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 해밀 Jan 24. 2024

까치머리, 곱슬머리




남편은 곱슬머리이고 나는 직모다. 그래서 큰 아들은 까치 머리고, 작은놈은 곱슬이다. 사이좋게 하나씩 나눠 가졌으니 공평하다 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것은 단순히 숫자에 불과할 뿐, 실제로 녀석들은 어느 누구도 각자의 머리카락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첫째 아들은 밤송이 같은 머리를 수시로 숨을 죽이거나 부드러운 컬을 주려고 펌을 하고,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둘째는 방학 때 집에 올 때마다 스트레이트 펌으로 곱슬을 펴서 오더니, 지금도 어쩌다 집에 오면 외출 때마다 머리 펴는 것이 가장 큰일이다.








한 놈은 단정한 머리카락에 죽자고 컬을 넣고, 다른 놈은 또 죽자고 자연스러운 컬을 쭉쭉 편다고 난리다. 직모의 짤막한 스포츠형 커트는 곱슬에서 보기 어려운 남성적인 힘이 있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곱슬의 자연스러움은 직모가 펌으로도 결코 흉내 내지 못하는 멋이 있는데 두 녀석은 서로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고 가지려고 한다.

그런 녀석들을 보면서 우리들의 모습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의 가치나 소중함보다는 갖고 있지 않은 것에 더 관심이 가고 취하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직모는 직모대로, 곱슬은 곱슬대로 그 반대의 것과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데 그것은 밀쳐두고 내게 없는 것만 더 가치 있는 것인 마냥 무턱대고 쫓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 괜히 나 혼자 안타까워했다. 

그 나름의 매력과 장점을 알려주었지만 아직 녀석들은 그들이 갖기 못한 것에 더 눈이 가는 것 같아서 한두 번 이야기하다가 그만두었다. 언젠가는 녀석들도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의 멋과 맛을 알 때가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큰 녀석은 이번 주말에 미용실에 펌 예약을 했다. 기세 좋게 쭉쭉 뻗은 머리카락을 한소끔 데친 배춧잎처럼 숨을 죽여 올 것이다. 더 나이가 들면 힘 있게 뻗친 새파란 부추 같은 머리카락이 그리울 텐데..... 그래서 지금이 아니면 더 누리려고 해도 누릴 수 없을 텐데...... 

늙어보지 않은 녀석은 그것을 알 리가 만무하다. 한 올이라도 더 곧추세우려는 중년의 시든 콩나물 같은 머리카락이 되고서야 지금의 가치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모두 늙어 봐야 아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살면서 범하는 실수를 조금은 줄 일 수 있을 텐데......
깨어지고, 넘어지고, 그러면서 조금씩 알아 가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밥솥의 세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