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보다 의미를 사는 시대

그놈의 ‘딸깍’이 진짜 의미가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by 술지

요즘 회사 슬랙, 스레드, 인스타 등등 하루가 멀다 하고 바이브 코딩에 대한 콘텐츠가 쏟아진다.


보통 이런 것들이 내 눈에 많이 띈다.


“AI로 앱 만들었어요, 코딩 하나도 모르는데!”

“프롬프트 한 줄로 랜딩페이지 뚝딱”

“아직도 사람이 직접 만드세요? 딸깍으로 월 1,000만 원 벌기”


진짜다. 거짓말이 아니다.


나도 클로드 코드를 쓰면서 느끼는데, 예전 같으면 개발자 없이는 상상도 못 했을 것들을 혼자서 만들어볼 수 있게 됐다. 터미널에 몇 줄 치면 프로젝트 구조가 잡히고, 대화하듯 설명하면 코드가 나온다. 신기하다 못해 약간 무섭기도 하다.


그러던 중 느낀 특이점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만들어진 것 중에 ‘와 이거 진짜 쓰고 싶다’고 느껴지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심지어 내가 직접 바이브코딩으로 생산해내는 서비스들인데도 조금 지나면 스스로 흥미가 떨어진다.


왜일까?



‘어떻게’ 만드는지는 더 이상 차별점이 아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아니 내 기준에선 1년 전만 해도 “이걸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었다. 코딩을 할 줄 아는 사람, 디자인 툴을 다룰 줄 아는 사람, 데이터를 뽑을 줄 아는 사람. 기술을 가진 사람이 곧 희소했고, 그 희소성이 가치였다.


근데 지금은?

딸~깍


버튼 하나, 프롬프트 한 줄이면 꽤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온다. 웹사이트, 앱, 블로그, 에이전트, 심지어 내 팀을 만들어서 이들이 밤새 일을 하게 만들 수도 있다.

‘만드는 행위’ 자체의 진입장벽이 거의 사라졌다.


만드는 능력(How)은 평준화되고 있고, 진짜 차이를 만드는 건 ’왜 만드는가(Why)’와 ’누구를 위한 건가(Who)’이다.

제품을 만드는 PM으로서 원래도 중요한 원칙이었지만, 앞으로는 이게 ‘기본’이 아니라 ‘전부’가 될 것이라 감히 예상해 본다.

만드는 속도는 다 같아졌으니까, 결국 Why와 Who를 얼마나 깊이 고민했느냐가 곧 실력의 격차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 요즘이다.


예전에는 “이 기능 어떻게 구현하지?“가 가장 큰 허들이었는데, 이제는 그 질문이 제일 쉬운 질문이 되어버렸다. 내가 뭘 모르는지, 뭘 공부해야 하는지까지 AI와 함께하면 해결된다.


오히려 “이걸 왜 만들어야 하지?”, “이게 정말 필요한 건가?”, “이 맥락에서 이게 맞나?“가 훨씬 어렵고, 훨씬 중요해졌다.



AI 기반의 서비스를 기획하면서, 기능 자체는 사실 어렵지 않았다. 자연어 검색을 붙이고, 데이터를 연결하고, 자동으로 답변을 생성하게 하는 것.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한 건 이미 다 있었다.


근데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다.

“그래서 이 챗봇이 유저한테 어떤 의미가 있는 건데?”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하지 못하면, 아무리 잘 만들어도 결국 ‘그냥 또 하나의 챗봇’이 되어버린다. 시장에 챗봇은 이미 넘치니까.


결국 내가 가장 오래 붙잡고 고민한 건 기능 설계가 아니라 맥락 설계였다.


이 사람이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가.

어떤 고민을 안고 들어오는가.

이 순간에 어떤 말을 들으면 마음이 움직이는가.

그 경험이 끝난 후 뭘 느끼고 돌아가는가.


기능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답하지만, 의미는 “이걸 왜 써야 하는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건 서비스 만드는 사람 관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비하는 유저도 변했다. 아니, 변하고 있다.


기능이 아무리 많아도, “그래서 이게 나한테 왜 필요한데?“에 답하지 못하면 이탈한다.

반대로, 필수 앱이 아닌데도 감성이 좋다고 기꺼이 결제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능만 놓고 보면 무료 앱으로도 충분한데, 그 서비스만의 톤이 좋아서, 쓸 때 기분이 좋아서, 나랑 맞는 느낌이어서 돈을 쓴다.


