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훔치는 욕망
<철학적 고찰 Series 1_E01 – Prelude>
매력적인 사람을 볼 때면
그의 취향을 몰래 훔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훔친 그 매력을 내 안에 새기고,
그로써 내 것으로 빚어진 그 취향을
다시 그에게 환원하고 싶다.
이 짧은 고백은 단순한 “호감”이 아니라, 라캉이 말한 욕망의구조—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주체—를 거의 그대로 드러낸다.
나는 그를 좋아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가 좋아할 만한 내가되고자 하는 욕망 속에 있다. 그리고 취향은 그 욕망을 가장 우아하게 위장하는 매개다.
취향은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기보다, **타자의 욕망을 통과해 내게 도착한 기표(signifier)**에 가깝다. 나는 그 기표를 훔쳐 새기며, 사실은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가능하게 만든 세계의 문법을 배우려 한다. 그리고그 문법을 배울수록, 나는 더 선명해지기보다 더 흔들린다. ‘내 것’이 늘어날수록, ‘나’는 잠시 사라지기 때문이다.
1. 타자의 욕망 ― “네가 욕망할 만한 나”의 자리
라캉에게서 욕망은 언제나 ‘나 혼자’의 것이 아니다. 욕망은 타자의 언어를 통해 태어나고, 타자의 시선 속에서 형태를 얻는다. 그래서 내가 훔치고 싶은 것은 취향의 내용(음악/패션/문장)이라기보다, 그 취향이 작동하는 자리다. 그가 욕망하는 세계의 문턱, 그가 반응하는 감각의 좌표.
나는 그 취향을 “내 안에 새김”으로써, 그가 욕망을 두는 지점에 나를 위치시키려 한다. “너의 세계를 알아. 너의 감각을 이해해.” 결국 이 과정은 “그를 닮고 싶다”가 아니라, 더 정확히는 **“그에게 욕망받고 싶다”**로 수렴한다.
여기서 내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취향(need)이 아니라, **타자의 시선 속에서 ‘원해져도 되는 나’가 되고 싶은 요구(demand)**에 가깝다. 그래서 욕망(desire)은 늘 취향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 욕망은 취향 자체가 아니라 그가 욕망하는 자리에 자신을 두려는 움직임
• “네가 욕망할 만한 나”를 제작하려는 욕망
• 타자에게 욕망받고 싶은 주체의 구조가 드러남
2. 작은 대상 a ― 소유물이 아니라 “욕망을 다시 켜는 원인”
라캉의 작은 대상 a는 손에 잡히는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을 충족시키는 ‘물건’이 아니라, 욕망을 계속 발생시키는 **원인(결핍의 흔적)**에 가깝다. 그래서 내가 만들어낸 “내 것으로 빚어진 취향”은 완성품이 아니라, 타자가 다시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자극점이 된다.
중요한 건 a가 결코 완전히 소유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가 아무리 취향을 훔쳐 새겨도, 그게 곧바로 그를 붙잡는 열쇠가 되지는 않는다. 바로 그 “안 붙잡힘” 때문에 욕망은 멈추지 않고 계속 미끄러진다. 취향은 목적이 아니라 점화장치가 된다.
a는 결국 ‘내가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끝내 손에 안 잡힌 채남아 **관계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잔여(remainder)**다. 그래서 나는 취향을 얻는 게 아니라, 취향을 통해 더 큰 결핍의 윤곽을 얻게 된다.
• a는 소유 대상이 아니라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결핍의 흔적
• 취향은 ‘기호’가 아니라 욕망의 원인으로 변형된 기표
• 완전히 붙잡히지 않기에 욕망은 반복되고 갱신됨
3. 욕망의 구조와 판타스마 ― “훔치기새기기환원하기”의 서사
이 글의 동선은 분명하다. 훔치기 새기기 환원하기.
이 순환은 우연한 감정 흐름이 아니라, 라캉이 말한 **판타스마(환상)**의 작동 방식과 닮아 있다. 환상은 주체가 욕망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내적 시나리오’다. 다시 말해, 내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사랑의 각본.
그 각본은 이런 형태로 드러난다. “내가 네 취향을 재현하면, 너는 나를 욕망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모방”이 아니라 재현을 통한 자리 만들기다. 나는 그의 취향을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 그것을 “내 것으로 빚어” 다시 내놓음으로써 타자의 시선 속에서 욕망받는 자리를 구축하려 한다.
중요한 건 이 각본이 거짓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이 각본이 나를 살게 한다는 사실이다. 판타스마는 주체를 속이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주체가 붕괴하지 않도록 버티게 해주는 구조다. 그러므로 윤리는 이 각본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그 각본을 ‘가로지르는’ 경험(환상의 횡단)**을 통해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새로 묻게 만드는 데 있다.
• 판타스마 구조: 주체(S) 작은 대상 a
• “재현하면 욕망받는다”라는 서사가 작동
• 단순 모방이 아니라 욕망받는 자리의 구축이 핵심
4. 욕망의 윤리 ― 내 욕망을 타자에게 전부 양보하지 않기
라캉의 윤리는 도덕이 아니라, 욕망에 대한 태도다. 요지는 냉정하다.
내 욕망을 타자의 욕망에 완전히 종속시키지 말 것.
취향을 훔쳐서 돌려주는 행위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어느 순간 나는 그가 원하는 것을 더 잘 맞추기 위해, 나를계속 수정하게 된다. 사랑이 아니라 봉사가 된다.
환원은 선물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나를 봐달라’는 상징적 빚이 되어 타자를 묶는다—그리고 그 순간, 사랑은 관계가 아니라 계약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순환이 전부 함정만은 아니다. “내 것으로 빚어진 취향”은 단순한 굴복이 아니라, 내 욕망이 개입한 창조의 흔적이 될 수도 있다. 핵심은 여기다. 돌려주는 행위 안에서도, 나는 나의 욕망의 몫을 지킬 수 있는가.
• 위험: 타자의 욕망에 봉사하는 구조로 미끄러질 수 있음
• 기회: “내 것으로 빚어진 취향”은 내 욕망이 개입한 창조일 수 있음
• 핵심: 환원 속에서도 내 욕망의 자리를 지킬 수 있나
5. RSI 구조 ― 상상/상징/실재의 세 층위로 읽기
이 글을 **RSI(상상–상징–실재)**로 펼치면, 취향의 욕망이왜 그렇게 생생한지 보인다.
먼저 상상계에서는 동일시가 일어난다. “저렇게 되고 싶다.”
나는 타자를 닮고 싶어지고, 닮는 만큼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아진다.
상징계에서는 코드가 작동한다. 취향은 문화적 문법이다. 나는 훔친 취향을 내 안에서 다시 조합하고, 말투·이미지·선택의 방식까지 엮어 새로운 차이를 만든다. “내 것으로 빚어진 취향”이 여기서 탄생한다.
마지막으로 실재계가 남긴다. 완벽히 합쳐지지 않는 틈. 그 틈 때문에 욕망은 끝나지 않는다. 환원은 완결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알고 싶음” “더 닿고 싶음”을 생산한다. 이 부족이 욕망을 살아 있게 한다.
그래서 내가 ‘취향’을 훔치는 순간은, 내가 나를 버리는 순간이 아니라 나의 결핍이 가장 또렷해지는 순간이다. 나는 너에게 닿기 위해 너의 언어를 배우지만, 끝내 닿지 못하는 그 틈에서—비로소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는지가 드러난다.
• 상상계: 동일시(훔치고 싶음)
• 상징계: 코드로 재조합(내 것으로 빚기)
• 실재계: 합쳐지지 않는 틈(환원 이후에도 남는 결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