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침대 위에 나체로 누워있는 그녀는 미동이 없었다. 목에 늘 차고 다니던 목걸이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게가 장식된 목걸이였다.라고 나는 수첩에 적었다. 나는 7월, 그녀는 6월생이었다. 게자리는 가정적이라지? 종로의 어느 거리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녀는 재밌는 것을 알려준다는 듯이 말했다. 내 안에는 쌍둥이 같은 내가 또 있어. 나는 쉽게 불안해지고 말았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그녀인지, 그녀 안에 쌍둥이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에는 극장표를 예매했는데 실수로 다른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녀와 나의 자리는 가까웠지만 함께 앉을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어긋남이 중력이나 관성 같은 법칙처럼 느껴졌다. 또 다른 형사가 내게 말했다. 그녀와 아는 사이였나? 나는 그녀가 상처받은 채 내게 온 날을 기억하였다. 그녀는 그전처럼 친근하면서 때론 쌍둥이처럼 낯설게 굴기도 하였다. 그날, 우리는 사랑을 나누고 나는 달콤한 말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반대로 돌아누울 뿐이었다. 그때도 목걸이는 차고 있었다. 방 밖으로 나가자, 반장이 내게 다른 사건을 맡으라고 지시하였다. 그때 정류장에서 헤어질 적에 나는 그녀의 등을 오래도록 바라본 적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 번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자동차에 몸을 싣고 어둡고 축축한 거리를 달렸다. 동료들이 우리 집 선반에서 그녀의 목걸이를 찾아낸 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난 후였다.
� 사라진 감정의 시체를 찾는 형사극
나는 자주 그런 감정의 좌석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와 나란히 걷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문득 돌아보면 그 자리는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표를 잘못 예매한 걸까. 아니면 애초에 극장이 달랐던 걸까. 가장 좋은 궁합이란 함께 있건, 떨어져 건 편안한 상태라고 한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건, 떨어져 있건 늘 불안했다. 우리는 궁합이 좋지 않았던 걸까. 애초에 만나면 안 될 사이였던 걸까.
어긋나고 뒤틀린 관계를 끌고 가는 건 욕심이다. 그것은 마약이나 도박과도 같다. 고시원에서 고시를 준비하다가 노인이 되어버린 고시생 같다.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도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은 감정 말이다. 하지만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건 세상에 너무 많다. 더군다나 혼자서만 노력하는 건 한쪽만 끌어당기는 줄다리기 같은 거다. 하는 의미가 없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서로를 낯설게 만드는 방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시에서 형사나 탐정 같은 직업을 소재로 자주 쓰는 편이다, 왜냐하면 그 직업은 감정에서 동떨어져 상황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이나 슬픔을 단어로 쓰면 그 감정은 옅어진다. 그냥 외롭거나 슬픈 상황을 보여주고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 글이야말로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형사나 탐정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짚는 일을 한다. 그들은 감정의 잔해를 쓸고 다닌다. 그날의 거리, 그녀의 등을 떠올리면서, 문득 다시 수첩을 연다. 목걸이는 사라졌고, 자리는 비었고, 말은 끝내 닿지 않았다.
우리의 자리는 어디가 적당했을까. 나는 이제 당신과 나의 거리를 가늠해 본다.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너무 가까워도 멀어져도 안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까지 계산할 수가 없다. 감정은 계산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너무 가까웠고 또 멀었다. 아주 연약한 구조물 같았다. 깃털 한 장 올려놓으면 곧장 무너지고 마는 하우스 오브 카드처럼. ‘게자리’는 가정적이고 감정적이고, ‘쌍둥이자리’는 양가적이고 이중적인 심리를 가진다. 불안형과 회피형이 연애를 하면 최악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최악보다는 좋았던 기억만 가지고 있다. 원망이라는 감정처럼 쓸데없는 건 없다. 지금에 와서는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다.
그녀는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나는 지금 어디쯤에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또 수첩을 스르륵 열어보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