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를 만나다] 숨고가 만난 66번째 사람
바둑은 결과는 승패 두 개지만,
과정에는 정해진 답이 없어요
숨고가 만난 예순여섯 번째 사람
바둑 강사, 이태경
혹은
숨고 바둑 레슨 고수, 이태경
바둑을 시작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버지가 바둑을 좋아하셔서 반강제로 바둑을 시작했어요. 7살 때 처음 동네 바둑학원에 다녔죠. 처음에는 취미로 배우다가 초등학교 3학년에 프로 기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했어요.
그때부터 오전 수업만 듣고 오후에는 도장에 가서 바둑을 공부했죠. 중학교 1학년 때 1년만 다니다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프로를 준비했어요. 이때 한국기원 여류 연구생으로 들어가 프로 입단에 도전했어요.
프로를 준비하셨다면 혹시 바둑 커리어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일단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여류 연구생 활동을 2년간 했어요. 전국에서 프로 기사를 꿈꾸는 학생들 중 선발되어 연구생을 할 수 있는데 연구생이 되기 위해서도 경쟁이 굉장히 치열한 편이랍니다. 프로 데뷔를 위해 거치는 관문 중 하나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2년 후에 18살쯤 바둑을 그만뒀어요. 프로 기사가 되기 너무 치열했고, 당시 바둑계에서 18살이면 조금 늦었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당시에는 여자 프로 기사를 1년에 한 명만 뽑는 정도니 얼마나 힘들지 짐작가죠?
연구생 활동을 끝내고 검정고시와 수능을 치르고 일반 대학에 진학했어요. 대학 입학 후에는 바둑을 두지 않았어요. 아, 한 번 있네요. 대학교 2학년 때쯤 전국체육대회 경기도 대표 팀으로 나가 여성부에서 동메달을 땄어요. 간간이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애들을 가르치기도 했죠.
졸업 후 패션 관련 일을 하다가 몸이 안 좋아져서 일반 회사는 다니기 힘들었어요. 27살쯤 지인의 소개로 명지대 이세돌 바둑학원 용인지점에서 부원장을 맡아 1년 조금 안되게 근무했어요. 그만두고는 성인 개인 레슨 위주로 진행하고 있어요. 보통 숨고에서 만난 수강생들이에요.
현재는 안양시 바둑협회 소속 선수로 1년마다 안양시 대표로 경기도 체육대회에 출전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개인 지도 레슨과 함께 '비바'라는 곳에서도 일하고 있어요. 한국에 바둑을 배우러 유학 오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바둑을 가르치는 곳이에요. 다양한 나라 출신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영어로 바둑을 가르친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사실 한중일을 제외하면 바둑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나라가 적어요. 생각보다 많은 외국인 바둑 유학생이 있답니다.
7살 때부터 바둑을 시작하셨다면 굉장히 오랫동안 두셨는데, 혹시 그 매력을 알 수 있을까요?
상반되는 매력이 있어요. 결과적으로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명백한 스포츠인데도 과정에서는 뭐랄까.. 창의성이 인정되는 예술 분야 같아요. 딱 정해진 답이 없어요.
물론 어느 정도 정형화된 틀이 있지만 이마저도 알파고 이후에 많이 깨졌어요. 자신의 취향과 기풍대로 판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랍니다.
혹시 일반 대학에 진학하셨다면 바둑 외 다른 커리어도 있나요?
패션 IT 사업을 했어요. 일반적으로 프로기사를 목표로 바둑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학업과 병행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바둑에 모든 걸 올인하죠. 저 역시 그랬고요. 오랫동안 학업과 멀어져 있었기 때문에 바둑 말고 다른 길을 택하기 쉽지 않았네요.
