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열쇠

그러나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by 슴도치

앞집 남자와 나는 사이가 좋았다. 우리는 아침마다 만났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가 손을 흔들면 그가 마주 흔드는 식이었다. 그가 시내에서 열쇠 가게를 한다는 건, 당신이 말해주어서 알았다. 어느 주말엔 교회에 가려다 지갑을 안방에 두고 문이 잠겨 한참을 애먹었지만, 앞집 남자가 도와줘서 다행이었다고 당신이 수선을 떤 적도 있었다. 그때 내가 어디 있었느냐고 묻자, 당신은 두 눈만 꿈뻑꿈뻑하였다. 우리의 대화는 맞지 않는 열쇠를 자꾸만 끼웠다 뺐다 하는 것 같았다. 차라리 구멍을 열쇠에 맞추는 게 낫겠어! 당신은 내 농담에 질색을 하였다.


결혼기념일 선물을 사러 몰래 시내에 나간 나는, 앞집 남자에게 들려 나의 고민을 고백하고 싶었다. 우리 집에는 맞는 열쇠가 하나도 없소! 하고 당신이라면 싫어할 우스갯소리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점심 무렵, 예정에 없이 집에 도착해 살금살금 안방 문고리를 돌렸지만 글쎄 그것은 짐짓 잠겨진 채였다. 나는 무릎을 꿇고 열쇠구멍 속을 들여다보았다. 침대 위에는 당신과 앞집 남자가 참으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흠칫 놀란 당신이 고개를 휙 돌리고선. 열쇠 구멍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하는 것이다.







열쇠가 틀린 걸까, 구멍이 변한 걸까?



서로 맞지 않는 열쇠와 구멍처럼 계속해서 대화가 어긋나고 해독하지 못한 채 살고 있을 때가 있다. 대화를 해도 무슨 주제였는지 금방 잊고, 쓸데없이 신경질적이 되어버린다. 장난을 쳐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나는 웃는데 상대는 운다. 입력값이 잘못된 컴퓨터처럼 모니터가 먹통이다. 나는 이제 당신 마음을 어떻게 여는지 모르겠다.



더 사랑한 사람이 약자고 약자는 허락되지 못한 공간에는 들어갈 수 없다. 결국 작은 열쇠 구멍 앞에 무릎 꿇는 처지인 것이다.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채 농담으로 분노를 감추고, 열쇠 구멍이라는 은유로 관계의 틈을 바라보고, 마침내 도청하는 자, 관찰자, 배제된 존재가 되어버린다.


젖은 종이컵에 물을 따라봤자 세는 것은 매한가지


떠날 수 없는 이유와 모른 척하고 싶은 심리는 무엇인가. 결국 상대가 없으면 더 무너질 것 같고 버틸 수가 없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거기까지인 것이다. 젖은 종이컵에 물을 따라봤자 세는 것은 매한가지. 나를 무너뜨린 사람이 나를 치유해 줄 수 없다. 칼로 낸 상처를 칼로 아물게 할 수는 없는 것처럼.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은 늘 인간을 편협하고 위험하게 만든다.



열쇠가 마모되었는지 구멍이 뒤틀렸는지 아니면 그 둘 다일지 이제 와서 알 수 있는 건 없다. 결국 우리의 문은 열리지 않게 되었다는 게 중요하다. 결국 덜 사랑한 사람이 열쇠를 바꿨을 것이다. 내 열쇠가 맞지 않는다고 섭섭해하지도 말자. 사랑이 끝나면 곧 다른 사랑이 온다. 오늘 후회 없이 무던하게 사랑한 사람에게 사랑은 또다시 오고야 만다. 그런 사람을 삶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그때 열쇠를 바꿔준 사람이 더는 밉지도 아프지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사랑을 만나게 해 주어서 감사할 것이다. 당신을 사랑했다. 하지만 당신이 한 가장 큰 실수는 시간이 흘러도 당신만을 유일하게 사랑할 거라고 착각한 그 오만함이다.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당신의 행복을 바란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열쇠가 없어도 가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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