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욕구가 채워지지 않거나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서운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가득 채워버린다.
서운한 마음이 가득 채워지는 순간
우선은 화가 난다
그리고 짜증이 난다
그리고 화가 짜증이 동반되면서 그동안 내가 잘해주었던 모든 것들을 다시는 잘해주지 말자라는 치사한 생각으로도 마음을 바꾸어버린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 기대의 형태로
상대방이 나에게 그런 말들을 해주지 않거나
상대방이 나에게 마음을 맞추어주지 않거나
상대방이 나에게 행동들을 맞추어진 않으면
일단은 서운하다
그리고 서운한 감정에 뒤따르는 것은 언제나 화가 동시에 같이 동반되는 내면에서 걷잡을 수 없는 화산 폭발이 일어난다.
그래서 흔히 이 서운한 마음들까지도 자제력이 있게 잘 관리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과히 존경할 만한 안정적인 행동과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이다.
아니 때로는 그들에게 감정이라는 것은 존재할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서운한 감정들이 물밀듯이 밀려올 때에
나의 생각들을 다시 정리하게 되면 서운함이 아닌 나의 또 다른 내면의 성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서운한 마음이 물론 든다.
그러나 내가 서운하다고 다른 사람을 바꾸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니 내가 서운하다면 내가 나를 스스로 다른 방법으로 그 서운한 마음에서 벗어나는 길이 더 빠르다
서운함이란 결국엔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내 기대치대로 상대방에게 바라기 때문에 나오는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 같이 들어가 교차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마음이고 욕심이다.
그 서운함에 못 이겨서 상대방을 미워하고 비난하고 화를 내게 된다면
결국엔 나와 상대방의 관계는 어그러지고 상처를 주게 되고 상처를 받게 되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리게 된다.
서운함 때문에 말을 한 것이었는데 또 다른 서운함과 마주하게 될 수 있다.
서운함이라는 감정이 무엇에서 출발을 하였는지 다시 한번 나 스스로 내 마음의 감정을 들여다본 후에
그 서운함의 색깔을 정확이 알았을 때 상대방에게 신중하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 드는 것이 가장 현명할 수 있다.
나의 서운함이 상대방과 나의 관계 선상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해를 하기 위함인지
나의 서운함이 나의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의 기대치에서 발생하는 마음인지
나의 서운함이 상대방과 나를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불필요한 존재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는지
나의 서운함이 나와 상대방에게 더 불편한 관계로 발전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돌이켜 볼 수 있는
무작정 " 나 서운해" 이렇게 말해버리면 상대방은 움찔한다
나와 다른 사람들은 항상 다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은 같지 않다.
그래서 내가 서운해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의 반응들은 천차만별로 받아들여진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많이 힘든 요소 중에
하나는 내가 서운함을 갖는 것이고 상대방이 나에게 서운함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가
내가 서운함을 갖게 하는 것인지
상대방이 나에게 서운함을 갖게 하는 것인지에 대하 우리 모두는 언제나 게으르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하며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운함은 서로가 가질 수 있는 공존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감정이다.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욕 구안에 서운함의 감정은 절대적인 피할 수 없는 감정의 요소이다.
그러나 이 서운함의 정체성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는 우리 모두는 분별할 수 있으며
그 분별 속에서 상대방을 바꾸기보다는 내가 먼저 다른 답을 찾으며 바꾸며 상대방의 반응들을 확인해가면서 서로가 추후에 서운함에 대한 본질을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상의를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 여긴다.
서운함이 들 때는
내가 박자를 한 박자가 아닌 세 박자를 늦추면서 내 마음을 살피고 내 마음을 추스른 후에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을 전달한다면 그 마음을 듣는 상대방도 그 진위를 가볍게 여기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