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바르셀로나에 취하는 주ㅇ
술이 물보다 싸면?
아니 물에 값을 지불해야 한다면?
물 사 먹는 게 아까워서 술을 마셨다. 바르셀로나에서 보통 술은 2유로부터 시작한다. 병맥주가 아닌 생맥주가. 물은 3~4유로 사이다. 아니 물의 가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물이 한국처럼 무료가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아까워서 먹기 시작한 술은 무료함을 지웠고, 어느새 술의 유료함을 즐기고 있었다. 바르술로나는 주 7일제로 돌아간다.
월요일엔 끌라라와 만난다. 처음 끌라라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보통 메뉴판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만나기만 어렵지, 한 번 만나고 나면 끌라라는 거기에 있다. 거기가 맥주를 파는 곳이라면 어디든. 너무나도 당연하게 메뉴판에 없는 "Una Caña de Clara"를 외친다. 이 상큼한 레몬맛 맥주는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맛으로 월요일을 깨운다.
느긋한 평일은 느긋한 주말보다 백 번 더 특별하다. 느지막하게 햇빛에 눈을 떠 천천히 걸어간 근처 식당의 테라스에 앉는다. 요일마다, 셰프의 마음마다 다른 오늘의 메뉴판을 본다. 전채 요리로는 파스타를, 본식으로는 생선과 감자튀김을, 후식으로는 과일을 택한다. 이 모든 코스에 어울리는 술로는 띤또 데 베라노를 고른다. 딱 여름 아침에 레몬 탄산 거품이 레드와인을 바다 삼아 동동 떠 있는 기분이다. 반쯤 취한 채 피카소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감상한다.
학교를 마치고, 일을 끝내고, 모두 핀초 거리에 모였다. 텁텁한 평일을 털어 넘기기에는 깔끔한 생맥주가 딱이다. 특히 오늘은 여러 가게를 순방하면서 갖가지의 핀초를 먹어야 하기에 가볍게 넘어가는 라거 맥주인 에스뜨레야 담이 필요하다. (물론 집 옆에 에스뜨레야 담 맥주 공장이 있었기 때문인 것도 맞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가 반갑다. 그 친구의 가방에 늘상 있는 와인 한 병. 오늘은 가방에서 꺼내 보니 리오하 와인이다. 마트에만 가도 수십 종류의 와인에 혼미해진다면, 실패하고 싶지 않을 때는 Rioja가 적혀 있는지부터 보라고 했다. 리오하 와인으로 병나발을 불면 오크통에서 숙성된 적포도 템프라니요가 알알히 학교 들판으로 굴러 떨어진다.
"깔리모쵸는 스페인의 수치야." 마드리드에서 온 알레한드로는 열심히 콜라를 와인에 부었다. 수치스러워하기엔 너무나도 정성껏 만든 깔리모쵸는 딱 금요일의 파티와 잘 어울린다. 누군가는 와인을 망쳤다고 할 수도 있지만, 불량식품은 끊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스페인 아빠의 식당으로 향한다. 기다렸다는 듯 까바는 얼음통에서 이미 대기하고 있다. 스페인 아빠는 갓 썬 야들야들한 하몽을 입에 넣기 전, 까바를 한 모금하면 카탈루냐의 온화한 기후에서 따끈하게 익은 청포도가 청량하게 입맛을 돋운다. 야들야들한 하몽 한 입에 까바 한 모금, 가벼운 까바의 목 넘김에 하몽의 지방이 녹으면서 감칠맛이 나고. 하몽의 도토리 향과 섞이는 까바의 싱그러운 청포도. 까바 하몽, 하몽 까바. 끊을 수 없는 고리.
잠 기운을 가시게 하는 최고의 방법은 술기운으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따끈한 주말 열 두 시, 마을 광장에 햇살이 모이면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앉는다. 초록 올리브를 하나 두 개씩 먹다가 간단하게 정어리 절임을 시킨다. 거기에는 당연히 베르뭇. 허브, 캐모마일 등의 약재가 향긋하게 올라오면서도 묵직한 와인에 몸은 일어날 준비를 한다. 레드 베르뭇을 털어 넣고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간다.
주 7일제여도 좋은 건 바르셀로나, 바르술로나뿐이다. 그렇게 바르셀로나에 취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