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상실, 고독
무너진 자리에서야 비로소 바닥의 온도를 알았다.
그 차가움이, 나를 끝내 살렸다.
1-1. 익숙한 나를 잃어버리다
한동안, 내가 낯설었다.
어제까지 나였던 몸과 마음이
오늘은 타인의 옷처럼 헐겁게 느껴졌다.
웃던 표정이 어색해지고,
반사적으로 하던 말들도 목구멍에서 자꾸만 걸렸다.
아무렇지 않던 길 위에서 갑자기 숨이 가빠졌다.
그때 이해하지 못했다.
왜 잘 굴러가던 삶이 삐걱거리는지.
하지만 지금은 안다.
삶이 보내는 정직한 경고였다는 것을
더는 이 속도로, 이 방향으로, 이 방식으로는
살 수 없다는.
익숙함은 늘 안전의 다른 말이 아니다.
때로 익숙함은 우리가 서서히 무너지는
동안 아무 일이 없는 척해주는 가면이었다.
그 가면을 오래 썼다.
그리고 어느 날, 가면의 끈이 툭 끊어졌다.
낯선 나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다.
낯섦은 실패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건 다음 문을 열기 전,
손잡이의 감촉을 익히는 시간이었다.
1-2. 잠으로 도망친 밤
그 시절 잠을 쉼이 아니라 도피의 문으로 사용했다.
깨어 있는 동안엔 버텨야 했고,
버티는 동안엔 너무 많은 감정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낮에는 괜찮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밤이 오면 그 연기의 후유증이 밀려왔다.
머릿속은 복잡했고, 가슴은 묘하게 공허했다.
그래서 잠을 ‘쉼’이 아니라 ‘망각’으로 택했다.
눈을 감으면 세상이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어둠이 잠깐이나마 나를 지켜주는 듯했다.
하지만 아침이 오면,
밤새 미뤄두었던 감정들이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은 피난처였지만, 피난이 오래가면 고립이 된다.
그 고립 속에서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진짜로 쉬고 싶은 걸까,
아니면 사라지고 싶은 걸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그건 스스로에게 건 첫 번째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이 내 안의 어둠에 아주 작은 틈을 냈다.
잠으로 도망치던 밤 대신
깨어 있음의 불편함을 견디는 연습을 시작했다.
도망치지 않고 눈을 뜨는 것,
그게 나의 첫 번째 훈련이었다.
이제는 안다.
잠이 나를 살려준 게 아니라,
잠에서 깨어나려 했던 내가 나를 살리고 있었다는 걸.
1-3. 사라지고 싶다는 충동
살다 보면,
삶이 너무 무거워 손에서 미끄러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마음은 쉬운 상상을 꺼내든다.
모든 걸 내려놓고, 다섯 발짝쯤 뒤로 물러나,
흔적 없이 사라지는 상상.
그 상상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고마워했다.
그 상상은 내 안의 경계선이었다.
여기를 넘으면 위험하다고,
내가 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구조 신호였다.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을 들여다보면,
속에는 늘 다른 문장이 숨어 있었다.
“제발, 좀 쉬게 해 줘.”
“잠깐만 멈추게 해 줘.”
“혼자 있고 싶어.”
그러니까, 사라지고 싶다는 충동은
살아 있고 싶다는 충동의 그림자였다.
그림자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림자 곁에 앉아 물었다.
“지금 네게 필요한 건, 무엇이야?”
대답은 늘 소박했다.
삶은 큰 결심 대신 작은 동의로 이어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1-4. 세상에서 멀어진 나
가끔은,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데 물러남과 도망침을 자주 혼동했다.
관계가 무너질까 봐 겁났고,
세상이 나를 잊어버릴까 봐 불안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 지쳤다.
마음이 고장 난 채로 계속 켜두면,
결국 배터리는 방전된다.
비로소 꺼야 충전되는 존재라는 걸 배웠다.
세상에서 멀어진다는 건 세상을 버리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중심을 회수하는 일이었다.
중심을 회수하고 나니,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갈 힘이 생겼다.
멀어짐은 끝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한 거리 두기였다.
당신이 무너진 그 자리에서,
이미 다음 계절의 뿌리가 자라고 있다.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땅속은 지금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