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할 아파트의 이런저런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옵션으로 선택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생각보다 소소하게 손볼 게 많았다. 일정이 있을 때마다 매번 갈 수 없어 작업에 따라 사후에 확인할 때도 있었지만, 직접 가서 상황을 지켜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아무것도 없던 빈 공간에 가구가 들어차고, 등 기구가 달려 빛을 내며 하나, 둘 완성되어 가는 것이 신기했다. 퍼즐처럼 딱딱 맞추어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그들이 마치 요술을 부리는 동화 속의 난쟁이들 같았다.
무거운 걸 아무렇지 않게 들어 올리고, 손쉽게 드릴을 박으며 척척 일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저런 신랑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생애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인 줄 알지만 혼자서 잔뜩 헛물을 들이켰다.
모기장 없이는 절대 잘 수 없다는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하는 수 없이 모기장 치는 것을 허락했더니, 걸 자리가 없다고 남편은 새로 산 장롱 귀퉁이에 전봇대만 한 대못을 박아 모기장을 걸어 놓은 전대미문의 발상을 과감하게 행동에 옮긴 위대한(?) 장본인이었다.
화분에 벌레가 생겨 약 좀 사다가 뿌려 달라고 했더니, 모기나 벌레나 같은 해충이라며 집에 있던 모기약을 잔뜩 뿌려서 몇 년 공들여 잘 키운 화분을 한 방에 죽여 버리는 바람에 강제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게 하고, 평생 화분에 물 한 번 안 주던 사람이 무슨 마음인지 생애 처음으로 물을 준 것이 하필이면 내가 물을 잔뜩 준 바로 그다음 날이었다.
저녁 준비를 하는 동안 거실에서 쉬고 있는 남편에게 이불장의 중앙 패널을 지탱하는 나사 하나가 빠져서 박아 달라고 했더니 알았다 하고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뭘 하는지 가보았더니 겨우 손가락만 한 드라이버를 들고 장롱 속에 들어앉아 끙끙대고 있었다.
속이 터져서 남편에게 나오라 하고는 가구 만들려고 샀던 기관총(?) 만한 보쉬 전기 드릴을 들고 들어가 한 방에 드르륵 박고 끝을 냈다. 그런 일이 자꾸 반복되다 보니 아쉬운 게 있어도 부탁을 하지 않고 대부분 혼자 처리하게 되었다.
액자 레일을 설치하는데 위치만 잡아 주면 작업자가 드르륵, 드르륵하며 눈 깜짝할 사이에 못 질을 해서 달아주었다. 귀퉁이가 조금 들뜬 부분이 있어 얘기하니 말 떨어지기 무섭게 또 드르륵 못을 박아 야무지게 고정을 해준다. 흔들리는 내 마음도 단단히 잡아 달라고 해야 할 판이었다.
저 사람들도 직업이니까 그렇겠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 평생 내 손이 내 딸이었던 내게 맥가이버 같은 남의 남자 등짝에 자꾸 눈이 갔다. 내 입과 검지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로 모든 게 해결되었다. 그동안 누려보지 못한 대단한 호사였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그것이 그저 그림의 떡이란 것도 안다. 여태 살아왔던 대로 내 손이 내 딸인 채로 남은 생을 마감해야 하는 현실을 잘 알면서도, 마술을 부리는 것 같은 남의 남자에게 자꾸 눈이 돌아갔다. 내 것도 아니고,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원도 한도 없이 실컷 아쉬워하고 부러워했다.
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이사할 때 가지고 갈 색 바랜 원목 가구에 칠할 스테인과 오일을 잔뜩 주문했다. 내 키 보다 더 큰 책장 두 개와 재봉틀 작업대를 칠하면서 잠시 흔들렸던 내 마음도 서랍 안에 잘 넣어 놓아야겠다.