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전남친들의 뒷담화
"그 애는 저를 신기하게 보곤 했어요.
평범할 것 그지없는 제 자신을 조금은 특별하게 만들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걔가 더 특별했어요. 고구마를 삶아 먹는다니요."
노천카페에 한 남자가 느긋한 걸음으로 들어오면서 아는 체를 했다. "좋은 아침. 일찍 오셨네요."
크루아상을 한 입 베어 문 뒤, 카페오레(Café au lait) *(드립 커피에 우유를 넣은 프랑스식 명칭의 커피)를 마시고 있던 파리는 이내 읽던 책을 덮었다.
"제가 일찍 왔다기보다는 그쪽이 늦으신 거죠."
"뭐... 그렇다고 치죠. 그나저나 그 애를 아신다고..?"
"알다마다요. 우린 사랑했던 걸요."
"사랑..? 그 애만이 알겠죠. 그 애는 제게 무척 특별하다고 했어요."
"하,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래도 그 사람은 저를 더 특별히 여겼을 거예요. 이 노천카페를 보고도 놀라 했죠."
"아. 그거요? 언제 당신을 잠시 만나고 와서는 얘기하더군요. 파리는 노천카페에서도 앞을 응시한 채 이야기한다고. 반면에 저는 서로를 바라본다고. 사람을 두고선 앞을 바라보는 게 말이 됩니까. 안 좋다는 뜻이었을 거예요."
"그건 당신 생각이고.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본다는 게 얼마나 낭만적인데요."라고 말한 파리의 말이 들렸을지는 모르겠다. 말을 듣기도 전에 바르셀은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 한 잔을 주문하러 갔으니까.
"Un Cortado." *(꼬르따도, 에스프레소 2샷에 우유를 적게 넣은 스페인식 커피)
꼬르따도를 한 모금 마시고선 바르셀은 입을 뗐다.
"자 이제 이야기해볼까요? 그 아이는 제가 가는 영화관을 보고 낭만적이라고 했어요. 스크린 속이 아니라, 실제 붉고 무게감 있는 커튼이 차라락 펴졌다가 거치는, 그런 감성 파리가 갖고 있나요?"
"그런 단순한 소품 얘기라니... 진정한 감성은 생활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 사람은 감탄하곤 했어요. 사람들이 지하철에 타면 모두 자연스럽게 휴대폰이 아닌 책을 꺼낸다고."라고 말하면서 파리는 자신이 읽고 있던 책 표지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뭐. 지하철 하면 또 들은 얘기가 있죠. 파리, 당신의 지하철은 여름에 창문을 연 채로 달린다고요. 특히 그 7호선은 설국열차 같다던데. 먼지 너무 나지 않나요?" 바르셀이 의기양양하게 던졌다.
파리도 지지는 않았다. "뭐. 특별하다고 하죠. 그 사람의 뇌리에 박힌 건 맞잖아요?"
"좋은 걸로 뇌리에 박히는 게 좋죠. 그 애는 저 보고 환경을 많이 아낀다고 했어요. 덩달아 환경 보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마트에서도 간단한 과일은 굳이 비닐봉지에 담지 않죠. 환경 운동도 많이 하고요." '이거엔 뭐라고 말 못하겠지.' 라는 표정의 바르셀이었다.
"당신이 아니라 베를린 이야기 아니에요? 그 사람과 친하게 지냈던? 베를린은 그 사람을 만나러 조금 힘들어도 기차나 버스로 움직이지, 대기오염이 많이 되는 비행기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 사람한테 베를린이 있는데 환경을 말할 수 있겠어요?"
계속 이어지는 신경전과 논박에 두 남자는 이내 말을 멈추었다.
그제야 그 아이의 눈이 떠올랐다.
그 아이가 찾아낸 자신의 특별함을
어느 누군가는 단점으로 지적할 수도,
다른 누군가는 비교를 할 수도 있음을,
자신의 특별함을 온전히 완성시켰던 것은 바로 그 눈이었음을 깨달았다.
"고구마, 그 애는 고구마를 그대로 삶아 먹었어요. 그런 여자는 처음이었죠.
어느 날 끼니로 고구마를 삶아 먹는다더군요. 10-10, 학원을 10시부터 10시까지 다녔다는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어요. 알잖아요. 여기 고구마는 맛이 없어서 가끔 요리에 넣어먹기만 하지. 단독으로 먹지 않는다는 거.
어느 날 그 애가 맛있는 고구마를 찾아냈다면서 삶아줬어요."
파리와 바르셀이 탄식하듯 같이 내뱉었다.
"달고 부드러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