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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결 Oct 24. 2021

농사도 결국 공동체다

두메산골 혼자 사는 자연인 아니라 서로 돕는 형제자매며 이웃사촌

인간관계에서 상처가 많았던 내가 농사를 택한 이유 중 하나가 혼자서 할 수 있다는 거였다.

이 전제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내 밭이라는 영역이 명확하고 그 안에서 어떤 걸 심고 언제 일하고 쉴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옆 밭이 존재하기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내가 심은 작물이 키가 커서 옆에 그늘을 만들면 옆 밭 작물의 생장을 방해할 수 있고, 밭을 방치하면 벌레들이 꼬여 옆 밭에도 피해를 준다. 종자가 다른데 가까이 심어서 교잡이 되면 토종 씨앗을 제대로 채종 할 수 없게 된다.

아래는 수개월 천주교 농부학교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보고 겪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어디서 배우거나 찾아봐서 이렇게 농사 지어보니 더 좋다고 하면서 농사법을 공유한다.

채종한 씨앗을 나누기도 하고 일손이 필요할 때 서로 돕는다.

수확한 작물로 이렇게 만들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레시피를 알려주고 해온 음식을 나눈다.

장터에 팔 물건을 얼마에 내놓을지, 무슨 아이템이 잘 팔릴지 메뉴 개발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하고 판매 노하우도 공유한다.

농사짓는 것 역시 사람이 함께 서로 의지하고 교류하며 더불어 사는 거였다.


처음에는 밭도 사람들도 낯설고, 밭일도 손에 안 익고, 저질체력으로 금방 방전돼서 몸도 힘든 데다 이 일이 나한테도 맞는지 모르겠고 몸과 마음 모두 힘드니까 방어적으로 위축되어서는 사람들이랑 친해지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뒤에 숨어서 속으로 '힘들다, 맘에 안 든다'라고 투덜거리기만 했다.

그러다가 차츰 일도 손에 익고 체력도 늘고 오가며 눈인사하고 말 한마디씩 주고받으면서, 모둠 별로 도시락 싸와서 함께 먹고 모둠별 활동하고 밭을 갈며 어려움을 이야기 나누면서, 점점 시야도 트이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천주교 농부학교는 2006년 9월에 개교하여 1기 졸업을 시작으로 2018년에 13기 졸업 후 3년이 지난 후 올해 14기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동문 549명이 배출된 나름 전통이 있는 학교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 1)의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협력하며 유기 순환 농사법을 실천하고 가르쳐 지구를 살리는 농부를 양성하는 학교다.


한 해 수업이 마무리돼 가는 이제야 우리 실습생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던 앞 기수 선배님들, 멘토님들과 총동문회 회원분들의 노고를 깨닫게 됐다.

우리농 본부에서 준비하는 공식 교육, 강의들과 실제 실습을 실습생들이 밭에 적용하기까지 간극을 동문들이 후배를 양성하기 위한 애정 어린 봉사정신과 끈끈한 연대의식으로 메우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모둠마다 멘토가 붙어서 어려운 부분들을 들어주고 이끌어주고, 밭 관리 시기마다 농부님들의 원포인트 레슨과 코칭 덕분에 나를 비롯한 14기 실습생들이 시기마다 해야 할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마스크, 수박, 막걸리 등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시고 공식 교육이 마무리되던 주에는 고기도 구워주시면서 우리 14기의 실습 수료를 축하해주셨다.


총동문회는 실습밭을 관리하고 총괄하는 농장분과, 토종씨앗을 채종하고 모으고 나누는 우리씨앗주머니분과, 명동 보름장, 두물뭍 농부시장 참여 관련 총괄하는 장터분과, 교육과정을 영상촬영하는 홍보분과, 동문회 소식지를 제작하고 강의, 지식 나눔을 주최하는 교육분과, 실습지의 시설을 보수하고 유지하는 시설분과로 조직돼 있다.

총동문회가 양수리 일대에 커뮤니티를 형성하면서 귀농을 준비하는 수료생들에게 열려 있고 서로 지원해주고 끌어주는 분위기여서 실제로 양수리에 귀농을 하신 선배들도 꽤 된다고 한다.


자연 순환 농법으로 유기농업을 배우고 싶은 분들, 농촌에 연고지가 없어서 귀농할 지역을 정하기 막막한 분들, 형제애로 서로 도와주는 공동체 안에서 농사를 배우고 싶은 분들에게 천주교 농부학교 프로그램을 정말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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