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만난 희생자

4.3 수형자 직권재심

by 겨울집

오늘 제주지방법원 제4-1형사부와 제4-2형사부 심리로 유족 청구재심 1건과 제25차 직권재심 사건이 다뤄진 현장에 다녀왔다.

재판부(재판장 강건 부장판사)는 4명이 각각 청구한 유족 청구재심을 하나의 사건으로 병합해 심리하고,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단장 강종헌,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25차 직권재심(30명) 사건도 심리했다.

올해 초 전국단위 법관 인사로 변경된 4·3재심 전담 재판부 구성 이후 첫 재심 사건이지만, 이전처럼 검찰의 무죄 구형과 변호인의 무죄 변론이 이어졌다.

재판부는 4.3 유족들에게 마음의 응어리를 덜어낼 수 있도록 발언 시간을 허락했다.

유족들의 발언은 재판 현장에 함께 있던 사람들의 눈물도 뽑아냈다. 훌쩍거리는 소리는 유족들의 자리를 넘어 청중석에서도 이어졌다.


군법회의의 수형자들은 제주농업학교에, 주정공장에 수용되어 제대로 된 재판 형식도 갖추지 못한 채 판결을 받았다. 4·3 기간 동안 300여 마을 2만여 호가 소실되었고, 3만여 명에 가까운 희생을 겪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이유도 모르고 그렇게 희생되었다고. 그럴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말이다.


밭을 갈고 있다가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간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생년월일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유족. 그는 4·3의 여파로 학교도 다니지 못했고, 사진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아버지의 발가락 하나 손가락 하나 만지지 못한 채 나이가 들어 이젠 아파서 말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을 모르니 아버지의 생일날로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어머니가 형무소에서 아버지를 만났는데, 춥다고 해서 뜨개질을 해 옷을 만들어 갔더니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한 유족은 아버지 사형제가 모두 표선 백사장에서 희생을 당했다고 한다. 유족의 아버지인 막내는 겨우 도망가서 살아났다는데, 살기 힘든 나날을 보내다 보니 겨우 이름만 쓸 수 있을 만큼이라고 한다. 집안 어르신들이 계셨더라면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을, 억울하다며 도저히 목이 막혀 말을 못하겠다며 유족의 배우자만 참석하셨다.


어르신들이 자꾸만 희생당하자 집에만 있었다는 아버지. 이호국민학교에 낮에 모이라는 말에 갔더니 집단으로 학살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백모가 총을 세 방을 맞고도 살아있다는 말에 무서움을 참고 백모를 모셔다가 밤에 다호리 용한 의원에게 모셔다 놓았다고 한다. 추우실까봐 이불을 갖다주고 돌아오다가 폭도라고 오인되어 잡혀서 주정공장에 수용되었다가 대전 골령골에서 학살당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25세에 과부가 되어 남매를 키우느라 힘이 드셨다고 울컥울컥 말을 쏟아내셨다.


이 외에도 많은 유족분들이 매이는 목소리로 희생자들의 삶에 대해 말씀을 하셨다. 젊고도 젊은 목숨들이 한순간에 쓸려나갔다. 아까운 인재들이 영문도 모른 채 그렇게 희생됐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한 맺힌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무죄를 선언하고, 그들을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짐들을 벗기기 위한 노력이 조금이라도 오래 억눌린 마음을 덜어주었으면 좋겠다.


피고인들이 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무죄를 구형한다. 라는 판결이 오늘은 살짝 미루어졌다. 이전까지는 검찰의 구형, 변호인의 무죄 변론, 청구인들의 진술 절차 이후 곧바로 재판부의 ‘무죄’ 판결이 이루어졌다.


오늘은 담당 판사가 바뀌면서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라며, 판결문에 좀 더 진정성 있는 판결을 담겠다며, 선고 기일을 4월 4일 오전 10시로 미뤘다. 형식적인 답변이 아닌 유족들의 오랜 상처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덧대는 연고를 발라주겠다는 판사의 의지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