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시간
우리는 삶을 결과로 측정하려 한다. 무엇을 이루었는가, 무엇을 얻었는가.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경험의 결실이 아니라 경험 자체이다. 결과에 매몰되는 순간 우리는 미래의 보상만을 바라보며 현재를 저당 잡히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의 행위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때, 비로소 삶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 빛나기 시작한다.
우리가 느끼는 삶의 길이는 물리적인 시계의 흐름과 다르다. 시간은 객관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경험의 양과 비례한다. 공항에서 보낸 두 시간은 연인과 보낸 두 시간과 다르다. 같은 두 시간이 어떤 때는 늘어지고 어떤 때는 압축된다. 이것은 상대성이 아니라 체험적 현실이다. 시간은 경험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경험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능동적인 것과 수동적인 경험 몰입. 둘은 대립하지 않는다. 능동성은 세계를 향한 개방이고, 수동성은 세계에 대한 응답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 아니라 투과성이다. 나를 경험하기—이것은 나를 대상화하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 세계를 느끼는 것이다. 나는 경험의 주체인 동시에 경험의 통로다.
시간을 잊게 하는 경험은 역설적으로 몰입이다. 우리는 시간을 의식할 때 시간 밖에 있고, 시간을 잊을 때 시간 안에 있다. 글을 쓰다가, 그림을 그리다가, 누군가를 사랑하다가 문득 깨어나면 시간이 증발해 있다. 이 증발이야말로 시간을 가장 진하게 산 증거다. 시간은 측정될 때가 아니라 체험될 때 실재한다.
결국 삶은 성취의 합이 아니라 경험의 밀도다. 많이 이룬 삶과 깊이 산 삶은 다르다. 우리는 이룬 것으로 삶을 평가하지만, 실제로 우리를 채우는 것은 경험의 농도이다. 그 농도는 결과로 환원되지 않는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성취의 목록이 아니라, 순간을 통과한 나의 감각이다.
오늘도 나는 커피를 마시고, 문장을 고르고, 차가운 공기의 냄새를 맡으며 누군가의 눈빛을 마주치고 발그레 웃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기꺼이 나의 시간을 잃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