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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Jun 29. 2022

백수의 일기를 시작하며......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업무를 파악하느라 한동안 정신이 없는 것처럼, 백수도 적응이 필요한지 차분히 글을 적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맞춰 놓았던 알람은 여전히 똑같은 시간에 나를 깨운다. 알람을 끄고도 누워있는 것이 불편해서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고, 늘 같이 출근을 하던 아들만 보내는 것이 아직은 익숙지 않다. 


퇴사를 하고 제일 먼저 한 것은 일주일 동안 평일 영화를 예매한 것이다. 1일 1 영화이다. 어떤 날은 2편을 예매하기도 했다. 6월 말이 되면 사용할 수 없는 평일 무료 티켓을 이 기간에 쓰기 위해 몰아두었던 것이다. 평일에 영화관을 찾은 사람을 보며 예전에 들었던 시기나 질투 대신 이제는 슬그머니 동질감(?)이 느껴진다.




© Jozefm84, 출처 Pixabay





영화를 보고 집으로 오는 길에 버스를 탔다. 지하철보다 창밖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버스를 더 좋아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덜 기다리는 지하철을 당연히 탔을 테지만 이젠 시간이 많으니 버스 정류장에 앉아 느긋하게 버스를 기다렸다. 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니 비 내리는 풍경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온다. 이 사치를 그대로 즐겨도 되나 싶다. 


신입 백수의 느린 걸음을 적어볼까 한다. 36년 동안 몸에 밴 묵은 습관이나 시선으로부터 조금은 달라질 수도, 어쩌면 변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한 장, 두 장 백수의 일기를 채우며 또 다른 나의 성장을 지켜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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