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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Jun 12. 2024

수세미 같은 사람




우연한 기회에 수세미를 천연 제품으로 바꾸었다. 그다지 효과적일 것 같지 않은 선입견에 마트에서 파는 빳빳하고 튼튼한 수세미를 고수해 왔다. 그렇게 수 십 년을 한결같이 써왔는데 무슨 바람이었는지 난데없이 천연 제품에 꽂혀서 편하지 않은 가격을 기꺼이 지불하고 주문을 했다.

막상 받아보니 내 손바닥의 1/2 정도의 크기다. 이걸로 제대로 닦아질까 싶었는데 물이 들어가니 퉁퉁 불은 만두처럼 부풀어 올랐다. 천연이라서 극적인 느낌이 있을까 했는데 뻣뻣한 느낌은 기존의 플라스틱 수세미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 jccards, 출처 Unsplash




첫 느낌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사놓은 것까지만 쓰기로 했다. 하나, 둘, 셋.... 사 둔 것만 쓰기로 했는데 자꾸 쓰다 보니 손에서 느끼는 질감도 좋고, 플라스틱 수세미에서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정감도 들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시 주문을 했고, 하나씩 덜어낸 자리가 비어지면 미리 주문해서 어느새 쟁여 놓게 된다. 처음에는 약간 누르스름한 색이 시간이 지날수록 뽀얗게 변한다. 처음의 그 뻣뻣한 성질머리도 한껏 누그러지며 부들부들해 진다. 





© huynhbeat, 출처 Unsplash




수세미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변해갔다. 꼬장꼬장하게 고개를 들고 있어서 그릇을 잘 감싸지 못하던 것이 차츰 부드러워지면서 어느 그릇이든 잘 품는다. 어떻게 생긴 그릇이든 상관없이 제 형태를 바꾸어 가며 그릇 구석구석을 씻는다.

어쭙잖은 수세미도 저렇게 나이를 먹는데 나도 수세미처럼 늙어가고 있을까? 
그릇을 씻으면서 제 속도 씻어 내는지 수세미는 날이 갈수록 더 깨끗한 우윳빛으로 변한다.
설거지를 마치고 걸어둔 작은 수세미가 오늘따라 나를 부끄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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