 한다.
1) 외부 활동을 시작한 해
올해는 외부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힙한 서비스의 비밀 (이하 ‘힙서비’)이라는 커뮤니티가 있다. 해당 커뮤니티에서 진행되는 레슨런 챌린지 (주 2회 잘한 점/개선할 점/배운 점을 정리하는 챌린지)를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원티드에서 ‘힙서비콘’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당시 힙서비콘은 약 천 명 가까이 듣는 세션이었고, 연사로 발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뾰족하게 내세울만한 나만의 강점은 모호했지만 우선 지원을 했고, 연사로 세션을 진행하게 되었다.
(일단 해보기의 기술..ㅋㅋ)
2) 퍼스널 브랜딩을 처음 시작한 해
2011년부터 회사 생활을 해 온 나에게 돈을 버는 수단은 당연하고 유일하게 ‘회사’ 하나였다. 근데 주변 지인들이 책을 내고, 다른 job들 (소위 말해 N잡)을 하며 외부에서 수입을 만들고 치열하지만 조금 더 자유를 가지고 사는 모습을 보니 새로운 자극을 느꼈다.
‘나도 나만의 것을 찾아야겠구나!’
그래서 브런치를 만들고, 내가 브랜딩 하고 싶은 나 & 남이 보는 나 등 핵심 서클을 찾아서 브랜딩을 시작했다. 아직 뭔가 made 되지는 않았지만 2022년 상반기 (2월 안)에는 뭔가 만들려고 준비 중이다.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는데 나를 보면 ‘와인, 빨강, 꽃, 프랑스, 편지’가 생각난다고 이야기해 준 지인이 있다.
와인, 빨강, 꽃, 편지는 대부분 어떤 의미인지 알겠는데 프랑스는 뭐지? → ‘자유분방하지만 각자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나 역시 나를 저런 문장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키워드화 하지 못했는데 너무 적절했던 표현이라 기억에 남는다.
� 2021년은 ‘회사 안의 나’, 또는 ‘누군가의 친구, 지인인 나’가 아니라 온전한 ‘나’에게 집중한 해였던 것 같다.
1) 몸도 마음도 고됐던 해
사실 올해 1월을 피부 이식 수술로 시작했다. 이유가 어디 가서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어이없는데, ‘제주도에 놀러 갔다가 뜨거운 구들장에서 그냥 잠들어서 화상 입음’이다. 아직도 흉터가 남아있어서 볼 때마다 참나.. 하며 별 일이 다 있었네 라는 생각이 든다 ㅎ_ㅎ
당시에도 코로나 이슈로 면회를 오거나 간병을 해주려면 코로나 검사를 마치고 들어왔어야 했다. 난 별 거 아닌 수술이겠거니 생각하고 별도로 간병인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수술을 하고 나니 미친 듯이 아팠고 혼자 내려와서 휠체어를 타는 것도 불가능했다. 너무 아프고 외로웠는데 병상에서 노트북을 켜고 일하고, 휠체어 끌고 나가서 화상회의를 하는 나를 보니 조금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지 말아야지, 입원할 땐 간병인을 써야지, 아플 땐 일이 아니라 나를 돌봐야지
2) 불안장애, 공황장애
올해 초, 어떤 일련의 사건들로 힘든 몇 개월을 보냈었다. 잠에서 깨어서 숨을 쉬면 고르지 못한 숨이 내쉬어졌고 잠을 잘 수 없었다. 모든 사람들의 카톡이, 전화가, 슬랙 알림이 무서웠다.
(알림만 울리면 심장이 뛰어서 숨을 잘 못 쉬었다.)
무언가 나쁜 일이 생길 것만 같았고,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일까? 저렇게 유치하게(얕은 정치?) 행동하는 것이 소위 말해 ‘똑똑하게’ 하는 건가? 하는 부정적 생각들이 멈추지 않았다.
병원에서 불안장애, 공황장애 초기 진단을 받았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리고 그 무렵 부산으로 떠나서 ‘불안 장애가 있긴 하지만 퇴사는 안 할 건데요’라는 책을 읽었는데, 와인바에서 2시간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것 같다.
마음을 보듬어주는 느낌이었다.
니 잘못이 아니라고.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약이나, 날 아껴주는 주변 사람들처럼 아예 낭떠러지는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열심히 약을 먹고 호흡 연습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나는 그 회사를 퇴사했고 지금은 건강하다!
