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02 지라드_모방의 불

너를 닮는 순간, 너를 잃는 두려움

by soominC

<철학적 고찰 Series 1_E01 – Prelude>


매력적인 사람을 볼 때면

그의 취향을 몰래 훔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훔친 그 매력을 내 안에 새기고,

그로써 내 것으로 빚어진 그 취향을

다시 그에게 환원하고 싶다.




그러나 지라드의 눈으로 보면 이 욕망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나는 ‘취향’을 욕망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취향을 욕망하게 만든 모델(model)**을 욕망한다. 욕망은 직선이 아니라 삼각형이다. 나(S)와 대상(O) 사이에는 언제나 누군가(M)가 끼어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사랑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내가 욕망을 배워오는 스승이자 경쟁자가 된다.



1. 모방욕망(삼각형) ― 욕망은 언제나 ‘누군가를 통해’ 온다


지라드에게 욕망은 자발적이지 않다. 우리는 스스로 원한다고 믿지만, 대개는 누군가가 원하기 때문에 원한다. 나는 취향을 발견한 게 아니라, 누군가를 통해 전염된다. 그래서 “그의 취향을 훔치고 싶다”는 말은 사실 이런 고백이 된다.

“나는 너를 통해 욕망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 삼각형은 관계를 빠르게 뜨겁게 만든다.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친밀감을 만든다. 하지만 지라드는 바로 여기서 경고한다. 친밀감은 곧바로 경쟁으로 접힌다. 내가 그를 닮을수록, 나는 그와 더 비슷해지고, 비슷해질수록 나는 그와 더 비교 가능해진다. 모방은 사랑을 시작시키지만, 동시에 라이벌을 생산한다.


• 욕망은 나->대상이 아니라, 나->모델->대상의 구조

• ‘그’는 연인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욕망의 모델

• 닮음은 친밀함을 만들고, 동시에 경쟁의 조건을 만든다




2. 모델의 두 얼굴 ― 숭배와 질투 사이의 미끄러짐


모방은 본래 존경에서 출발한다. 나는 그가 가진 감각을 경탄하고, 그가 고른 세계를 부러워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취향을 ‘훔치며’ 가까워지려 한다. 그러나 모방이 성공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가 부러웠던 만큼, 그는 곧 넘어야 할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지라드는 이 상태를 ‘모델의 장애물화’라고 읽는다. 모델은 내게 길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길을 막는 존재가 된다. 나는 그의 인정을 받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의 우월함을 견디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사랑은 종종 기묘한 양면을 갖는다.

**“너 때문에 내가 욕망한다.”**와 **“너 때문에 내가 불행하다.”**가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


• 모델은 욕망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욕망의 장애물이 됨

• 가까워질수록 더 비교 가능해지고, 비교는 질투를 낳음

• 숭배와 질투는 서로 반대가 아니라, 같은 모방의 두 표정



3. 모방의 불 ― 닮고 싶음이 불붙이는 것들


이 글의 동선(훔치기 새기기 환원하기)은 지라드적으로 보면욕망을 ‘안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을 더 키우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환원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은근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의 취향을 내 방식으로 재현했어.”

이 문장은 친밀한 고백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이런 뜻을 품는다.

“나도 너처럼 욕망할 수 있어.”


그 순간 삼각형은 더 팽팽해진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고 싶어모방하지만, 모방이 깊어질수록 나는 그와 같은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사람이 된다. 모방은 사랑을 빠르게 만들지만, 그만큼 쉽게 불타오른다. 지라드가 말한 ‘불’은 바로 이 지점—닮음이 빚어내는 뜨거움과 위험—이다.


• 환원은 선물 같지만, 때로 은밀한 도전이 됨

• “나도 너처럼”이라는 선언이 삼각형을 팽팽하게 함

• 모방은 친밀함을 만들고, 동시에 불(질투/경쟁)을 점화함




4. 희소성의 환상 ― ‘대상’이 아니라 ‘인정’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마음


지라드의 세계에서 인간이 끝내 경쟁하는 것은 종종 대상이 아니다. 사실은 인정이다. 사랑의 대상은 하나일 수도 있고, 취향의 세계는 무한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이상하게도 늘 “부족하다”고 느낀다. 지라드가 지목한 것은 바로 이 심리적 장치다.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순간, 타자의 시선이가진 가치를 ‘희소’한 것으로 느끼게 된다. 그가 가진 빛은 한정되어 있고, 그 빛을 받는 자리는 제한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모방은 쉽게 불안을 동반한다. 나는 그를 닮으면서도,동시에 그를 잃을까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나를 더열심히 닮게 만들기도 한다. 이 순환은 사랑을 강하게 보이게하지만, 사실은 사랑을 불안의 기술로 바꿀 위험이 있다.


• 경쟁의 진짜 대상은 종종 ‘대상’이 아니라 타자의 인정

• 타자의 시선은 희소한 자원처럼 느껴지고, 불안을 키움

• 불안은 더 큰 모방을 낳고, 모방은 더 큰 비교를 낳음



5. 출구 ― 모방을 부정하지 않고, 모방을 ‘내 선택’으로 바꾸기


지라드는 모방 자체를 없앨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인간은애초에 모방하는 존재다. 중요한 건 모방을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모방이 어디서 불이 붙는지 자각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정말 이 취향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이 취향을 사랑하는 ‘너’를 사랑하는가. 혹은 더 냉정하게, 너의 욕망을 빌려 내 결핍을 달래고 있는가.


모방을 자각하는 순간, 불은 조금 낮아진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 있다. 모방을 ‘복제’로 끝내지 않고, 내삶의 리듬으로 다시 편곡하는 것. 지라드 이후의 성숙은, 모델을 없애는 게 아니라 모델과의 관계를 바꾸는 데 있다. 닮되, 경쟁하지 않는 방식. 그가 아닌, 나의 욕망으로 넘어오는 방식.


• 모방은 인간의 조건: 없앨 것이 아니라 읽어낼 것

• 질투의 불은 자각에서 약해지고, 선택의 여지가 생김

• 모방을 편곡해 ‘내 욕망’으로 전환하는 것이 출구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