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이 울렸을 때

그러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by 슴도치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창밖에는 거대한 얼굴이 있었다. 그 얼굴이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시내 어디에서도 그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거대한 석고 모형 같은 얼굴은 뭔가를 알면서 모른 척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얼굴이 눈을 감고 있어서 덜 무서웠다.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까.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길거리를 걸어 다녔다.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 위에 올라가 보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얼굴이 안 보이는 척하였다. 정말 안 보이는 것도 아니면서 안 보이는 척을 하였다. 어렸을 때 길 옆에 살던 무당 할멈은 저것이 눈을 뜨면 세상이 끝장난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도 믿지를 않았다. 그 얼굴은 갈수록 고요하기만 하였다. 알람이 울렸을 때, 나는 창 밖에 그 얼굴을 보며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나는 순간 장난기가 돌았다. 창문을 열고 평생을 보아왔던 그 얼굴을 향해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안녕! 그러자 그 얼굴이 눈을 확 뜨고는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큰 눈동자라니!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는 무엇일까. 나에게는 밤의 산이 그렇다. 밤하늘보다 어두운 거대한 산의 능선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거인이 나를 내려다보는 기분이 든다.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거대함은 본능적으로 무서운 게 아닐까. 그것은 단순히 거인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고, 운명일 수도 있다. 불행 앞에서의 무력함. 어쩔 수 없어.라는 말처럼 사람을 서서히 포기하게 만드는 말도 없다.



요즘 세상이 너무 두렵다. 하늘에서 거대한 얼굴이 나타나는 기분이다. 양쪽으로 나누어진 사람들은 증오 위에서 차라리 불의를 떠들면 좋으련만, 끔찍하게도 정의를 부르짖는다. 나는 그들이 저마다 정의인 사도인 척 가식을 떠는 모습을 봐줄 수가 없다. 그리하여 나는 침묵한다. 봐도 못 본척한다. 그런 것이 편할 때가 있다. 아무 일도 없는 듯. 아무렇지 않은 듯.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보며 평범하다고 말한다. 비겁하다고 하지 않고 평범하다고 말한다. 침묵은 편리하다.



나는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는 데 있어 연민이나 동정만 있었으면 할 때가 있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고 그 불완전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완전하게 연민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그를 나보다 열등하며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도 나와 같은 사람이란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생기는 감정일 것이다. 나 혼자만 잘난 사람은 다른 이를 연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는 사실을 끝끝내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포를 향해 인사할 수 있을까. 불의를, 불행을 향해 웃어줄 수 있을까.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버티는데에서 온다. 그 두려움을 인정할 수 있을까?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지만 사실은 쉽지 않다. 때로 침묵은 금이지만 독일 때도 있다. 왜냐하면 침묵은 때로 긍정으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침묵함으로써 불의를 긍정하고 싶지 않다. 불행도, 공포도, 억압도 긍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일단 안녕! 하고 인사할 배짱 정도는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단단히 버티는 사람들은 그 대상을 똑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상을 똑똑히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터무니없는 공포심과 패배감에 현혹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언제나 인사다. 평범하게 안녕! 그리고 버텨보자. 다른 건 몰라도 그 버팀의 시간은 거대한 산의 어둠이 물러날 때까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리라.



그러니까

다시

제대로 보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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