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모방과 소멸
금발에 붉은 원피스를 입은 인형이었다. 볼을 누를 때마다 나는 행복해라고 말했다. 아이는 인형을 던지고 놀았다. 벽에 부딪힌 인형이 나는 행복해라고 말했다. 식탁 밑에서 밟힐 때, 강아지가 물고 놔주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매일 새로운 방법으로 인형을 괴롭혔다. 그때마다 인형은 나는 행복해라고 말했다. 밤에 잠에서 깬 아이가 화장실에 갈 때 침대 밑에서 인형이 울고 있었다. 아이가 볼을 눌러도 행복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인형에게 이제 행복하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자, 아이가 빙그레 웃었다. 아침에 잠에서 깬 아이는 바닥에 던져진 인형을 위아래로 잡아당겼다. 얼굴이 발개질 정도로 힘을 주자 인형이 반으로 찢어지고 말았다. 찢어진 인형을 내려다보던 아이는 가위를 가져와 인형을 조각내기 시작했다. 일을 다 마친 아이가 자신의 볼을 누르며 "이제 행복해"라고 말했다.
행복은 좋은 것이 생기는 일이 아니다. 불행한 것이 사라지는 일이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은 돈이 생겨서 행복한 게 아니라 노동이라는 고통이 사라져서 행복하다. 볼 수 없던 사람이 세상을 보게 된다면 눈이 생겨서 기쁜 게 아니라, 볼 수 없어서 불편하던 것들이 사라져서 행복하다.
그렇다면 타인의 행복을 볼 때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대부분은 그의 행복으로 자신의 불행이 더 선명해진다. 그가 내려놓은 불행을 줍는다. 어리석은 일이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다. 배가 고플 때 누군가 빵을 먹는다면, 그 행복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나의 배고픔만 확인할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 행복하다면 빌어주기보다 빼앗고 싶어진다. 궁극에는 그와 나의 불행의 수평을 맞추고 싶어진다. 못난 마음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행복을 남발하는 것은 누군가의 저주가 된다.
인간의 마음은 천국과 지옥이 아무렇게나 섞인 형상일 것이다. 어느 날은 가위를 들고 이해할 수 없는 행복을 난도질하고, 어느 날은 고이 접어둔 행복을 이불 깊숙이 넣어둔다. 습관적으로 행복하다고 말하면 행복해질까. 요즘 그런 의문을 달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