바둑을 공부했던 학생의 경우 명지대 바둑학과에 많이 진학하는데 저는 다른 것을 하고 싶어서 인하대 의류 디자인 학과에 진학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바둑 말고는 패션의류 분야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대학교를 다니면서 취업보다는 창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창업 준비를 했죠. 제 사업 아이디어를 정부에 제출했는데 당선이 되어 창업 자본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어요. 맞춤형 패션 정보를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 제공하는 서비스 회사였는데 1년 정도 운영하다 역량 부족으로 접었어요.
그렇다면 바둑을 가르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잘하는 것을 남들에게 잘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바둑 실력보다는 가르치는 것을 더 잘하는 것 같아요. 요즘 말로 약간 설명충 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왜 이 돌을 여기에 두었나, 왜 이렇게 했는가 배워왔고, 어느 정도 수준에 어떤 장벽이 있을지 먼저 공부하고 배웠던 선배로서 알 수 있어요. 수강생의 수준별로 어디쯤에서 막히고 어려워할지 딱 집어낼 수 있죠.
그리고 그 부분들을 상세하게 잘 설명해요. 최대한 자세하면서도 비유를 적절히 사용해 쉽게 설명하죠. 특히, 설명이 논리적이라 성인 수강생이 좋아해요.
고수님의 바둑 레슨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레슨은 크게 강의, 대국&복기, 교재 풀이로 구성되어 있어요. 입문자는 바둑 둘 때 필요한 개념과 원리를 설명하고, 초중급 이상부터는 바둑을 잘 두기 위해 필요한 여러 기술들을 설명하죠.
대국과 복기는 1:1 수업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는 부분이랍니다. 학생분과 대국을 하고 대국 중간 혹은 끝나고 잘못된 수를 알려주고 어떻게 두면 더 좋은지에 대해 알려드려요. 마지막으로 실력 향상을 위해 바둑에서 꼭 필요한 수읽기 연습을 위해 교재를 풀어요.
제 바둑 레슨에는 차별점이 있어요. 성인분들을 지도할 때 특히 신경 써드리는 부분이 있어요. 논리적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나하나 꼼꼼하게 설명하는 거죠.
예를 들어 정석을 외울 때 무조건 외우게 하지 않고 한 수 한 수 왜 그렇게 뒀는지 설명을 해드려요. 보통 일단 정석을 외우기만 하죠. 나중에 실력이 늘게 되면 왜 그렇게 두는 지 스스로 깨닫게 되거든요.
대개 어린이는 시간도 많고 당장 이해가 안 가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하지만 성인의 경우 당장 이해가 안 되면 어려움을 많이 느끼시고 암기도 힘들어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설명을 일일이 다 한답니다.
기억에 남는 수강생이 있나요?
여성 변호사 수강생 한 분이 생각나네요. 혼자 배우시다가 남편분까지 설득해서 같이 배우시는 분이에요. 보통 남성분이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권유하는 편인데 반대 상황이었어요.
해당 여성 수강생은 저한테 입문 수준부터 배우셨는데 10급 정도 되실 때 파트너가 필요하다며 남편분을 설득하시더라고요. 작년 4월부터 지금까지 배우고 계세요.
지금은 일반인 중급 수준에다가 남편분과 함께 치열하면서도 재밌게 바둑을 두고 계신답니다.
레슨 외 남는 여가시간에는 뭘 하시나요?
새로운 걸 보고 먹는 걸 좋아해요. 맛집을 찾아간다거나, 예쁜 곳을 찾아가요. 아니면 집에서 그냥 푹 쉬기도 해요. 건강이 약간 안 좋은 적이 있어 현재 재활 PT도 틈틈이 받고 있어요. 그리고 영화도 보고, 보드게임도 좋아해서 종종 하는 편이에요.
혹시 개인적인 목표나 꿈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바둑학과가 아닌 일반 대학에서 바둑 강의를 해보고 싶어요. 보통 대학 교양 강의들을 보면 다양한 스포츠 강의를 일반교양으로 많이 제공하고 있는데 바둑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더라고요.
성인이 되면 바둑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어릴 때 바둑을 배우는 것도 좋지만, 대학생도 바둑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대학교에서 교양 강의로 개설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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