� 멘탈 건강에 타격을 받은 건 처음인데, 오히려 좋다. 덕분에 더 강해졌으니까
1) 더 명확해진 관계의 기준
힙서비 커뮤니티에서 좋은 인연들을 만나 확장의 기회가 있었다.
특히 서비스 기획자, 마케터 분과 가까워졌는데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고 여가 생활을 함께 다닐 만큼 합이 잘 맞는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친구들이고, 나 역시 그들이 필요할 때 필요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어서 상호 시너지를 내는 관계인 것 같다.
지금 회사에서도 업무 외적으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있는데, 덕분에 브랜딩에도 참여해보고 재밌는 경험들을 하고 있다. 그들 역시 다른 측면에서 영감을 주는 사람들인데 정말 배우고 싶을 정도로 멋있다.
커뮤니티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내 곁에 두고 싶은 사람에 대한 기준이 조금 더 명확해졌다.
전에는 두기 어려운 사람도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지냈는데, 갈수록 그런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예 정리를 했다.
내 곁에 두고 싶은 사람
성장 마인드셋
피드백 수용성이 좋은, 열린 사람
타인의 유명세에 편승하지 않고 본인 능력을 키우는 사람
문제가 문제인 것을 인식할 줄 아는 사람
실패했어 제기랄..! 이 아니라 그럼 어떻게 개선하지? 생각하는 사람
두기 어려운 사람
고정 마인드셋
귀 닫고 사는 사람
타인의 부족함만 보고 본인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
남 탓하며 개선 how에 대한 고민 없는 사람
군림하고자 하는 사람
2) 이별, 새로운 시작
큼직한 관계 이슈들이 있었다.
동생 결혼, 밴쿠버로 이사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
4년간 지속되었던 연애의 끝
동생이 떠난 것은 사실 아직 믿기지 않아서 실감이 안 난다. 유일하게 가족이라고 여겼던 관계이고 늘 애기라고 생각했는데, 본인의 길을 찾아서 씩씩하게 나아가는 모습이 나보다 낫다 느꼈고 응원하고 싶다. 진짜 사랑해 내 동생!
나는 인간관계가 넓어 보이지만, 정말 의외로 학창 시절 친구 중 남아 있는 친구는 단 한 명이고 내 바운더리 안의 사람은 5명 정도이다. 학창 시절 친구 중 남아 있는 단 한 명의 친구가 2021년 12월에 결혼을 했다.
둘이 고시원에 살았었는데, 돈이 없어서 침대 밑 책상 밑 10원짜리 동전까지 싹싹 끌어서 식빵 하나를 사 먹었던 기억이 난다. 서로의 가장 빛났던, 어려웠던, 불안정했던 시기를 함께 보내며 서로를 의지했어서 나에게 의미가 남다른 친구이다.
음 그리고 4년 간의 연애가 끝이 났다. 같은 PO 직무로 일했다 보니 애자일, 코칭, 회고하는 습관, 프로젝트 진행 등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었다. 늘 방방 떠있는 나를 문진처럼 눌러주기도 했고..
모든 관계가 그렇듯 만남과 끝이 있기에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함께 걸어왔던 길에서 각각 갈래길로, 본인의 길을 가기로 했다. 큰 이슈 없이 오랜 기간 편하게 만나왔으니 덜 슬프겠지 생각했는데, 단기간에 굵게 슬펐던 것 같다. 잘 지내!
� 모든 것은 빛이 날 때가 있고, 빛을 잃을 때가 있다.
크고 작은 빛들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슬픈 일이지만, 새로운 빛을 내 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해야겠다.
1) 두 번의 퇴사, 두 번의 입사
건강이 안 좋아진 후 첫 번째 회사를 퇴사했고, 그다음 회사는 도메인 자체에 흥미를 느낄 수 없어서 수습 기간 종료 후 퇴사했다. 이때쯤 ‘일이란 나에게 무엇인가?’, ‘어떻게 일해야 하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현재 회사에 입사하기 전, 위 고민들을 많이 했기에 회사를 고르는 기준이 더 뾰족해졌다.
