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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결 Oct 18. 2021

요리, 번아웃 무기력을 넘어서는 실천

사랑의 의무를 다하며 지금을 살기

근래에 내 삶에 찾아온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었나요?
나는 그것을 '예'라고 했나요, '아니요'라고 했나요?

도전을 맞닥뜨린 상황

감수하려고 했는가, 아니면 모면하려고 했는가?

그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어떤 깨달음이나 마음을 갖게 되었는가?



요리하기.

정확히 말하면 가족들 위해 온종일 요리하기.

영화 <미나리> 속 윤여정이 손주들 밥해주고 돌봐주고 했던 것처럼, 우리 할머니도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해부터 함께 사시면서 가사 일을 돌보며 나와 동생을 키워주셨다. 그러다 몇 년 전 뇌경색으로 건강이 나빠지시고 나서는 일상생활이 버거운 상황이 되었고 이도 좋지 않으셔서 씹어야 하는 음식은 잘 드시지 못하게 되셨다.

어머니께서 직장을 다니셔서 끼니를 챙겨드리기 어려운 상황이라, 내가 일정이 없는 날에 본가에 가서 밥해서 가족들과 같이 먹고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영화 <미나리> 속 장면. 네이버 영화 스틸컷.


부끄럽게도 처음에는 모면하려고 했다.

작년 코로나 시기, 몇 개월 가량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집에서 지내는데 너무 괴로웠다. 심신이 망가져 건강 악화로 회사를 쉬는 기간인데, 세 끼니마다 밥을 차리고 치우다 보면 금방 하루가 갔다. 소극적인 아버지, 마이웨이인 동생을 빼고 나면 부엌일은 어머니와 내 담당이었는데 끼니때만 되면 서로 예민해졌다. 어머니는 이십여 년 간 직장생활을 해오신 워킹맘이어서 쉬는 날에는 가족들 위해 요리를 하셨지만 요리를 크게 즐기는 편이 아니셨고 나는 아주 기본적인 음식밖에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매번 뭘 만들지도 고민이었다.


어머니는 아점, 저녁 두 끼만 먹었으면 했고 샌드위치, 샐러드 등도 섞어서 먹기를 바랐는데, 할머니는 맵지 않은 한식에 씹기 편한 음식을 세 끼 챙겨드리면 좋았다. 아버지는 살이 찌지 않고 포만감이 느껴질 수 있도록 오이, 파프리카, 당근 등을 잘라서 준비하면 좋았다. 젊은 입맛인 동생은 자기 입맛에 맞게, 간헐적 단식 타이밍에 맞게 혼자 차려먹었다.

세 끼니 식사하되 샌드위치 등도 식단에 반영됐다.

어머니는 재취업 준비로 주 5일 학원을 다니시게 됐는데 그때부터는 밥하는 게 온전히 내 몫으로 다가오면서 부담이 더해졌다.

결국 아버지께는 설거지 당번 문제로, 동생에게는 딸기 다듬은 일로, 어머니께는 미역 냉채 만들다가 감정이 폭발해버렸다. 내가 번아웃과 무기력에 빠져있던 상태인데도 끊임없이 요구하는 가족들(실은 가족들 요구에 내가 모두 맞춰야 한다는 스스로 만들어낸 강박이었다)과 함께하는 집이 버거웠고, 퇴사 후 편하게 쉬고 싶다는 생각에 올초 독립하게 됐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는 점점 몰라보게 살이 빠졌다. 고기는 씹지 못해 잘게 잘라드려도 그마저도 한 숟갈 남짓 드시고 기력이 부족할 때는 아버지 도움으로 오리와 장어를 고아서 드셨지만 워낙 독한 약을 아침 점심 저녁 자기 전에도 복용하면서 장이 많이 약해져서 양분 흡수가 예전 같지 않으신 것 같기도 했다.


영화 <밥정> 속 장면. 네이버 영화 스틸컷.

그러다 영화 <밥정>을 보았고 많이 울었다.

셰프 임지호가 지리산을 다니며 산에 나는 풀들을 가지고 음식을 해서 그 동네에서 만나는 할머니 댁에 가서 밥을 차려드리면서 여행을 다니는 내용이 나온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어머니뻘 되는 할머니들에게 정성껏 밥상을 차려드린다. 저런 두메산골에 먹을 만한 게, 영양가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싶은데 이것저것 영양 듬뿍 한 상 뚝딱 차려낸다. 이가 부실한 할머니들이 잡숫기 좋게 만들었다.

영감에 따라서 재료의 맛을 살려 음식을 만드는 분이다 보니 레시피를 따라 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지만, 어르신을 위한 밥상 차리는 것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할머니가 바라시는 건 가족들과 따듯한 밥을 먹는 것일 텐데 할머니가 일평생 가족들을 위해 해 오신 일이 얼마 되지 않는 기간인데도 왜 그렇게 버거웠는지 모르겠다.

할머니가 크게 아프시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를 했다.

진작 할머니가 요리랑 집안일 덜 하시도록 내가 많이 할 걸, 할머니 아프지만 병원 가기 싫다 하실 때 적극적으로 병원에 모시고 갈걸...

그러고 보면 나는 내 눈앞에 놓인 일들이 크고 버거웠고 무력감 속에서 삶을 통제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입원기간 동안 할머니를 돌봐드리면서 내가 일을 놓더라도 또는 프리랜서나 다른 재택으로 돈을 버는 방법을 찾아서라도 할머니 곁에서 돌봐드리고 맛있는 것 이것저것 해드리고 싶다고 했는데, 막상 그 기회가 왔는데 알아보지 못했고 괴로워하기만 했다.


병가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회사에 복귀할지, 아니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할지 정해야 한다는 것, 그 기간 안에 내 망가진 몸과 마음을 얼른 회복해야 한다는 것,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원인을 밝혀야 한다는 것,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쉬고 싶다는 것, 다른 이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뭔가라도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음식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것, 가족들 기호에 모두 맞추고 싶다는 것, 공평하게 시간을 들였으면 하는 것.


이런 복잡한 마음이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데 도전하는 즐거움, 가족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기쁨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그것들을 앗아가게 만들었던 것 같다.

무슨 일을 하든 결과에만 전전긍긍했던 나에게,

요리는 과정을 즐기는 삶의 태도를 배우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소하게 행복한 것들을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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