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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숨 Nov 23. 2023

공무원 시험에 붙었지만 관둔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K-POP 기획사 채용 면접을 봤다

학교 졸업 후 스타트업 세계에 호기심이 한창 많았던 시기, 관련 기관의 도움을 얻어 한 스타트업에서 3개월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나를 포함해 총 5명이 일하는 곳이었고 서로 나이도 비슷해 아무런 격식도 갖출 필요없는 편안한 분위기였다.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는 사람도 없어 원하면 얼마든지 일을 벌리고 해낼 수 있는 환경. 덕분에 경이로운 눈빛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3개월이 지나고 번아웃 비슷한 것에 빠졌던 것 같다.


'자유롭고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일텐데 대체 왜?'라고 묻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나를 집어삼켰다. 아무도 뭔가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기에 스스로 방향을 잡고 일을 이끌어가야 했다. 경력이라곤 마케팅 인턴 2개월이 전부이던 내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먼저 제시하고 이끌어야하는 환경은 어떻게 발걸음을 떼야할지도 모르는 갓난아이에게 갑자기 뛰어보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았다. 당시 중압감과 책임감에 온몸이 짓눌린 채 3개월을 겨우 보냈고 완전히 소진된 나는 일에 대한 회의감에 휩싸였다.


'일이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까지 힘든 거지?'

'이렇게 힘들기 위해서 일을 하는 건가? 너무 끔찍해'

'난 많은 돈을 바라지도 않아. 그냥 퇴근하고 일 생각만 안 했으면 좋겠어'

'그래, 그럼 정해진 시간만 일하고 퇴근하는 공무원이 되자'

(그때만 해도 공무원은 그런 줄 알았다.)



당시 내게 일은 곧 괴로움이었고 끊임없이 커리어 설계, 커리어 관리의 중요성을 외치던 취업 시장에 단단히 질려있었다. '커리어가 뭐라고, 그게 도대체 뭣이 중헌디'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공무원만 되면 이 모든 고민과 괴로움이 사라질 것이며 커리어 시장에서 무한정 자유로울 것 같았다.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계속 일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럼 일에 대한 고민도 필요 없을테니까. 그렇게 곧장 일반 행정직 공무원 준비에 돌입했다.






여느 공무원 수험생들처럼 인터넷 강의 프리패스 수강권을 끊고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독서실에 꼼짝 않고 앉아 공부만 하는 수험생 생활을 시작했다. 수능을 준비할 때도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어쩌면 그때보다 훨씬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시험 막바지에는 엑셀에 1시간 단위 일정표를 짜 매일같이 지켰다.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은 없다는 절박함과 내 손으로 직접 내린 결정이란 사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공부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됐다.


정말 다행히도, 공부를 시작한 지 몇 개월이 지나 2번째로 본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일반 행정직 공무원은 필기시험 이후 2차 면접까지 통과해야 최종 합격 목걸이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면접이 대개 형식적이고 사실상 필기 점수로 순위를 매겨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합격시킨다는 게 정설처럼 돌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내 점수는 합격선 턱걸이였고 면접 준비를 하면서도 '떨어질 것 같은데, 간당간당한데' 싶은 마음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면접 결과는 역시 불합격. 당시 같이 면접을 준비한 사람들은 모두 최종 합격 메달을 받았다. 혼자만 떨어졌다는 사실이 씁쓸했지만 의외로 생각보다 슬프지 않았다. 사람들이 물었다.


'공무원 시험 다시 준비할 거야?

근데 넌 조금만 더 하면 무조건 될 거야.

필기도 몇 개월 만에 합격했잖아!'


그런데 이상하게도 합격선이 눈 앞에 다가온 것 같은데 이 의미없는 공부를 전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 방 안에 고립돼 아무 성과도 나지 않는 공부를 계속하는 것도 싫었지만 공무원이 된다는 사실이 문득 족쇄처럼 느껴졌다.


요즘에야 공무원을 면직하고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아졌지만 당시엔 한번 공무원이 되면 그만두고 싶어도 관두기가 무척 어려워 보였다. 일반 취업 시장에선 공무원 경력을 제대로 쳐주지 않을 확률이 높아서다. 혹여라도 공무원을 관두고 취업 시장에 나온다면 내세울 경력은 없고 나이만 늘어난 상태로 일반 신입사원 친구들과 경쟁해야 할 텐데 말이다.


'지금이야 공무원이 되고 싶겠지만

만약에라도 공무원 생활이 맞지 않아 그만두고 싶다면?

쉽게 그만둘 수 있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을까?'


평생직장이라 불리는 공무원의 안정성이 감옥처럼 다가온 순간. 몇 십 년의 미래가 한순간의 선택으로 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한번 건너면 다시는 돌아오기 어려운 강을 건너는 게 아닐까 싶어 무섭기도 했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나서야 정확히 깨달았지만 그때도 어렴풋이 알긴 알았던 것 같다. 공무원은 진짜 내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순간의 도피처였다는 걸. 3개월 스타트업 생활을 마치고 마음이 완전히 지쳐버렸고 당장의 괴로움을 없애고 싶은 마음으로 저질러버린 행동의 결과물이었다는 것.


'그래, 다시 취업 준비를 하자.

얼마나 걸릴지,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지만

뭐든 공무원이 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






그렇게 몇 개월간의 공무원 수험 생활은 막을 내렸다. 조금의 미련도 없이 그간 공부했던 책더미와 필기노트를 모두 버렸다. 설령 취업이 안 돼도 다시는 수험생 생활로 돌아가지 않으리.


이제는 공부할 때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이력서를 쓰고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수십 개 기업에 지원서를 넣고 떨어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지금이야 다행으로 생각하지만 솔직히 될 줄 알았던 기업의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많이 쓰라렸지만 오히려 가만히 앉아 공부하는 것보다 직접 부딪히며 얻는 배움이 훨씬 즐겁고 소중했다.


가고 싶은 기업, 아닌 기업을 가릴 처지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내 경험과 핏이 맞는 직무다 싶으면 무조건 지원했다. 그러다 우연히 K-POP 기획사의 채용공고를 발견했다. 'K-POP? 중학교 시절 동방신기 좋아한 거 이후론 K-POP과 연을 끊고 살아온 사람인데, 될까?' 그래도 일단 지원했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서류를 통과하고 운 좋게 면접까지 봤다.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제발 이곳이라도 나를 뽑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면접이 끝나고 며칠 지나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입사는 언제쯤 하실 수 있어요?

공무원 시험을 관두고 다시 세간에 나와 트위터가 뭔지도 모르던 한 인간의 K-POP 기획사 입문기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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