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작품제목 <미완성>

눈부신 첫날의 기록

by soominC

우리에게 오늘보다 젊은 날은 없다. 이 말은 때로 서글픈 선고처럼 들린다. 마치 모든 것이 내리막길이라는, 상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다르게 읽는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면, 오늘이야말로 가능성으로 가득한 날이다. 아직 쓰이지 않은 페이지, 아직 걷지 않은 길,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 모든 가공되지 않은 가능성은 과거가 아닌 바로 지금, 여기 에 있다.


들뢰즈는 시간을 ‘생성(becoming)’으로 이해했다. 그에게 시간은 단순히 과거 위에 현재가 쌓이는 축적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역동적인 흐름이다. 어제의 경험이 오늘의 나를 빚어낸 것은 분명하지만, 오늘의 내가 어제의 결과물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나는 여전히 미완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희망의 근거가 된다.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완성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가 될 수 있는 존재다.


이러한 ‘생성’의 감각은 자연스럽게 푸코가 말한 ‘자기 배려(souci de soi)’로 이어진다. 내가 매 순간 변해가는 존재라면, 그 변화의 펜을 쥔 이는 결국 나 자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이라고 후회하며 과거를 돌아본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생성되는 나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지금의 삶을 다르게 빚어내는 실천이다. 푸코의 자기 배려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정성스럽게 가꾸는 '존재의 기술'이다. 어제의 나에 갇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기 배려의 시작이다.


우리에게 오늘보다 젊은 날은 없다. 그러므로 오늘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누군가는 오늘이 사랑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인 것처럼 절실하게 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첫날이다. 매일이 첫날이다. 미완의 우리는 매일 아침 다시 쓰인다. 어제의 실패가 오늘의 나를 결정짓지 못하며, 어제의 슬픔이 오늘의 태양을 가로막을 수도 없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다르게 태어난다. 오늘이라는 눈부신 첫 페이지 위에, 나는 다시 새로운 문장을 적어 내려간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