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미술감상법
친구가 지인에게 나를 그림그리는 친구라고 소개를 했다. 그러자 그는 대뜸 나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그러고는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면 무엇을 봐야할지 모르겠다. 그림을 보고 느끼라고 하는데 자신은 머리로만 살아서 그런지 잘 안되더라. 주절주절 자기 얘기를 늘어놓았다.
어떤 설명이 쉽게 이해될까 마음에 잘 와닿을까 고민이 되었다. 나만의 그림감상법 중 하나인 '그림 속 장면 안에 들어가 보기'를 권했다. 추상화 보다 사실적 장면을 그려낸 구상화인 풍경화, 풍속화를 예로 들며, 그 곳의 공기, 온도, 햇빛, 소리, 시대적 배경, 인물 간의 역동을 상상하며 느껴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기 얘기하느라 바빠 내 얘기는 듣고 있지 않았다. 그림에 대한 예술적 관심보다 어떤 분야의 일이든 이해가 높아야한다는 생각이 앞선 사람으로 느껴져서 나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나도 예전에는 그림을 보면 무엇을 봐야하는지 막막했다. 그냥 미술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는 작가인지 기억 속을 뒤졌다. 아는 작가의 작품인지 먼저 확인하고, 보고 들은 기억을 탐색하여 그 정보에 의존해 감상했다. 예술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미리 작가에 대한 정보, 배경, 그림에 표현된 신화, 상징을 먼저 알아보는 것은 입문을 위한 좋은 첫걸음이다. 호기심이 불러일으켜지면 좀 더 작품에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다.
첫번째 방법이 익숙해지면 두번째 방법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흠.. 이 그림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림에 들어가 주인공, 관찰자, 주변인물, 작가가 되어본다. 그리고 주변에 그려진 내용을 통해 그림 속의 상황을 상상해본다. 작품에 의해 감정이 불러일으켜져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아도 어떤 작품의 앞에 서면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전율이 흐르고, 머리가 바짝서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순간적으로 느끼는 이런 강렬한 경험을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그림을 두가지 방법을 통해 인지적, 정서적 차원에서 볼 수 있지만 감각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작가의 제작과정을 추적해 재료와 도구를 갖고 움직임을 상상해보고, 재료가 가진 특성에 의해 느끼는 감각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보는 것을 두고 말한다. 목탄이 화지에 닿을 때마다 내는 사각사각 소리, 붓이 물통 안에서 철렁철렁 씻기는 소리, 화학실을 방불케 하는 각종 물감, 보조제 냄새, 순간적인 아이디어에 마음이 급해 지우개로 벅벅 지우고, 재빨리 스케치를 이어가는 움직임은 몰입의 순간이 만들어내는 노동의 현장으로 느껴지게 한다.
예술매체 중 유독 미술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미술과 멀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미술을 꼭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말아버린, 다신 만나지 못할 대상처럼 여긴다. 우린 배우지 않아도 놀이터의 모래들을 모아 성을 쌓고, 부시며 놀았다. 웅덩이를 파서 물조리개로 물을 가득 쏟아 진흙탕을 만들어 흙을 조물조물 만지며 시간가는줄 모르고 놀았다. 그리고 손에 색연필 하나가 쥐어지면 방 벽에 온갖 낙서를 해댔다. 이랬던 우리가 고학년이 되면서 망각의 강을 건너버리게 되었다. 예술은 먹고사는 문제에 봉착하면 언제나 뒷전으로 물러난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미술감상은 어떻게 하냐고?’ 사실 정답은 없다. 미술이야말로 가장 주관적인 예술이다. 시각적 자극은 다른 매체에 비해 비교적 안전해 표현의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그리고 비평가의 시선은 참고만 할 뿐 내 감상에 영향을 주도록 여지를 줄 필요가 없다. 마음대로 상상하고, 느끼고, 표현해도 누가 뭐라할 수 없도록 미술은 나의 주관적이고 자유로운 사유를 허락한다. 그러다보면 자기만의 감상법이 생기지 않겠나..
미술감상법을 안내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마치 끝말잇기나 숨바꼭질 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린시절의 미술은 놀이였다. 그리고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마구 꺼내 자유롭게 표현하는 소통의 도구였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하는 과제 순위에서 점점 밀려나면서 우리는 배워야하는 것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내 경험을 이렇게 모아 소개하는 이유는 다시 미술이 우리의 생활 속으로 스며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서다. 누구나 가슴떨리는 작품하나 마음에 간직하기를.. 그 그림을 통해 위로를 받기를.. 다시 그림그리기를 통해 어린시절의 나와 만나기를.. 그래서 희망 하나 마음에 품고 세상을 당당히 살아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