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틀로프 사건
* 웹 매거진 LiiS에 기고 중인 아티클입니다. 원문은 LiiS 웹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1959년 겨울, 러시아 우랄산맥 한가운데. ‘죽음의 산(콜라트 시아흘)’이라 불린 능선 아래에 텐트 하나가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뼈대는 멀쩡했지만 천은 이상하게도 안쪽에서부터 찢겨져 있었고 텐트에서 1.5km 떨어진 숲과 계곡 곳곳에 등산대 9명의 흔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어떤 이는 신발 없었고, 어떤 이는 속옷만 입은 채였다. 그날 밤, 설원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등반대의 대장 이고르 디아틀로프(23)를 필두로 한 우랄국립공대 소속 10명의 젊은 등반대는 1959년 1월 27일 산을 향해 출발했다. 28일 등반 당일에는 관절 통증으로 한 명의 대원이 등반대에서 이탈해 베이스캠프에 남게 되면서 총 9명이 설원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2월 1일, 폭설로 기상 상황이 악화하자 탐사 대장은 ‘임시 야영지를 설치해 텐트를 치고 쉬겠다’는 무전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어졌다. 이후의 모든 이야기는 사건의 흔적과 추정만으로 만들어졌다.
구조대가 가장 먼저 찾은 건 눈에 반쯤 파묻힌 텐트였다. 보통은 바깥에서 공격을 받으면 생기는 특유의 자국이 있을 텐데, 이 텐트에는 안쪽에서 안간힘을 쓰며 긋고 찢은 흔적이 만연했다. 텐트에는 장비와 옷가지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급하게 탈출할 이유가 없었을 텐데, 그들은 스스로 안전하다 할 수 있는 공간을 찢고서 눈보라 속으로 나아갔다.
1차 수색 작업에서 등반대 총 5명의 시신을 수습했다. 숲 가장자리에서 모닥불이 꺼진 흔적과 함께 시신 두 구를 발견했는데, 불에 그을린 머리카락과 손발에는 화상 자국이 있었다. 또 다른 세 구의 시신은 어디론가 향하다가 쓰러진 채 발견되었고, 그들의 표정은 두려움으로 일그러진 채 얼어 있었다. 이 다섯 구의 시신은 당시 눈보라와 영하의 기온에도 불구하고 속옷만 입고 있었으며, 손가락을 물어뜯은 듯한 흔적도 있었다. 혹한의 밤, 그들 왜 옷을 벗고 텐트 밖을 향해 나갔던 걸까.
악천후와 험준한 지형으로 인하여 2차 수색 작업은 몇 달이나 연기되었다. 5월이 되어서야 눈이 쌓인 계곡 아래서 발견된 마지막 네 구의 시신은 더 처참했다. 갈비뼈가 부서져 흉부가 함몰된 시신, 머리뼈가 부서지고 안구와 혀가 사라진 얼굴. 마치 강력한 압력으로 인한 부상 같았는데, 외부에서 가한 타박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시신 일부에선 방사능이 검출되었고, 인근 나무는 불에 탄 흔적이 있었다. 더욱 이상한 점은, 그들이 1차 수색 작업에서 발견한 시신들의 옷을 입고 있었다는 점이다.
1차 수색에서 발견된 시신들은 왜 속옷 차림이었으며, 뒤이어 발견된 시신들은 왜 앞선 그룹의 옷을 입은 채 발견되었던 걸까. 이렇듯 두 번의 수색 작업에서 발견한 것들은 모두, 여러 가지 의문점을 품고 있었다. 단순 사고라 치기엔 맞지 않는 조각들이 계속해서 발견되었다.
소문은 곧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시신과 옷가지에서 검출된 방사능은 러시아 비밀 핵실험의 흔적이라는 설, 사고 시기 하늘에 이상한 빛이 떠올랐다는 목격담과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UFO 등장설, 원주민의 성지를 침범해 저주를 받았다는 설, 집단으로 환각에 빠졌다는 독버섯 설, 심지어 눈보라 속에서 예티가 나타났다는 설까지. 특히 주목을 받은 건 마지막으로 합류한 군인 출신 대원이었다. 2차 대전 참전 경험은 있으나 이후 행적은 베일에 싸여 있었고, 그가 KGB와 연관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현장에는 외부 침입 흔적이 전혀 없었다는 공식 보도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계속 늘어갔다. 그날 밤 설원에 있었을지도 모를 ‘무언가’는 끝내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으며, 설원에서 발생한 기묘한 사건은 상상력을 끝없이 키우기 좋았다.
이 미스터리한 사건은 2019년 러시아 검찰의 재수사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2020년 공식 발표, 원인은 눈사태였다. 스위스 연구팀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경사로에 있었던 텐트 위로 사면에 쌓인 눈이 미끄러지듯 밀려와 대원들을 덮쳤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일행은 미끄러지는 눈을 거대한 눈사태로 착각한 것이다. 대원들은 자의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생존을 위해, 여태껏 배워온 것처럼 나무 방패가 되어주는 숲으로 대피했으나 일부는 저체온으로 쓰러지고(1차 수색), 일부는 눈굴을 파다 추락 및 압사를 겪었다(2차 수색)는 설명이다.
과학적으로 설득력 있는 결론이었지만, 유족과 대중은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물론 속옷 차림의 시신은 역설적 탈의로 설명하고 있으며, 혀와 눈의 결손은 유수와 설압에 의한 사후 손상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방사능 역시 일행 중 한 명의 직물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는 추측이 있다. 그럼에도, 속옷만 입고 뛰쳐나간 몇몇 대원과 그들의 옷을 입고 발견된 또 다른 대원들, 텐트 안쪽에서 찢긴 천, 두려움 가득한 표정이 말해주는 공포감은 쉽게 넘기기 어려운 질문을 남긴다.
사건은 오랜 기간 책, 다큐멘터리, 영화로 재가공되었다. 특히 2013년 영화 <디아틀로프>는 사건 기록의 잔혹한 이미지를 공포 장르의 미장센으로 가져왔다. 찢긴 텐트, 눈밭에 찍힌 발자국, 숲의 불빛. 영화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조합한 상상력으로 기괴함을 극대화했다. 다만 영화의 스틸컷이 사건 기록 사진처럼 퍼져 혼란을 키우기도 했다.
60년 넘게 이어진 미스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눈사태라는 결론은 가장 합리적인 결론일 수 있다. 하지만 명료한 답변이 되었다 말하기는 어렵다. 논리적인 시나리오와 증거로는 깨끗하게 설명되지 않는 방사능 수치, 죽음 직전의 표정 등 몇 가지 의문이 여전히 남아 있으니.
그럼에도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가 하는 점에서 이 사건이 남긴 메시지는 선명하다. 전문성도, 용기도, 젊음도 한순간에 흔들릴 수 있고, 한밤중 텐트 천을 스치는 작은 소리가 인간의 생사를 가를 수도 있다. 그래서 디아틀로프 사건은 과학과 미신, 데이터와 음모론이 맞닿은 경계에서 결론을 짓지 못하고 맴돌고 있는 것이다.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 위험, 계산할 수 없는 우연, 그리고 끝내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의 판단이 존재하는 그 경계에서 말이다.
참고 및 출처
National Geographic
The Dyatlov Memorial Found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