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파리, 그 또한 어느 누군가의 일상 - 1
#GRWM
오전 7시
탁자 위 휴대폰이 울린다.
소매치기 당해도 괜찮을, 오래된 LG G6의 알람이다.
분홍색 세트 파자마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던 새하얀 순면 이불이 스르륵 내려간다. 모교 행사 기념 수건이 깔린 베개 위에 걸쳐 있던 긴 머리가 일어난다.
한 여자가 반쯤 뜬 눈을 비비고 있다.
기지개를 쭈욱 켜니, 하품과 함께 어깨에서 우두둑. 어딘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난다.
여자는 책상 의자를 방 중앙으로 질질 끌고 온 뒤, 의자에 올라선다. 단 하나의 위로 난 창문을 열고, 하루가 시작된다. 딩딩딩딩 배경음악도 시작된다.
[유료 광고 포함]
어깨 소리가 놀랍지 않은 여자는 유산균 한 포를 꺼내 입에 털어 넣고 물 한 잔을 마신다.
'본 영상은 파리제약으로부터 제품 지급 및 원고료를 지급받았습니다.'
여자는 부스스한 머리로 공용 주방에 간다.
허락된 시간은 딱 5분,
오른손으로 익숙하게 밑의 서랍에서 오트밀과 Nestle Fitness 시리얼 오리지널 맛을 꺼낸다.
왼 손은 옆에 있던 다크 초콜릿 맛을 뒤 편으로 밀어 넣고 있다.
'아침에는 오트밀과 시리얼을 섞어서 많이 먹어요. 이 시리얼은 튀기지 않고 구워내서 건강에 좋을 것 같아 샀어요. 게다가 초록색 bio 인증 마크 섹션에서 사 왔답니다:)'
오트밀과 시리얼을 한 움큼씩 잡아 파란 볼에 넣고 우유를 따른 뒤 방으로 다시 간다.
아침을 가지고 온 여자는 양반다리를 한 채로 하얀 벽을 보며 우물우물 먹는다.
#breakfast
5분 정도 지났을까, 여자는 얼굴을 대충 씻어내러 화장실에 간다. <거울샷>
로션과 선크림을 잡히는 대로 바르고 몇 없는 옷들 사이에서 돌려 입기를 완성한다.
분홍색 백팩을 멘 여자는 다시 부엌으로 간다. 아까 오트밀과 건강한 오리지널 맛 사이에서 왠지 부끄러워 보이던 초콜릿 시리얼이 제 모습을 다시 드러낸다. 한 움큼 쥐어 입에 털어 넣은 뒤 짧지 않은 여정을 시작한다.
설국열차 같은 7호선의 끄트머리에서 오늘 여자는 운이 좋게도 자리를 잡았다.
'럭키! 게다가 역방향이 아니라 순방향 좌석이에요.'
모두가 책을 꺼내는 사이 3G가 안 터져서 휴대폰을 포기할 만도 하지만,
여자는 K-문화를 보이듯 휴대폰을 꺼내면서 브이로그를 편집하기 시작한다.
애매한 시간이 지나자 여자는 Jussieu에서 10호선으로 갈아탄다. 사람들 사이로 계단 하나의 틈도 허용되지 않는 광경이다. '신도림과 크게 다를 게 없죠?'
여자가 브이로그에 자막을 몇 개 달았을 즈음, 여자는 10호선 종점에 다다랐다. 7호선의 끝에서 10호선의 끝으로, 세상의 끝을 다닌 듯한 표정으로 내린 후, 다시 파워 워킹을 시작한다.
#네 개의 관문들
오전 8시 53분, 여자는 정문에 도착한다.
'아직 안심하기는 일러요. 문들이 남았거든요.'
"Bonjour"(*프랑스어 아침인사, 안녕)
무거운 회색 철문이 달칵 열린다.
열린 철문 사이로는 긴 유리통이 보인다.
'찰리의 유리 엘리베이터 축소판 같죠?'
버튼을 누르고 들어간 유리통 안에서 투명한 손길과 눈길로 몸은 적극적으로 훑어진다.
검사가 끝나 유리통은 다시 열렸고, 새로운 출입문으로 향한다.
자연스럽게 들어간 내부에서 출입증을 다시 찍는 시간 오전 8시 56분.
여자의 상사만이 와 있다.
"Buenos Días."(*스페인어 아침인사, 안녕)
저 편에서 부에노스 디아스가 메아리친다.
여자는 노트북을 켜고 이것저것 하기 시작한다. 이메일 확인과 간단한 리서치랄까.
오전 9시 30분, 사람들이 하나 둘 여유롭게 등장할 때 즈음,
메신저로 메시지 하나가 도착한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