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주는 착각

by soominC

봄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거대한 착각이다. 하지만 이 착각은 꽤 쓸모가 있다.

지독한 겨울의 공기가 목덜미를 파고들고 어깨를 잔뜩 치켜올리게 만들 때, 우리는 생존을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의 시간은 오직 목적지를 향해서만 직선으로 흘렀다.


그러다 어느 날, 세상에 생동감이라는 숨결이 조용히 스며든다. 사람들은 그 부드러운 유혹에 기꺼이 응하듯 하나둘 걸음을 늦춘다. 딱히 대단한 이유도 없이 가던 길을 멈추고, 멍하니 하늘을 보거나 이름 모를 길가의 풀을 관찰한다. 효율과 속도가 지배하던 일상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다.


우리는 그때 비로소 계절이 바뀌었음을 깨닫는다. 눈앞에 핀 꽃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뒷모습에서 긴장이 빠져나가는 것을 볼 때, 그리고 나의 걸음이 아무런 보상 없이 느려질 때 봄은 실재한다.


결국 봄이란, 우리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다정한 착각이다. 그 착각이 주는 온기 덕분에 우리는 다시 한번 봄 쪽으로 몸을 돌리기로 한다. 어차피 삶은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이런 아름다운 오해들을 기꺼이 품으며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