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대학 입시 준비할 때를 떠올리면 부끄러운 마음이 크다. 누구보다 고등학교를 즐겁게 다녔고, 내가 졸업한 학교가 있는 혜화가 마음의 고향일 만큼 학교 다닐 때가 좋았고, 여전히 고등학교 친구들이 가장 가까운 친구다. 그렇지만 공부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
자습도 째고, 밤에 기숙사 탈출하고, 배달 음식도 몰래 시켜먹고, 연애도 하고 학교에서 하지 말라고 하는 건 다 하면서 즐겼는데 공부는 진득하게 해보지 않았다. 그 아쉬움에 수능을 한 번 더 봤다. 두 번째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원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고 처음 합격했던 학교로 돌아갔다. 수능과 입시 결과 원인을 오로지 한 군데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내가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이제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눈 감고도 돌아다닐 혜화동 골목길
제목에서 서울대를 언급한 이유는 한국의 대학 입시에서 "서울대"가 최고의 성과 중 하나이기 때문에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학교는 대학이 인생의 전부인 듯 가르쳤지만 실제 현실은 학벌 말고도 너무나도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대학도, 회사도 그저 내가 잠깐 몸담고 있는 곳일 뿐 내 자아를 그런 조직의 네임 밸유와 동일시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1. 하루에 충실하지 못했다
살을 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방법론들이 있지만 핵심은 " (소모한 칼로리)-(섭취한 칼로리)>0 "이다. 그럼 한 달 안에 5킬로를 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찬가지다. 한 달 내내 저 상태를 유지하면 된다. 날마다 먹는 칼로리보다 쓰는 칼로리가 많으면 살이 빠질 것이다. 5킬로를 빼기 위해서 매일 체중계에 올라가 왜 이렇게 안 빠지나 걱정하고, 어떻게 하면 살이 더 잘 빠질지 인터넷 찾아보고 이럴 시간에 운동하고 먹는 거 신경 쓰고 하루의 성공을 만들어 나가면 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영어를 잘하고 싶으면 오늘 해야 할 분량에 집중하면서 매일 작은 성취를 쌓아 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영어가 한 층 성장해있다.
학창 시절 가장 취약했던 과목은 수학이었다. 내가 수학적 재능이 없는 사람인가 생각했지만 원인은 매일 성취를 이뤄나가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수학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매일 본인의 계획을 달성하는 것이다. 개념 공부하고, 문제 풀고, 틀린 것 생각하고 모르는 건 계속 반복하다 보면 잘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당장 성적이 안 나오는 것에 집착하면서 매일 해야 할 일을 하는 기본에 충실하지 않았다. 어떤 인강이 더 좋을지, 어떤 문제집이 더 나을지, 어떤 학원을 가야 할지, 내 공부법은 맞는지 고민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성적을 올리는 것과 연관성이 크지 않은 부분들에 집중했다. 하루하루 쌓아 나갔어야 할 블록은 안 쌓고 블록 종류랑 색깔만 고르느라 시간이 다 갔다.
2. 전략이 없었다
1번과 연결되는 내용이다. 하루에 충실하지 못했던 이유는 전략이 없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꿈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없었기 때문에 하루에 충실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시에서 수학이 발목을 잡았다면, 수시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내신이었다. 하루에 충실하지 못하고 노느라 바빴던 것도 있지만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었다. 주말에는 기숙사를 나와 집에서 지냈는데 매주 공부할 책을 가져갔다. 그런데 내가 뭘 공부해야 하는지, 어떤 과목의 어떤 내용이 부족한지 파악이 안 되어있으니 막상 집에 가져갈 짐 쌀 때가 되면 고민하다가 책을 전부 캐리어에 담았다. 학교나 가까웠으면 모르겠지만 캐리어를 이고 지고 4호선에서 2호선 환승도 하고 마을버스도 타야 했다. 그럼 집에 가선 그 책을 다 봤을까? 전혀 아니다. 잔뜩 가져온 책을 보면서 무슨 공부 하지 고민하다 결국 그대로 다시 학교에 가져갔다.
학생으로서 본인의 약점조차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은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인생에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만 고등학생이고, 또 나름 공부 좀 한다고 하고 다녔으면서 실상은 저랬다는 게 지금 생각하니 황당하다.
3. 결과에 집착했다
전략도 없고, 계획도 없고, 매일 실천도 없으니 공부를 손에서 아예 놓아 버렸을까? 그건 아니었다. 목표(라고 해야 할지 헛된 꿈이라고 해야 할지)는 있었으니 현실과 간극이 동기 부여보다는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결과에 더 집착하고 불안해졌다. 수학 문제를 한 개라도 더 복습해야 할 시간에 온 책상과 책마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14학번"을 써붙여놨다. 친구들과 자습 시간에 이리저리 몰려다니면 "대학 어떻게 가지" 모여서 한탄했다. (결론은 대부분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그냥 놀자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진인사 대천명"을 좌우명으로 꼽았는데 그때 나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결과에 초연할 수가 있지 생각했다. 그때 나에게 목표는 어떻게든 (운으로라도) 이뤄져야 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뉴욕 가는 14시간 비행 내내 언제 도착해, 언제 도착해 쪼으는 셈이다. 아니지 비행기는 앉아 있으면 태워라도 주지만 이건 뭐 그냥 비행기 표도 안 사고 뉴욕 언제 가냐고 징징대는 것이다.
나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인내가 부족했다.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그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의 위치와 목표와의 간극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 간극을 극복하기 위한 핵심을 꾸준히 매일 묵묵하게 연마했어야 했는데 내 목표에 대한 책임이 없었다. 이 사실을 10년이 지나서야 몸소 깨닫고 반성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학벌 지상 주의자가 아니다. 이 글 역시 하 그때 그렇게 서울대 갔었어야 했는데 이런 후회의 글이 아니다. 10년 전 철없었던 시절을 돌아보며 그동안 성장한 내 모습을 담은 글이다.
학교 보다 학교에서 보낸 그 시간이 좋다
열여덟의 부족함을 스물여덟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 늦은 감은 있지만 앞으로 내가 이루고 싶은 바에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에 큰 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공부와 입시라는 키워드로 이런 깨달음을 얻었지만, 앞으로 살면서 이루고자 하는 모든 것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0년 만에 쓰는 반성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