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저작권
소년은 편지를 꼬깃꼬깃 접어 실내화 가방에 넣었다. 친구가 빨리 가자고 손짓을 하였다. 소년은 신발을 신고 자기 것이 아닌 것처럼 어기적 걸었다. 운동장은 축구하는 아이들로 북적였다. 소년은 친구와 걸으면서 소유와 저작에 대한 생각을 하였다. 며칠 전 남이 만든 고무동력 글라이더를 자기 거라고 우기며 생떼를 쓰던 아이도 생각이 났고, 옆 반에서 들은 우스갯소리를 자기가 만든 이야기인양 떠들던 반장의 모습도 떠올랐다. 소년에게는 온전히 자기 것이었으면 하는 것들이 있었다. 자기만의 방, 게임기, 자전거 그리고 편지. 소녀는 교문에서 소년과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녀는 눈을 길게 째리며 소년에게 말했다. 너, 내가 얘한테 전해주라는 편지는 어쨌니? 소녀는 친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친구는 재밌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우리 둘을 구경하였다. 세상에는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이었으면 하는 게 있었다. 소년은 소녀의 얼굴을 보았다. 마치 낮에 뜬 달덩이처럼 하얗게도 생겼다. 이건 내 거야! 소년은 실내화 가방을 가슴에 안고, 냅다 골목 안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이 시는 저작권을 단순한 법적 개념이 아니라 감정의 소유, 말의 귀속, 기억의 주인이란 주제로 질문을 확장해보고자 했습니다. 소년의 시선을 따라가며, 우리가 '내 것'이라고 느끼는 것들이 정말 누구의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감정과 언어의 영역에서도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인지를 묻고 싶었습니다.
왜 소년이 "편지"를 자기 것이라 우기는가? 저는 그것을 물리적 저작권과 감정의 저작권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편지를 쓴 사람은 소녀(물리적 저작권자, 작성자 권리는 소녀에게 있음). 하지만 그 편지를 갖고 있던 시간, 감정, 망설임, 품고 있던 마음은 전적으로 소년의 것, 그 감정의 주체로서 '이건 내 거야'라고 외치는 것. 이것이 바로 시가 던지는 질문입니다. 물질적 창작의 주인은 내가 아니지만, 그 안에 감정의 창작자가 소년이라면 그도 주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 편지는 친구가 아니라, 소년의 감정을 만나야 비로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년의 '감정 소유 선언'은 저작권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전달자일 뿐이었던 소년이 편지를 읽고 안고, 감정을 담는 순간, 소년은 그 감정의 귀속권을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소년이 말하고 싶은 건 "내가 이 편지를 썼다고는 못하겠지만 여기에 담긴 감정만큼은 내 거야! 친구가 아니라 마땅히 내가 느꼈어야 하는 감정이야. 그러니까 내게도 권리가 있었으면 좋겠어!" 이건 실제 현실에서도 벌어지는 감정적 사건일 수 있습니다. 전해주기로 한 선물, 메시지, 사진, 편지 등을 끝내 전하지 못하고 남겨두는 경우. 그것은 돈을 지불한 내 것일까요? 주인이 되지 못한 그들의 것일까요? 이 시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한 겁니다.
소년은 저작권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감정의 권리를 주장한 것입니다. 편지는 소녀의 글이지만, 그 편지에 자신의 감정을 담아 품었던 시간은 소년의 것이었기에, 그는 마지막에 ‘이건 내 거야!’라고 외칠 자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소녀가 소년을 이해했을까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년이 소녀에게 품었던 그 감정만큼은 온전히 소년의 것이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