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화동오로라 Dec 22. 2023

이 좋은 걸 너네만 타고 다녔냐?

 자동차




 퇴근시간에 남편이 차를 타고 데리러 왔다. 일주일 만에 면허를 따고 차까지 사 온 것이다.   

 하얀 자동차에서 내리는 남편, 백마 탄 왕자님을 보는 것 같았고 자동차에 타는 나는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었다. 내 돈으로 샀지만 로또를 맞은 기분이 들기도 했고 신분상승이나 인생역전 뭐 이런 비슷한 느낌까지 들었다. 중고차 가지고 뭘 그렇게 오버하느냐 하겠지만 눈과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두 바퀴에 의지해 무법천지 도로를 달리던 우리였다.  버스나 지하철, 자동차를 안 타고 다녔던 게 아닌데 계절과 날씨와 상관없이 보호받으며 다닐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11월 말 추위가 시작될 무렵 자동차 안은 조용하고 따뜻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만 있었는데도 너무 좋았다.


너무 좋아서 헛웃음이 나기도 했는데 남편은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향해  "야! 이 좋은걸 지금까지 너네만 타고 다녔냐?!" 말하기도 했고 오토바이로 빙빙 돌아갔던 길을 자동차 전용도로로 단숨에 가는 걸 보고 "이 좋은 길도 너네만 다녔냐?!" 하기도 했다. 서울은 자동차보다 오토바이가 경제적으로도 이동성으로도 최고인 줄 알았다. 꾸역꾸역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 지난 시간과 이제야 자동차를 타게 된 것이 아쉬워했던 것이다. 그래도 오토바이로 지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이니까 감사할 수 있다며 훈훈하게 마무리했지만 나 역시 그간의 시간들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실내 운전 연습장에 등록할 때에 사장님이 남편에게 '다시' 면허를 따는 거냐고 물었다고 했다. 음주운전이나 면허 취소 전력으로 다시 따는 사람으로 본 것이다. 생에 첫 면허시험이라고 하니 한번 더 남편 얼굴을 쳐다보셨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흔이 다 되어가는데 첫 면허라니 의아하게 쳐다보셨던 것 같다. 면허 시험장에 대부분 20대가 많았고 특히나 수능을 끝내고 면허를 따로 오는 고등학생들도 많기 때문이다.

 

 압구정 사거리를 지나 동호대교로 진입을 하는데 첫날이라 남편의 불안이 같이 느껴졌다. 도로 상황도 살펴야 하고 자동차 기기들도 작동을 해야 하고 남편의 눈과 고개와 손이 바쁘다. 신호 대기 외에는 말을 시키면 안 된다. 조수석에 앉은 나도 덩달다 긴장이 되고 같이 운전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날은 외식을 했고 서울 근교 새벽카페까지 다니며 드라이브를 즐겼다. "자동차가 좋긴 좋은데 왠지 모르게 오토바이가 탈 때가 맘은 더 편한 거 같아."라고 나도 모르게 진심이 나왔고 남편도 같이 웃으며 공감했다. 이후 남편의 운전실력은 정말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주차실력도 운전경력 10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10년차 인것 같다며 주변 지인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오토바이 경력덕분이기도 하지만 운전에 재능이 있는 것도 같다.


 처음 1-2주 동안은 내 앞에 나타난 자동차가 계속 신기했다가 이게 우리 자동차라는 사실에 감사했다가 했다. 오토바이에 매달려서 남편의 등만 보고 다녔는데  운전석에 앉아서 운전하는 남편이 신기해서 계속 쳐다봤다. 오토바이 보다 자동차 운전이 너와 더 어울리고 자연스럽다는 말도 나온다. 오토바이 말고 자동차로 연애했어야 했는데 뭐가 좋다고 나는 오토바이 뒤에 맨날 타고 다녔을까 지난 시간들도 웃으며 회상했다.


 면허를 따고 자동차를 산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남편은 퇴근하는 나를 매일 데리러 왔다. 매일 외식을 하고 매일 서울근교 새벽 카페를 갔다가 매일 드라이브를 했다. 비 오는 날 주차장에서 빗소리와 함께 음악을 듣기도 하고 맑은 날 밤에는 의자를 뒤로 젖혀 손을 잡고 창밖으로 보이는 별을 구경을 하기도 했다. 좋긴 좋은데 피곤해서 나는 자꾸 조수석에서 잔다.

 오토바이를 타던 16년 동안 나는 뒷좌석에서 졸았던 적이 한 번 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앞뒤로 떨어지느라 내 헬멧이 자꾸 남편의 헬멧을 툭툭 쳤다. 남편도 놀라고 나도 놀랐고 갓길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잠을 깨고 다시 이동했던 적이 있다. 그때 일을 꺼내며 남편은 내가 옆에서 자는 것도 좋다면서 내 맘도 모르고 자꾸만 차에 태운다.


 퇴근할 때 데리러 온다는 남편의 말이 요즘은 좀 무섭다. 집에 자꾸 가고 싶다. 남편은 혼자 드라이브를 다녀오기도 하는데 나는 깜깜하고 조용한 집이 오래만에 그렇게 편안하고 좋을 수가 없다. 그래도 자동차는 여전히 좋다.  

 지인들이 오토바이의 행방을 종종 묻는다. 750cc 크고 멋진 오토바이도 '아직' 있다. 여름과 겨울은 자동차로 봄과 가을에 오토바이로 다닐 예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서 너무 좋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