기능이 좋아서가 아니다.

‘이걸 쓰는 나, 그 경험’이 좋은 거라 생각한다.

결국 사람들이 반응하는 건 기능의 양이 아니라, 그 서비스가 자기 삶에 어떤 의미로 들어오느냐다.


노션이 기능으로 따지면 엑셀보다 부족한 점이 많다. 근데 왜 사람들이 노션에 열광하냐면, ‘내 생각과 일을 내 방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 의미를 팔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기능을 사는 게 아니라, ‘이게 나의 맥락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산다.



의미를 설계하는 것이 진짜 실력인 시대


그래서 나는 요즘 이 생각을 자주 한다.

AI 시대에 진짜 실력은 뭘까.


기획자가 요구사항을 잘 정리하는 것? AI가 잘해준다.

디자인을 잘하는 것? AI가 곧 따라온다.

기능을 빠르게 만드는 것? 이미 AI가 잘해준다.


그러면 남는 건 뭐냐

이걸 왜 이 사람에게, 이 타이밍에, 이 방식으로 줘야 하는가를 설계하는 능력.


이걸 ‘의미 설계’라고 부르고 싶다.

의미 설계는 단순히 UX 카피를 잘 쓰는 것도 아니고, 기획서를 잘 쓰는 것도 아니다.


유저의 삶의 맥락을 이해하고, 그 맥락 안에서 우리 서비스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정의하고, 그 역할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경험을 배치하는 것


이건 AI가 대신 해줄 수 없는 영역이다.

왜냐하면 이건 생성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문제니까!


수천 개의 결과물을 뚝딱 만들어내는 건 AI가 하겠지만, 그중에서 이거다! 를 고르고, 이 순서로, 이 맥락에, 이 톤으로 배치하는 건 결국 사람의 몫이다.



딸깍의 시대, 기회인 이유


‘다들 만들 수 있으면 기획자가 필요 없어지는 거 아냐?’

근데 오히려 반대더라


만드는 게 쉬워질수록, “뭘 만들 것인가”를 판단하는 사람의 가치는 올라간다.


일상에서 비유하면 이런 거다.


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사진 찍는 행위는 누구나 할 수 있게 됐다. 스마트폰 하나면 충분하다. 근데 그렇다고 사진작가의 가치가 사라졌나?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찍을 것인가’, ‘어떤 시선으로 볼 것인가’를 아는 사람의 가치는 더 높아졌다.


AI 시대의 기획자, PM,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딸깍 한 번이면 기능은 만들어진다.

근데 그 기능에 영혼과 의미를 불어넣는 건 여전히 사람이다.


예전의 나는 기능 스펙을 논리적이고 촘촘하게 짜는 데 에너지를 많이 썼다.


예외 케이스 꼼꼼히 정리하고, 헷갈리지 않게 문서 정리하고. 물론 이것도 여전히 중요하다. 근데 이게 나의 핵심 역량이라고 말할 순 없다.


요즘은 오히려 이런 질문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이 기능을 통해 유저가 느끼는 감정은 뭐지?”

“이 흐름에서 유저가 이탈하는 진짜 이유는 기능 부족이 아니라, 맥락 부재 아닐까?”

“우리가 유저에게 전하고 싶은 한 문장이 뭐지?”


오히려 스펙 짜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렵다.


근데 이 고민을 깊게 한 프로덕트와 안 한 프로덕트는 결과가 확연히 다르다. 유저의 반응이 다르고, 리텐션이 다르고, 무엇보다 팀 내에서 “왜 이걸 만드는지”에 대한 공감대가 다르다.


딸깍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점점 더 많아질 거다.

AI는 점점 더 똑똑해질 거고, 진입장벽은 계속 낮아질 거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무엇으로 차별화될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기능이 아니라 의미를 설계하는 사람이 되자.


왜 이 사람에게 이것이 필요한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

기술이 아니라 맥락으로 설득할 수 있는 사람.

딸깍으로 만들어진 수천 개 중에서, ‘이거다’를 고를 수 있는 사람


+)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AI 도구를 열어두고 있었다.

근데 “이 글을 왜 써야 하는지”는 AI가 정해주지 않았다.

그건 오롯이 나의 고민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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