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으로 하는 독서

몸에 남아 있는 것들이 다시 움직이는 순간

by 숨은결



1. 우리는 무엇을 경험하며 읽는가?

내가 어릴 때는 주로 스토리에서 느껴지는 긴박함, 주인공을 통한 대리만족과 재미에 집중하며 이야기를 읽었다. 스토리가 주는 즐거움은 대단히 컸다. 그래서 소설을 포기하지 못했다.

소설 속 주인공이 겪는 인생은 내게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보게 하기도 하고 나 이외의 타자를 이해하게 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때로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삶의 사건이나 상황을 보는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이렇게 소설을 읽으면서 경험한 것들은 한낱 즐거움과 재미로, 스르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면 무엇이 남게 되는가 라는 질문에 도달했다.

과연 이것으로 충분한 걸까?

2. 간접경험의 다른 길

최근 출간된 도서들의 제목에는 ‘~하는 인간'이라는 형식이 눈에 띄게 많이 보인다. 이 제목들은 모두 진행형. 인간 존재의 의의를 강조하는 듯 보였다. 그러면 난 앞에 들어갈 빈칸에 어떤 단어를 넣을 수 있는 인간인가?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이라는 책제목처럼 나 또한 ‘읽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이것이 가장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보통 읽는다는 행위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간접 경험'이다. 특히 소설은 그렇다. 비록 텍스트 속 세상이지만 그 이야기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간접경험의 통로가 된다. 내 인생의 틀에 갇히면 보이는 게 한정되어 있으니 그 외의 인생은 어떤 삶을 살게 되는가는 매개체를 통해야 알 수 있다. 간접경험은 삶을 풍부하게 하는 또 다른 자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간접 경험 이상의 무엇을 경험할 수 있을까?

3. 경험으로 하는 독서, 몸에 남아 있는 것들의 재작동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험은 어떤 일을 실제로 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읽기에서의 경험은 다르게 작동한다. 그것은 내가 살아오며 내 몸에 축적된 남은 감정, 기억, 감각, 몸의 반응까지 소환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경험은 단지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 생각 등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어떤 텍스트를 읽을 때 우리 머릿속 인지과정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내 몸이 기억하는 과거의 내 경험을 불러와서 그것과 연결된 신체의 감각적인 것까지도 함께 작동한다. 그런데 우리는 읽으면서 몸의 미세한 반응까지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내 경우에 소설을 읽을 때는, 긴장과 호기심, 초조함 등을 느끼는 경우에 의자에 앉아 있는 몸도 더불어 긴장한다. 한시라도 이 감각을 해소하기 위해서 결말을 볼 때까지 책장을 바쁘게 넘기곤 한다. 하지만 비문학 책을 읽을 때의 내 몸은 좀 편안하다. 머리는 더 바쁘게 돌아가지만, 몸의 자세는 흐트러질 때가 많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몸을 곧추세워야 한다.

때로 전철에서 책을 읽는 경우, 사람이 많은 날에는 손에 힘을 주고 책을 다소 높이 든다. 또 문이 여닫힐 때마다 오고 가는 사람들 속에서 몸을 움직여야 하는 민첩성도 필요하기에 다소 몸은 경직됨을 느낀다. 그럴 때는 책을 덮고 폰도 가방에 넣은 채 사람 없는 곳을 응시하면서 오히려 멍하니 앞을 보거나 한다.

어떤 책을 어디에서 읽는가는 그 책과 관련된 기억에도 오롯이 남는다. 책을 읽는 행위에는 시간과 공간, 내 몸의 상태와 백색소음마저 담기게 되는 게 아닐까? 내 경우에 오래전에 일을 하고 오가는 동안 전철에서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때 한참 읽던 책은 김형경 작가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었다. 그 책 읽는 동안 팝송을 즐겨 들었다. 그래서인가 난 지금도 이 책을 떠올리면 함께 즐긴 노래와 그날의 전철 장면까지도 떠오른다.

4. 마무리

‘경험으로 하는 독서'는 특정한 이들에게 해당하는 그런 방법이 아니다. 텍스트를 읽는 내 몸과 감각에도 주의를 한 번 기울여 보고 지금 내 몸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보는 것.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내 몸이 불러오는 경험은 무엇인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독서는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변화한다.

얼마 전에 읽은 제임스 우드의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도 일하고 돌아오는 전철에서 읽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날 읽은 책의 내용은, 그날 내가 서 있던 전철이라는 맥락의 장소와 환경에 비추어 바라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이런 날의 독서는 꽤 오래 기억에 남는다. 몸은 고단했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장면을 경험했다.

어쩌면 너무 자연스러운 독서라는 행위이기에 그동안 특별한 의식조차 하지 않은 채 수동적으로 반응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라도 경험으로 하는 독서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작가의 이전글읽다가, 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