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동안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고 믿었다.
같은 요일에 안부를 묻고,
같은 밤에 메시지를 주고받고,
같은 하루의 끝에서 서로를 떠올렸으니까.
그래서 그 믿음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함께 있었고, 자주 웃었고,
서로의 하루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같은 시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은
의심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믿음은 사실이 아니라 조건이었다.
같은 공간, 같은 빈도, 같은 연락.
우리는 그 조건들이 충족되면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고 쉽게 결론 내렸다.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고,
같은 장면을 보고 있었고,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장면을 본다는 것이
같은 시간을 산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 순간을 과거와 연결하고 있었고,
그는
그 순간을 미래로 넘기고 있었다.
그래서 같은 하루가
서로에게 전혀 다른 무게로 남았다.
어떤 날은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평범했지만,
어떤 날은
그녀에게 오래 남는 순간이 되었고,
그에게는,
지나가야 할 과정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 차이를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그 차이가 문제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매력처럼 보인다.
한 사람의 깊이는 안정처럼 느껴지고,
다른 한 사람의 속도는 희망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서로를 보완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우리는 잘 맞아.”
“우리는 같은 방향을 보고 있어.”
그 말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말들 속에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전제가 하나 있다.
방향이 같다고 해서
지금 서 있는 지점이 같은 것은 아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 의미를 두고 싶어 하고,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지나서야 의미를 느낀다.
그래서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고 믿었던 날들 속에는
이미 작은 어긋남들이 쌓이고 있었다.
대화는 이어졌지만,
호흡은 조금씩 달랐고,
함께 웃고 있었지만
웃음의 이유는 같지 않았다.
그 차이는
문제가 생겼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한 사람은
“지금 이게 중요해”라고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지금은 아니야”라고 답한다.
그때 우리는 당황한다.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한다.
“왜 갑자기 이렇게 멀어졌지?”
“왜 지금을 피하지?”
“왜 같은 상황을 다르게 느끼지?”
하지만 갑작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차이는 이미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고 믿었던 날들 속에
조용히 들어와 있었다.
우리는 그저
아무 문제 없이 흘러가는 날들이
같은 시간이라는 증거라고 착각했을 뿐이다.
사실은
문제가 없었던 게 아니라,
아직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었는데.
같은 시간을 산다는 건
같은 리듬으로 머문다는 뜻이다.
지금이라는 순간에
함께 머무를 수 있다는 뜻이다.
그건 생각보다 어렵다.
사람은 각자 다른 시간에 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지금 붙잡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은 시간에 살고 있고,
누군가는
지금 붙잡으면 무너질 것 같은 시간에 살고 있다.
그래서 같은 시간을 살고 있다고 믿었던 날들은
사실,
서로의 시간 감각이
아직 충돌하지 않았던 날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믿음이 깨질 때,
우리는 처음으로 질문하게 된다.
정말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고 있었을까.
아니면
서로의 시간을
각자 다른 방향으로 견디고 있었을까.
다음 이야기에서는
그 차이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과거에 머무는 사람의 현재로
조금 더 들어가 보려고 한다.
시간은 늘 지나가지만,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흐르지는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