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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Sep 06. 2023

첫 경험





큰 아들 녀석이 결혼할 여자 친구를 인사시키러 데리고 왔다. 몇 년 전에 여자 친구를 한 번 만나 보겠느냐고 물었지만 당시에는 결혼을 확정한 상태가 아니라서 굳이 만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녀석은 결혼에 그다지 뜻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옆에서 같이 늙어 갈 누군가 필요했는지 마음이 바뀐 것 같다. 그러더니 난데없이 결혼 박람회를 가서는 둘이서 결혼 날짜를 정해서 알려준다. 







그런데 아들이 장성해서 어느덧 결혼할 때가 되었다는 것보다, 내가 어느새 며느리를 보고, 시어머니가 된다는 사실이 더 어색하고 생소하다. 나이 60을 먹도록 웬만한 것은 다 경험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겪어보지 않은 일을 앞에 두고 마치 신입 사원이 첫 출근을 앞둔 것 같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 채 남편 손에 이끌려 처음 시댁에 인사를 드리러 갔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의 일이 방금 전처럼 또렷한데 그 사이 36년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 해보는 아내, 며느리, 엄마가 서툴고 당황스러웠지만 그 굽이굽이를 지나고 나니, 이젠 처음 해보는 시어머니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36년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아들의 여자 친구는 무척 긴장돼 보였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상관없이 갑자기 낯선 사람을 새로운 관계에 끌어들이는 것은 서로에게 불편하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서서히 무르익어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는 것과는 사뭇 다르니 내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갑자기 남편으로 인해 일렬종대와 횡대로 생긴 많은 사람들의 관계는 그다지 사교적이지 못한 스물일곱 새댁이었던 내게 커다란 산이었다. 입 밖에서 겉돌기만 하던 낯선 호칭과 떠밀리듯 넘쳐나는 숱한 사람들의 관계를 외우는 것도 버거웠다. 







내가 겪었던 그 혼돈을 아들의 여자 친구도 한동안 겪어야 할지 모른다. 그러면서 내가 그랬듯 차츰 제 위치를 잡아갈 것이다. 두 아들 녀석과 더불어 이제는 아들의 아내가 되는 새로운 사람을 지켜보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나이를 먹으면 편하게 놀고먹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심심하지 말라고 새로운 숙제를 떠안는다. 새롭게 맺어지는 이 관계에서 36년 전, 나의 기억을 더듬으며 진하게 우려낸 역지사지를 준비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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