나의 효능감이 갉아먹히지 않는 곳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
최근 1년 내 투자를 받았고, 시장 내 가능성이 느껴지는 잠재력 있는 곳
조직적으로 문제를 적극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는 곳
연봉은 위 항목들이 동일하면 동일해도 무관
지금 회사는 정말 만족하고 있는데, 일을 오래 하고 여러 조직을 경험할수록 결국에 돌고 돌아 ‘사람’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잘 되는 것도 사람, 망하는 것도 사람.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겠지.
사람이 큰 변수인 것 같아서 어떻게 매니징하고, 어떻게 잘 만들어 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2022년에 더 하게 될 것 같다.
� 네임밸류가 중요해, A회사 입사하고 싶다, 가능성이 중요해.. 등의 말에는 본인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왜 지금 네임밸류가 중요한지, 그래서 next는 어떻게 할 거고 5년 뒤 10년 뒤에 대략 어떤 모습을 원해서 지금 그게 중요한지.
1) 인생 처음으로 맥북, 아이폰을 구매했다.
여전히 손에 익지 않았지만 맥북과 아이폰의 폰트는 별 거 없이도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ㅎ_ㅎ... 이게 뭐라고. 하지만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때에는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다. 직무상 오피스 프로그램을 자주 써야 하는데 계속 뻑이 나거나, 아예 들어가지지 않는 경우에 인내심이 와장창 깨져버리는..
⭐️ 2) 5월에는 인생 처음으로, 한라산을 등반했다. (혼자!)
원래 등산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근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혼자 한라산을 등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주도에 갔다. 전 날 술을 많이 먹어서 원래 가기로 한 날엔 못 가고, 그다음 날 등반을 시작했다. 이때 등산이 참 인생 같다.라는 생각을 했다.
정상을 향해 오를 때에는 좌우를 살필 겨를이 없다. (내 주변인들이나 날 살피지 않고 원하는 목표만 보고 달리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생각함) 그리고 오를 때는 숨차고, 힘들고, 포기하고 싶다.
그렇게 정상에 도착하면 희열과 엄청난 성취감을 느끼지만 너무 찰나의 순간이다. 다시 내리막 길을 가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내리막 길은 또 쉬운가? 그렇지 않다. 이미 오르느라 지쳐있는 몸을 이끌고, 울퉁불퉁 바위들을 밟으며 내려가야 한다.
늘 다른 정상의 맛을 느끼려고 노력할 테지만 조금 더 여유 있는 호흡을 가질 것이다.
3) 목공 수업!
동생과 예전부터 장자매 카펜터즈로 살아보자! 했었는데, 결국 함께는 못 하고 혼자 목공을 배웠다. 중간에 시간이 안 돼서 사이드 테이블 모델링까지 하고 지금은 못 가고 있지만, 내일 배움 카드를 얼마 전에 신청했기에 곧 다시 시작하리라!
4) 첫 전세
은평구에 약 7년? 8년? 정도 살았는데 양천구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무려 전세로. 물론 은행과 엄마의 도움이 있어서 올 수 있었지만, 내 주변 사람의 변화와 환경 (일, 집)의 변화가 동시에 이뤄졌던 사건이라 임팩트가 있었다.
� 큰 단위의 첫 경험이 많았다. 2021년보다 앞으로의 날들에 더 많고 다양한 첫 경험을 쌓고 싶다. +) 한라산 등반이 첫 경험 중 가장 큰 임팩트였다.
인간이 변화하기 위해
만나는 사람을 바꾸고
사는 곳을 바꾸고
시간을 달리 쓰라
고 하는데, 올해는 이것을 모두 충족시켰던 해였던 것 같다.
단순히 술만 마시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유의미한 무언가 (글을 쓰고, 브랜딩을 시작하고 등)를 행했고 만나는 사람과 사는 곳도 변화했다.
난 이것이 단순한 우연으로 발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변하기 위한 발판을 올해에서야 밟았다고 생각하고, 그 기반에는 내가 쌓고 경험해온 것들이 단단하게 받치고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 어떤 것들을 만들어 나갈지 기대된다.
시간을 더 밀도 있게 쓰는 2022년을 만들 것이다.
1/4 분기 내 브런치 작가 되기
2/4분기 내 운전면허 상반기에 따기
2/4분기 내 사이드 프로젝트 판매 시작
하반기 내 텀블벅 프로젝트 등록
하반기에 여행 가능하다면 롬복 린자니 산 등반
KAC 코치 자격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