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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Jun 19. 2024

영업 비밀 1(날아간 자동차)




때로는 원하지 않는 사람을 마주칠 때가 있다. 그중에 자동차 영업을 하는 직원이 있었다. 자동차는 자주 사는 것이 아니다 보니 사실 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 직원은 주변 지역 일대를 다 다니는지 회사 내에서도 아주 유명했다. 올 때마다 지나칠 정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것이 나는 늘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그 덕분인지 내가 다니던 회사 내에서도 많은 판매 실적을 올렸다는 얘기를 직원들을 통해 들었다. 그는 실제 영업 활동과는 아무 상관없이 매일 출근하다시피 나와서 사무실을 돌면서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가곤 했다. 그게 무슨 큰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아마 그런 눈도장이 실적을 올리는데 한몫을 한 것 같기도 하다. 




© tamanna_rumee, 출처 Unsplash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취직을 해서 자동차가 필요했다. 업무 특성상 차가 꼭 있어야 하는 게 아니었으면 이제 갓 시작한 사회 초년생이 취업을 하자마자 자동차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인사를 하러 온 그 직원에게 자동차 구입에 대해 문의를 했다. 그는 과도할 정도로 친절한 멘트를 쏟아부었다. 원하는 조건을 제시해 주고 렌트와 매입할 경우의 두 가지 가격표를 보여 달라고 했다. 며칠 후에 그가 자료를 가지고 왔다. 길게 설명을 하려고 하길래 내가 읽어 보고 결정해서 연락하겠다고 했다. 





© tamanna_rumee, 출처 Unsplash




제시된 가격 조건만 비교, 검토해서 선택하면 되는 것이라 혼자서도 가능하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그때 문의하면 될 것 같았다. 그의 스타일상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 놓을 것 같아서 자료만 받았다. 

집에 와서 아들과 가격표를 보며 의논을 했는데 아들은 다른 브랜드의 훨씬 더 비싼 자동차를 원했다.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 제 손으로 모은 돈도 없으면서 무작정 비싼 차를 사고 싶다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차를 꼭 갖고 싶었다는 대책없는 녀석의 꿈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지원해 주려고 했던 금액도 도와줄 수 없으니 스스로 돈을 모아서 사든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 





© randytarampi, 출처 Unsplash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동차 구매는 틀어졌지만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그 직원에게 긴 문자를 보냈다. 최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 서운해하지 않길 바랐다. 

"안녕하세요? 아들과 의논했더니 다른 브랜드의 자동차를 사고 싶어 하네요. 혹시 다음에 살 기회가 있으면 꼭 연락을 드릴게요.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한동안 답이 없다가 그로부터 답장이 왔다.

"네"





© milesb, 출처 Unsplash




그의 문자를 보는 순간 "헉!" 하는 기분이 들었다. 기대를 했다가 성사되지 않아서 다소 실망했을 거라는 그의 기분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영업을 하다 보면 그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일까? 소문으로 듣던 그의 짱짱한 영업 실적에 비해 그의 대응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나라면 어떤 답을 보냈을까? 생각해 보았다.

'네, 그러신가요? 괜찮습니다. 다음에 구입하실 일이 있으면 꼭 연락 주세요. 감사합니다'

속은 쓰리지만 최소한 이 정도의 답을 보냈을 것 같다. 내가 보냈을 것 같은 내용까지는 아니더라도 댕강 부러진 "네"라는 대답은 한동안 나를 씁쓸하게 했다. 





© towfiqu999999, 출처 Unsplash




그 후로 며칠 동안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녀석이 원하는 차를 구입했을 경우 감당해야 할 경제적 부담과 그로 인해 누릴 수 없는 여유, 그리고 그것 때문에 스스로 잃어버리는 다른 가치에 대해 둘이서 한동안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 결과 녀석은 제가 원하는 몇 군데 트리밍을 추가하기로 하고 당초의 합리적인 가격의 자동차를 구입하기로 했다. 

그 직원이 판매하는 브랜드의 자동차를 사기로 결정했지만 그 사람에게 다시 연락하고 싶지 않아 집 가까이 있는 자동차 대리점으로 갔다. 일요일이라 당직을 서고 있는 직원을 통해 10분도 걸리지 않아 모든 것을 처리했다. 





© roberto_sorin, 출처 Unsplash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았다. 그 직원이 눈앞에 보이는 결과에만 치우지지  않고 조금 더 마음을 담은 대여섯 자의 글자를 보냈더라면, 그 관계는 더 이어지지 않았을까? 나로 인해 주변 지인들에게도 이어질 수 있는 기회를 그는 다년간 뛰어난 실적의 영업 사원이었음에도 그것을 왜 놓쳤는지 궁금했다. 

영업도 결국 사람 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일 텐데 '괜찮습니다. 다음에 연락 주세요'라는 글이 그렇게 어려웠던 것인지 곰곰 되짚어 본다. 최고의 영업은 고객의 마음을 읽고 진심으로 대하는 공감 위에 쌓아 올리는 탄탄한 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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