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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May 31. 2024

절충의 가치




아들의 무신경함 때문에 종종 당황할 때가 있다. 무엇보다 제일 참을 수 없는 것은 몇 날 며칠 책상 위에 일회용 커피 컵이 놓여 있는 것이었다. 내 눈에는 거슬리는데 녀석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서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주말에 한꺼번에 치우려고 그런다는 터무니없는 궤변을 듣고, 결과의 잘잘못을 논하기 이전에 행동의 차이가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비록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지만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함께 살기 때문이다. 주말까지 기다렸다가 치우는 것은 그때까지 그것을 고스란히 바라보아야 하는 나는 눈엣가시였다. 치우는 주기를 좀 더 당겨주길 바랐고, 아들은 노력해 보겠다고 했다.





© louishansel, 출처 Unsplash




그 후로 주중에 한 번씩 치우는 모습이 보였다. 단번에 완전히 달라지길 바랄 수는 없어 그렇게라도 하는 녀석의 다 큰 엉덩이를 두들겨 주며 좋아했다.

그러던 녀석이 근래 들어 아침마다 제 방의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종종 보였다. 양치질을 하는 동안 전 날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너저분한 것들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며 한두 번 하다 말겠지 하고 지켜보았는데, 이제는 어느새 그것이 아침 루틴이 되었다.









"오우! 아들, 우리 아들이 달라졌어요네~~~~"
"하하하하"

달라진 아들이 고마워서 출근 준비를 하는 녀석의 어깨가 한껏 올라가도록 칭찬해 주었다. 칭찬받고 춤추는 데는 연령 제한이 없지 않은가? 서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함께 사는 데는 반드시 절충이 필요하다. 그것이 가족이라도 마찬가지이며 가족이라서 더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 jentheodore, 출처 Unsplash




쓰레기를 버리려면 주방을 거쳐서 가지만 지금까지는 제 방의 쓰레기만 치우는 정도이다. 가끔 식탁이나 싱크대 상판에 버려야 할 비닐봉지나, 플라스틱이 놓여 있지만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다소 무리(?)인 수준이다. 가는 김에 같이 버리라고 녀석에게 얼른 쥐여 주지만 자발적으로 가져가지는 못한다.

사소한 것이지만 시야를 넓게 보면 더 많은 것이 보인다. 아직 녀석은 제가 느끼는 필요에 의한 것들만 보지만, 좀 더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더욱이 결혼을 앞두고 녀석의 무심함이 조금 더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엄마와 살 때보다 아내와 살 때 갖추어야 할 소양(?)이 더 필요할 것이며, 그 부분이 녀석이 챙겨야 할 제일 중요한 혼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dustinhumes_photography, 출처 Unsplash




결혼에서 가장 요구되는 것이 조화로운 절충이다. 각기 다른 성격과 취향에서 얼마나 합리적인 접점을 찾을 수 있는지, 그것을 잘 찾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극명한 결과로 드러나기도 한다.

바다로 나가거나, 전쟁에 나설 때보다 더 많은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결혼에서, 부디 매일 쓰레기를 버리는 녀석의 작은 변화가 결혼 생활에서도 잘 이어지기를 바라며, 사소한 절충이 상대방에 대한  크나큰 존중이 들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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